“4대 강 사업 동의하지만, 지금 방식은 아냐”

조봉현 거가대교 침매터널 현장소장 “‘없는 길 간다는 것’ 순리 좇는 결정의 연속”

길은 때로 사람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을 뒤바꿔놓기도 한다.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가장 앞장섰던 한왕 유방은 초패왕 항우에 쫓기다시피 한중으로 들어갔다. 유방은 항우의 추격을 두려워해 골짜기에 놓인 잔도를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갔다. 길을 없앰으로써 돌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줬으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본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한해를 넘기지 않고 곧바로 관중으로 짓쳐 나옴으로써 천하를 두고 벌인 싸움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신의 성동격서 하는 계책이 따랐지만, 결국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길을 찾아냄으로써 궁핍해진 처지를 뒤집고 몸을 일으켰다.

나폴레옹이나 한니발도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알프스 산맥을 넘음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이처럼 있던 길을 없애기도 하고, 있는 길을 재발견하기도 함으로써 역사는 바뀌어왔다.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길이 뚫리면서 상권이 활성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길 때문에 상권이 쇠락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대전~진주구간이 개통됐을 때 사천지역은 수도권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특수를 맞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통영까지 완전히 뚫리면서 관광객들은 통영이나 거제로 몰려가고 있다. 사천과 남해 창선 사이에 다리가 놓이면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지만, 오히려 남해읍 상권은 위축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말 개통예정인 거제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침매터널’ 공법으로 거가대교의 해저터널 부분을 담당하는 대우건설의 조봉현(45) 부장을 만나 보았다. 현재 GK침매터널현장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길 전문가이다. 20년 동안 대우건설 사원으로 일하면서 입대했을 때와 2년 반 동안 굴포천 하수처리장 현장에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 15년을 길 닦는 데서만 근무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보낸 곳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보낸 파키스탄의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모토웨이’ 건설 현장이었다. 350㎞ 6차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단일회사 단일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8월, 파키스탄 근무를 끝내고 귀국하면서 그가 본사에 요청한 것은 “본사 아닌 국내 어느 현장이라도 좋다. 현장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고. 그리하여 온 것이 거가대교 건설현장이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총 8.2㎞인 거가대교 중 3.7㎞인 침매터널 가설이다. 이미 18개의 침매함체 가운데 17개를 설치했으며 오는 20일을 전후해 마지막 18번 함체를 설치하고 나면 내부 정비와 접속로 등을 설치해 8월이면 실체 차량 통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거가대교 침매터널 현장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거가대교 침매터널 구간은 굉장한 악조건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 등지에서 침매터널을 설치한 사례는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섬과 섬 사이에 막힌 내해여서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었다. 그러나 거가대교는 남쪽이 외해로 열려 있어 파도와 파랑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모두 18개로 나눠 제작된 함체는 개당 무게가 4만 5000톤~5만톤에 이른다. 자칫 실수하게 되면 이를 건져 올릴 수단이 없다. 더구나 최고 수심이 49.7m에 이르는데다 해저면이 최고 30m까지 뻘층이어서 작은 실수 하나라도 일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각 함체를 침설하는 과정은 닷새 동안 연속과정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5일 후의 해상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통영 안정공단에서 침매 함체 제작이 끝나면 실제 바닷속에 설치하기까지 초읽기에 들어간다고. 공단 출발 48시간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고 24시간 전에 예인선을 배치한다. 그리하여 최종 침설 결정이 내려지면 안정공단에서 밤에 함체가 출발한다. 안정공단과 현장은 36㎞ 거리인데 9시간이 걸린다. 새벽 6시쯤이면 현장에 도착하는데, 모든 과정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대기하고 있다. 수만톤에 이르는 함체는 부력이 하중을 상쇄하는 식으로 설치되는데 부력으로 띄운 함체 내부에 물을 채우는 방식으로 미세한 조정을 하면서 서서히 가라앉혀 기존에 침설된 함체와 연결하고 안정화하는 데까지 꼬박 닷새 동안의 연속 작업이다. 그래서 작업 도중 예상하지 못한 일기변화가 있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기에 그만큼 파랑과 조류의 흐름을 읽어가며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가 하는 거가대교 사업은 거제와 부산 가덕도를 연결하는 물리적인 ‘도로’를 닦는 일이기도 하지만,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외해로 열린 바닷속에 침매터널을 건설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이다. 입사하고 대부분의 세월을 길 내는데 보낸 그가 보는 ‘길’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나쁜 조건을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기술을, 길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토목사업의 부정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시각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점차 빨라지면서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됨으로써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길은 단순히 고속도로, 다리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바닷길·하늘길도 포함하고 있다. 그처럼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여러 길이 서로 연결되면서 지구촌이 돼가고 있지만, 그의 평가는 약간 우울하다.

“이동하거나 일 처리하는 데 시간이 줄어들면 사람들이 더 여유로워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더 바빠진 것 같다. 천천히 걸어가는 길에서는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쉽게 고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빠른 세상에서는 잘못되었을 때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돼 빨라졌다고 하지만 여유를 누릴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 세계의 미래로도 연결된다.

“선진국에서 배울 것도 많지만, 우리보다 후진국에 가서 보면 우리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파키스탄에 10년 있으면서 배운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갑과 을이라는 계약관계는 주종·상하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갑의 우월적 지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파키스탄에서 일하다 보니 갑의 우월적 지위가 남용됨으로써 일을 오히려 더 어렵게 하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귀국후 그가 아랫사람들에게 늘 “갑을 관계는 수평적 관계다”라고 말한다고. 이는 역할을 나누고 책임도 분산되는 길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침매터널 현장도 그처럼 시간차를 두고 나눠진 역할에 따라 모두가 제대로 일해야만 실수 없이 침설할 수 있는 일이다.

“군대 내에서 총기사고가 났는데 왜 사단장이 옷을 벗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이어서는 유사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원인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가려 고칠 것은 고치고 벌 줄 일이 있으면 벌을 줘야 한다. 누구를 쥐어팰까 몰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는 사실 관계와 일의 방향, 의지를 분리해서 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강은 물이 흐르는 길. 최근 논란이 되는 4대 강 사업에 대해서도 토목 전문가의 견해를 물어보았다.

“정치적으로 풀 일은 아니다. 전문가에게 맡겨둬야 한다. 내가 알기엔, 전문가들은 필요한 사업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꺼번에 몰아칠 일은 아니다. 차근차근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를 하나하나 줄여나가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지금 하는 방식으로는 4대 강 사업이 완료되고 난 뒤의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장 경제에 활력을 주는 사업이 토목사업이지만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일을 벌이고 나면 그 일이 완료됐을 때 갑자기 줄어든 일감으로 사람이고 장비고 넘쳐나면서 또 다른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3시간에 걸쳐 거가대교 침매터널 현장에 대한 얘기, ‘길’에 대한 토목 전문가로서의 견해, 지극히 사적인 가족 이야기 등에 대해 두서없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정리하는 질문 몇 개를 했다.

신영복 선생은 최근 한 강연에서 “길은 도로와 다르다. 도로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길은 ‘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길을 가면서 우리는 사람도 보고, 꽃도 보고, 쉬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길의 정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고향 원주로 갈 때는 빨리 가고자 고속도로로 간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구도로를 이용한다. 오다가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식당에 들러 밥도 먹고, 쉬어오기도 한다. 목적에 따라 그때그때 편한 길을 가면 된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빠른 도로가 생긴다고 걱정할 게 아니라 기존 도로를 어떻게 예쁘게 가다듬어 상품가치를 높일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가서 물어볼 데도 없는 처음 하는 길을 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물어물어 예까지 왔다. 모든 과정이 고민이고 판단이었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결론은 순리더라. 아닌 것을 역행하면 피곤해진다.”

도로로서의 길을 만드는 길,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길에 대한 그의 견해다. 그런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책을 내라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의 순리는 무엇일까?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1 Response

  1. jgija 댓글:

    [블로그 새글] “4대 강 사업 동의하지만, 지금 방식은 아냐” http://digilog4u.com/?p=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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