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만에 만나뵌 초1 담임선생님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1·2학년 담임을 하셨던 김순점 선생님(지금은 사천 곤양초등학교에 근무하신답니다), 3학년 담임을 하셨던 강미자 선생님(지금은 진주 집현초등학교에 계신답 니다), 6학년 담임을 하셨던 정서기 선생님(지금은 퇴직하셨습니다), 6학년 담임은 아니었지만 2반 담임을 하셨던 박영근 선생님(지금은 퇴직하셨습니다) 4분을 모시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꽃바구니 하나씩과 건강음료 한상자씩을 선물로 드리고 30여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왔지요.

저의 초등학교 동기생들은 작년에 처음으로 모였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두어번 모인 적은 있지만, 어른이 되고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모여서 얘기된 게 무슨 무슨 동창회니 모임을 만들어봐야 어차피 자주 안모이면 흐지부지 되므로, 그냥 생각날 때 한번씩 번개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동기 중 몇명이 생각을 맞춰 번개 소집을 했지요. 그러면서 이왕이면 스승의날이고 하니 선생님 몇 분을 모시게 된 것입니다.

40년이 다돼가는 시점에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 4분을 모시고 함께 모인 초등 동기들입니다.

김순점 선생님과 강미자 선생님은 교대를 졸업하고 초임으로 제가 다니던 양보국민학교에 부임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남들보다 한살 어린 나이에 입학했더랍니다. 부모님께선 똘똘해 보이니 학교에 보내 적응하면 그대로 주욱 보내고, 만약 처지거나 하면 1학년을 한번 더 시키겠다는 생각에 그리 하셨답니다.

근데, 공부(당시의 국민학교 1학년 공부래야 뭐 별거 있었겠습니까만)는 잘 하는데 체력이 달려 항상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다니고, 동기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고 그랬다네요. 저도 일부 그런 기억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런 저를 김순점 선생님께서 2학년까지 담임을 맡으며 키워주셨습니다. 집에 가면 그때 찍은 흑백 사진이 몇 장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스캔해서 올리겠습니다. 에궁, 사진이 있었는데,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앨범에 그때 사진이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니 스캔 받는다고 뺀 듯한데, 사진도 못찾겠고, 하드 날아간 적이 있어 컴터에도 보관돼있지 않네요. ㅠㅠ;

학예발표회를 준비하는 데 노래 제목은 기억이 안납니다만, 남쪽으로 가면 한라산 북쪽으로 가면 백두산 어쩌고 하는 노래를 제가 부르기로 돼 있었고 몇날 몇일을 선생님과 방과후에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노래 시작하기 전에 “하나 둘 셋 넷”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그게 노래 시작전 박자 맞추는 구호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날 배운 노래 부를 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날 오후 선생님 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하나 둘 셋 넷”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학예회에 부르기로 돼 있었던 노래가 아니라 그날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를 불러 선생님을 황당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제 동기들 중에는 저처럼 한해 일찍 입학한 아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런 애들을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챙겨주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방과후에 따로 불러 노래도 가르쳐 주시고, 잔디밭에서 장난도 치고 놀곤 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흑백 사진은 그 때 찍은 것입니다.

강미자 선생님은 3학년 때 담임이셨습니다. 저도 그랬고, 다른 친구 1명도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고다녔더랍니다. 그친구하고 저는 서로 작당한 것도 아니고, 서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선생님을 괴롭히고 하면서 애를 참 많이 먹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그만할 때 사춘기가 시작된다지만 40년이 다돼가는 세월 전의 일입니다. 사춘기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초임은 아니고 경력 2년이 넘으셨는데도 저하고 그 친구 때문에 선생님께서 우신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두 분 선생님께 그때 이야기를 했더니 다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저가 얘기하는 데 맞장구 치는게 아니라, 그에 뒤따랐던 이야기를 선생님께서 풀어내시는 걸 보니 제자 앞에서 기억하는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정서기 선생님은 6년 중 4년을 저희 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분입니다. 1·2·6학년 때 1반, 4학년 때는 2반 담임을 맡으셨는데 저는 1~5학년까지는 2반이었고, 6학년때 1반이 돼 선생님 반이 2번 됐습니다. 동기들 중에는 4년을 정 선생님 담임 반에서 보낸 이도 있습니다. 이 선생님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동기 중에 그 선생님의 아들이 있었고, 족보를 따지면 제게는 먼 아저씨였지만, 정말 무서웠습니다. 참 맞기도 많이 맞았고, 걸핏하면 책상위에 올라가 꿇어 앉는 벌을 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제 뵌 선생님은 그때의 그 카리스마는 없어지고 그저 한 노인일 뿐이었습니다. 술을 마시다 보니 기억도 못하고, 메모도 못했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이 졸업한 연월일과 그로부터 어제까지가 몇년 몇개월 몇일인지를 다 계산해 오셔서 그자리서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박영근 선생님은 저의 담임을 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참 인자한 분이었습니다. 저희 학교에는 1년밖에 안계셨지만, 저희학교 선생님 중 유일하게 후덕한 분으로 기억하는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실제 그러했지요. 초등학교 6학년이 사고를 쳐 파출소로 잡혀갔는데, 박선생님께서 파출소로 달려가 싹싹 빌어 데리고 왔던 이야기는 어제 그자리에서 내내 화제가 됐습니다. 그때 잡혀갔던 친구도 어제 참석해서 선생님께 큰절 올리고 술도 한잔 올렸답니다.

그렇게 40년이 다돼가는 시점에서 다시 선생님들을 뵙고 보니 새삼 ‘스승의 날’이라는 게 고맙기도 했습니다. 우리집 딸래미는 어제 자신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뵈러 갔습니다. 김해 장유에서 창원으로 전근가신 선생님을 찾가뵙겠다는 딸래미가 기특했는데, 어찌됐는지는 아직 들어보니 못했습니다.

졸업사진입니다. 선생님들도 그렇고 동기들도 그렇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이들이 많네요.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봅니다.

지금의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엮어가는 계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내년 스승의 날에는 제가 나서서 중학교 때 선생님 몇 분을 찾아 뵈려 합니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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