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선머스마가 겪언 5월 광주

제 또래라면 비슷하겠지만, 저는 중 3때 광주민주화항쟁을 간접경험했습니다. 경남 하동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저는 광주를 직접 경험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단지,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 중 광주 출신인 기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당시 초임은 아니었지만, 20대 중·후반의 잘 어울리던 여선생님 몇 분이 게셨습니다. 기술의 신명숙 선생님, 과학의 김광란 선생님, 미술의 장은아 선생님, 음악의 김명숙 선생님 등이 그분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과학에 관심이 많던 저를 김광란 선생님께서는 매우 이뻐해주셨지요. 그리고 신명숙 선생님도 저를 귀엽게 봐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술선생님께는 저가 지은 죄가 있어 항상 원죄의식 비슷한게 있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잘 따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3학년 초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몇가지 장난을 즐겨하고 있었습니다. 볼펜에서 전부 분해해서 대롱만 갖고 놀기도 했는데요, 책이나 공책을 찢어 꼭꼭 씹은 다음 한쪽 끝을 막고 반대쪽에도 마찬가지로 꼭꼭 씹은 종이뭉치를 밀어넣은 다음 젓가락 같은 길쭉한 막대기로 갑자기 큰 힘으로 밀어넣으면 반대쪽에 있던 종이뭉치가 뻥 소리를 내며 튀어나가는, 당시 우리사이에 하던 말로는 ‘딱총’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수업시간 중에도 ‘뽀시락 장난’을 즐겨하던 저는 기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칠판에 판서하는 동안 딱총을 갖고 놀다가 갑자기 발사가 됐는데 칠판을 향해 돌아서서 판서하던 선생님 엉덩이에 가서 맞은겁니다. 놀란 선생님은 얼마나 아팠는지 얼굴이 벌개지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누가 그랬는지 찾아내려고 화를 몹시도 냈지요. 저가 그랬다는 것을 알고는 그냥 교실을 나가버리셨습니다.

그게 3학년 1학기 때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모습일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영화 화려한 휴가 장면.

주말을 보내고 등교했을 때 학교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광주에 이북서 보낸 간첩들이 주동해서 폭동이 났다느니, 김대중이가 간첩이라느니 그런 얘기였지요. 그렇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흉흉했던 소문은 기술 신명숙 선생님께서 고향 집에 갔다가 폭도들에게 잡혀 돌아가셨다느니, 폭도들에게 가로막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신다느니 하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여럼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선생님은 학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흉흉한 소문만 더해질 뿐, 학교에서도 어느 누구 나서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죄지은 마음을 풀 길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개학 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출근해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찌하여 그리됐는지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졸업할 때까지 끝내 함구하셨습니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 철판으로 책꽂이 만드는실습이라거나, 전기 관련 몇몇 실습으로 시험을 치기도 하는 등 그저 일상적인 가르침에만 열중하셨습니다.

‘폭도’를 진압한 전두환 나부랭이가 나라를 통째로 가로챌 때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로 인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어야 하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은 진짜 폭도는 두환이 일당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광주 출신 선생님께 대한 개인적인 죄스러움을 달래는 데 1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 중3 선머스마가 역사의 진실에 눈을 뜨기에는 4~5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80년 5월 광주의 실체에 접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상이한 광주 해석에 진절머리를 치기도 했지요.

그로부터 3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광주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정파에 따라 제각각이고, 더구나 광주의 의미를 폄훼하고 뭉개려는 세력의 작태마저 횡행하고 있습니다. 다른쪽에서는 박제화된 광주의 뼉다귀만 붙들고 이미 세력화돼 기득권을 만들어가면서 광주의 정신은 외면하는 작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30년이 흐른 광주에 대해 중3 선머스마가 한 선생님께 품었던 죄책감만큼이라도 빚진 마음으로 되돌아보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고 Mb정부와 수구꼴통 한나라당 및 뉴라이트나 어버이연합 같은 세력들에게 “이것이야 말로 광주정신이다”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고 잃어버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을 만들어 내는 첫단추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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