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사퇴, 이른바 ‘중앙’ 권력은 집요했다
오늘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사퇴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돈을 받고 인사에 관여했다는 등의 의혹이 있었지만 밝혀진 바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사퇴를 이끌어낸 동력은 ‘박연차 리스트’와 무관함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잇따른 ‘말 바꾸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공식적인 김태호-박연차의 인연은 2006년 2월의 출판기념회 사진입니다. 그렇지만, 경남에서 오래 살아온 나로서는 그 둘의 인연이 그보다 훨씬 앞당겨 진다고 봅니다.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박연차가 경남에서 해온 행위를 안다면 수긍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김태호 낙마를 보면서 저는 지역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이른바 ‘중앙’ 정치무대에서 괄세당하고, ‘중앙정치’의 벽을 깨지 못하고 날개가 꺾인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봅니다. 특히 한나라당 내 수도권 초선 의원들이 ‘김태호 총리’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다는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서 그런 혐의가 두터워지네요. 저는 김태호가 총리로 적임자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는 흠결이 많은 사람이며, 특히 청문회를 지켜보던 중 그가 경남도지사로 있으면서 지역 분권과 수도권 집중 완화를 강력하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의지를 뒤집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기대도 깨끗이 접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서울 시장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정치력과 정책능력을 검증받아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하나 만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문수 경기지사나 오세훈 서울시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 같은 이들이 차기나 차차기 대권 후보로 부상 할 가능성-기대에 차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김태호 낙마를 보면서 안희정-김두관 류는 대권을 넘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생깁니다. 대한민국 국민 1/4가 모여 산다는 수도권에서, 지역에서 성장한 정치인을 이처럼 괄세하고 백안시한다면, 물론 그런 조건마저 극복하고 뛰어넘어야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지만, 서울에서 국회의원하다가 서울시장이나 서울시의장 스펙 쌓고 대권으로 다가가려는 사람과 비교하면 현저히 불리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이른바 ‘중앙’) 사람들의 그러한 편협함을 보는 듯해 이번 김태호 낙마를 보는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족입니다. 예전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게을러 못했던 얘기기 때문입니다.
김태호 낙마의 결정적 원인이 된 김태호-박연차 인연의 끈은 어디서부터일가요?
아다시피 김태호는 2004년 7월 김혁규 전 지사가 돌연 사퇴하면서 보궐선거로 도지사가 됐습니다. 그 전에는 거창 군수를 하고 있었고, 거창군수가 되기 전에는 경남도의원을 지냈지요. 박연차가 ‘김태호 의원’과의 인연을 맺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증거가 없으니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2004년 7월 도지사가 됐을 때, 오로지 경남도만의 출자로 설립된 경남발전연구원을 살펴보면 김태호-박연차 인연의 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박연차는 경발연 이사였습니다. 경발연 이사는 이사회에서 추천하게 돼 있고, 이사장이 임명하게 돼 있습니다. 당시 김태호 지사는 10월 이사회에서 경발연 이사장으로 선출됩니다. 이자리에 박연차는 위임장을 써서 다른 사람을 보냈지요. 이때까지는 김태호와 박연차가 경발연 이사로서 직접 만난 일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박연차는 각별한 사이였던만큼, 박연차가 이사직을 맡고 있었던 것은 김태호보다는 김혁규와의 관계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렇지만 노련한 박연차가 김태호와 척을 지면서 경발연 이사직을 사퇴하고 김태호와의 인연을 끊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3류 소설에 불과합니다. 결국 김태호는 박연차를 경발연 이사로 만났을뿐만 아니라 김태호의 사조직에 가까운 ‘뉴경남포럼’을 통해서도 김태호-박연차의 인연은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글 처음에도 밝혔듯이 김태호가 낙마한 것은 다른 국무위원(MB 정부 이후 언제부터인가 이 말 자체를 잘 안쓰더군요) 후보들에 비해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거나 되돌릴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김태호 총리후보 청문회에서 제기됐던△불법 은행대출 △부인의 관용차 사용, 공무원 가사 도우미 등 도지사 직권남용 △부당한 금전거래 △재산 불성실 신고 △세금탈루 △부인 뇌물사건 보도 무마 의혹 △군납비리 연루 의혹 △논문 중복 △스폰서 의혹 중 어느 하나도 가볍게 여길 만한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총리나 국무위원 후보들에게서 단골로 제기됐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이중국적, 병역비리 등의 문제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오히려 지금껏 후보로 올랐던 여러 예비국무위원 중에서는 그나마 ‘깨끗한’ 축에 속했다고 봅니다. 똥물에 빠진 사람들이 내뿜는 악취 속에서 흙탕물에 빠진 사람이 악취를 덜 뿜어낸다고 해서 그를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똥물에 빠진 사람들이 지금껏 잘 해쳐먹었는데 흙탕물에 빠진 사람은 자진사퇴한 데서 그를 변호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김태호는 거창에서 나서 거창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며 서울대를 다녔습니다. 졸업 후 이강두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면서 서울 생활도 했지요. 그렇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것은 경남도의원-거창군수-경남도지사를 거치면서 오로지 지역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출마했더라면 당선이 거의 확실했을 것으로 보이는 경남도지사직에 알져지거나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이유 없이 불출마하면서 그의 새로운 정치 행보에눈길이 쏠리기도 했지요.
아니나다를까, 그는 국무총리 후보로 화려하게 현여 정치무대에 복귀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20일 남짓한 그의 행보는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아울러 위장전입과 탈세, 투기 의혹 등을 받아온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도 사퇴했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이가 공직에 임용돼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도 반드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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