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는 정말 얼어 죽어야 할만큼 잘못했나?

오늘 새벽에 잠을 설치는 바람에 4시부터 해서 8시까지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지원하는 이 러닝 강좌 하나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한달 단위로 한 강좌씩 들을 수 있는데 9월에 내가 들은 강좌는 ‘박광량 교수의 시장경제와 경영 마인드’였습니다.

들으면서 짜증이 날 때도 있었고, 너무 일방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듯해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습니다. 강좌의 바탕이 되는 철학은 시장경제였습니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부를 재분배하고 유한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눠 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경제에 대한 내 지식이 짧다 보니 강좌 전체에 대한 비판은 어렵네요. 단지 이 강좌에서 예로 든 한가지를 비판함으로써 내 짧은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빈부격차가 적은 평등한 사회를 원치는 않을 것입니다. 여름에 열심히 일한 개미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논 베짱이가 똑같이 산다고 한다면, 이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잘 살고, 누군가는 못사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 것입니다. 가격이라는 것은 높은 가격이 좋은지, 낮은 가격이 좋은지를 우리는 판단할 수 없지만 남들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가격은 올라가면서 우리가 부자가 되고,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것을 많이 하는 사람은 못살게 되면서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우리의 지식과 시간, 자본을 이동하는 신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잘 사는, 부자가 되려면 남보다 남에게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예를 든 것입니다. 석사 박사를  따려고 애를 썼지만 연구원이나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면 이른바 ‘보따리 장사’로 시간강사로 전전하면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에 허덕이기도 한다는 예를 들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수요가 없는 일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음으로써 되레 가격을 떨어뜨리고 처지는 더 열악해진다는 것이었지요.

이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아주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데 교과서에 개미와 베짱이 우화가 실려있었습니다. 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바이올린 비슷한 것을 켜고 있고, 개미는 손수레에 뭔가를 잔뜩 싣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삽화가 있었고, 다음 쪽에는 눈이 날리는 날 개미의 집을 찾아 먹이를 구걸하는 베짱이와 이를 거부하고 베짱이를 내쫓는 개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열심 일하라. 그렇지 않으면 추운 겨울이 왔을 때 굶어 죽을 것이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과연 그런지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개미는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부자가 되고, 추운 겨울이 와도 굶지 않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이런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베짱이가 한여름에 동료들과 어울려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을 거리를 저장하는 등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풀잎에 누워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까요?

박광량 교수의 강의에서는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화폐를 통한 가치가 발생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많은 소득이 넘어가게 될 것이냐는,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남에게 유익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수요가 없는 일, 다른 사람들이 구매할 의사가 없는 일, 불필요한 자원이나 서비스, 재화 제공을 계속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것을 사주지 않을 것입니다.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쓸데없이 공급만 늘리고 있는 것으로 가격만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개미와 베짱이 얘기로 돌아가서 살펴보겠습니다. 개미가 노래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일까요? 베짱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베짱이가 한여름 즐거운 노래를 함으로써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닐까요? 개미가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즉, 먹을 거리를 저장하는-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자연부패를 방지함으로써 세균 발생을 억제하는 등 남에게도 이익을 주는 행위는 아닐까요?

베짱이는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해서 남에게 이익을 줬고, 개미 역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둘에게는 같은-적어도 비슷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에도 맞는 것은 아닌가요?

이런 상상도 해볼 수 있겠네요. 사막에서 우물을 파 주면 한 10억쯤 준다는 방이 나붙자 여러 사람이 우물을 파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파 들어갈수록 주변 모래가 미끄러지면서 파 놓은 구멍이 메워지니 자꾸만 넓게 파 들어갔습니다. 그늘도 없는 사막에서 고생이 오죽했겠습니까. 깊이 1m를 파 들어가자니 폭이 10m 이상 되게 파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널빤지로 직경 2~3m 쯤 되게 땅 속으로 울타리를 치고 파 들어갔습니다. 이 사람 역시 여간 고생이 아니겠지요.

다른 한 사람은 아예 돈을 주고 전문 건설업체를 고용해서 지하 100m고 200m고 물이 나올 때까지 관정을 파게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아예 땅을 파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설비를 해서 납품했습니다.

아마도 가장 열심히 일한 경우는 앞의 두 사람일 것입니다. 뒤의 두 사람은 땀 흘려 일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즉 자본 투하-을 다한 것이겠지요. 자본을 투하한 뒤의 두 사람은 아마도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는 동안 다른 생산적인, 또는 행복해지려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앞의 두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보상금 10억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투자마저 날리게 될 것입니다. 뒤의 두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시간을 돈으로 때우면서 자신은 다른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 중 누가 10억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베짱이처럼 노래 부르며 인생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면 더 많은 돈을 벌게끔 다른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베짱이가 왕도가 아니듯이 단순 무식하게 개미처럼 일만 하는 것도 왕도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베짱이도 놀고 그저 먹으려는 게으름뱅이는 아니어야겠지요. 그래야 비슷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미와 베짱이 우화가 우리 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인용되고 전파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시장경제주의에 바탕 한 자본주의 국가도 아니면서 그에 대한 비판만 넘쳐 흐르고, 제대로 된 시장경제 국가로 가려고 애쓰기보다는 정경유착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쌓으려는 ‘졸부’들이 넘쳐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상상을 해봅니다.

소시나 2pm이나 애프터스쿨이나 걍 놀고 먹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왜 그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벌까요? 노는 것 그것 자체가 남들보다 남에게 더 많은 가치, 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만한 보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열심히 일해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라’라고 강요하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어쨌든 버려야 할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시장경제주의자에게도,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전혀 환영 받을 수 없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뉴라이트 같은 쪽에서는 교과서 개정을 촉구하면서도 이런 엉터리 얘기를 교과서에서 빼라는 요구는 하지 않을까요? 국민을 우매하게 만들어 거머리처럼 국민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자신들의 부만 쌓아가겠다는 못된 심사는 아니겠지요? 무식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겠지요?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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