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쟁이’보다 더 신문을 잘 활용하는 노치웅 국장
“고향 초등학교에 어린이 신문을 보내주고 있어요. 얼마전에는 신문을 받아본 학생들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더군요. 연간 따지니 60만원쯤 듭니다. 그렇지만 얻는 성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요.”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장으로 있는 노치웅(59) 농학박사는 ‘신문 전도사’라 이를만 하다. 학교에 신문보내기는 물론이고 경남도에 ‘신문활용연구회’라는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신문 읽기를 전파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신문활용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삶 자체가 신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였다. 지난 1일 진주에 있는 농업기술원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 신문활용공모전 전시를 마친 그의 ‘작품’이 마침 배달돼 있었다. 스크랩북을 하나하나 꺼내는데 큰 라면상자 1개에 꽉 찬게 놀라웠다.
그가 처음 신문 스크랩을 한 것은 35년 전 4급을류(현 7급) 공무원 시험을 치고 나서 합격자 발표 공고였다고.
“당시 고향 산촌에서 합격자 발표 신문을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진주시 칠암동 모 대학 수위실로 찾아가서 수위아저씨께 사정을 설명하고 서울신문을 볼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공고를 찾아보고는 합격했다고 자기 일인양 기뻐하며 신문을 통째로 내어주더군요. 그 공고를 스크랩 한게 시작이었습니다.”
그가 스크랩하는 방법은 일단 신문을 버리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기본적으로 신문을 꼼꼼하게 스크랩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도 메모해 놓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 시대의 흐름을 짚는 중요 기사라고 판단되면 아예 스크랩북이 아닌 방 벽에 붙여놓는다고도 했다. 그간 수없이 많은 스크랩을 하면서 살아온 그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신문 스크랩을 했을까?
“신문 스크랩을 하다보니 다양한 세상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문제 해결력과 함께 긍정적인 사고까지 생깁니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내 생각을 기록하고 신문을 통하여 인지된 사실을 통해 나름의 창조적 지적 자산을 만들고 기록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현실화 한 사례도 한둘이 아니다. 발렌타이 데이와 초콜릿 기사를 보면서 당시 딸기가격 하락 문제를 연계해 2월 11일과 3월 11일을 주고받는 ‘Berry Day’로 제정한 것, 학생 봉사활동의 부작용에 대한 잇따르는 보도를 보고 바람직한 학생봉사활동 제도의 농업적 활용방안을 제안해 도지사 표창을 받은 일, ㈔한국김치협회를 창립하고 부회장을 맡은 일 등등 많다.
그중에서도 인상에 남는 일은 12년 전 국내최초의 수출농산물연구센터 설립 초대소장으로 발탁된 일이라고. 당시 선배도 있고 했지만 기구를 설립하면서 발탁인사를 통해 소장을 맡게 된 배경이 신문 스크랩을 열심히 한 덕이었다는 것. 당시 원장이 초대 소장을 물색하던 중 노 국장이 신문 스크랩을 잘 정리하는 것을 보고 추천해서 이뤄진 일어었다고 회상했다. “신문 스크랩을 통해 문제해결력, 긍정적 사고와 순발력, 업무추진력 등 종합 실무능력이 향상”되더라는 것.
그런 그지만 신문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를 보고도 대응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단다. 지금도 방 벽에 붙여두고 있는데 매일경제에서 ‘부자 됩시다’와 ’30년만의 투자기회’라는 기사였다고. 개인 자산 소득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도 당시 그러한 흐름을 잡지 못했다는 것. 또 6년 전 일본 교토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사무실에 신문이 배달되지 않아 아침마다 슈퍼마켓에서 동전으로 신문을 사보았는데, 그게 최근 일본의 유명 신문사가 경영난으로 부도를 맞고 하는 현재 상황을 예고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자연스레 얘기가 신문 위기로 이어졌다. “요즘 처럼 다양한 매체 홍수 속에서 매체의 진정한 가치가 삶의 진솔한 사회적 가치를 있게 하는 나침반”이라며 “오랜 역사의 노하우로 사람들과 함께한 신문의 가치는 재발견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좀 뜬구름 같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모든 신문이 살아날 방법은 모르겠다”면서도 “도민일보가 현재 처한 문제 속에서 차별화할 기회를 찾아내라”고 조언했다. 지금의 상황은 5년 전, 10년 전의 결과이므로 지금도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하라는 것. 이른 예를 들었다. “농업기술원에서 퇴직해서 다달이 몇백만원씩 연금을 받는 이들이 농사를 지으면 전업 농민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으므로 농사도 잘 지을 수 있다. 농외소득이 안정적인 영농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신문도 경영기법을 달리해 ‘농외소득’ 같은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마련하라”고도 했다.
노 국장은 호적이 늦게 되는바람에 앞으로도 3~4년은 더 공직자로 머물 수 있다고 한다. 퇴임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더니 “신문활용연구원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신문활용교육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신문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이다운 대답이었다.
노 국장은 1976년 5월 1일 농진청 공채로 임용된 이래 80년 8월 31일까지 경북농업기술원에서 근무하고는 줄곧 경남 농업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그간 수출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수출농업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세계 최초 기능성 김치소재(열무의 항암기능) 개발, 파프리카 고랭지 여름재배법 보급, 딸기 육종 및 고설식 재배기술 개발 등을 해왔다.
한국 감연구회 창립위원 및 총무, 한국수경재배 연구회 상임이사, 김치 세계화포럼 사무국장·공동대표 역임, 김치의 날 제정준비위원 등을 맡았으며 대한 암예방학회 평의원, 한국김치협회 부회장, 물사랑클럽 창립 및 초대회장, 신문활용연구회 창립 및 초대회장 등을 역임하거나 현재 맡고 있다.
그간 매일경제 신지식인상, 대산농촌문화상, 신문활용공모전 최우수상 등을 받기도 했다.
노치웅 국장이 권하는 신문 스크랩 방법
- 신문을 버리지 않는다
-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바로 신문에 메모한다
- 스크랩은 주말에 여유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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