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근대를 가다 (5) 항일의 길 – 일제 초 항일

일제강점기 항일의 요람 웅천면(熊川面)

조선말 웅천군의 행정중심인 웅천읍이었던 곳으로 1914년 창원군 웅천면으로 개칭됐다.

1407년(조선 태종 7년) 한국 최초로 개항한 ‘웅천 제포(내이포)’가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이 끊임없었던 곳인데다 한국의 근대기에 식민지 점령국이었던 일본의 군항도시로 개발되다보니 각종 수탈에 맞서는 항일 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매우 높았던 곳이었다.

근대 최초 진해에서의 항일은 가덕도 외양포 주민들의 항일로 시작됐다.

1900년대 조선 의병 토벌을 위해 국내에 도착한 일본군 육전대.

1930년대 일본군 장교 가방.

1904년 1월 12일 거제도 송진포에 대일본 가 근거지 방비대를 설치하고 8월부터 러일전쟁 진척에 따라 함대 엄호를 목적으로 가덕 수도의 서쪽이 되는 거제도의 저도와 동쪽이 되는 가덕도의 외양포에 포대를 설치하고 포병대를 주둔시킬 시설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현지 주민은 대부분 양천 허씨들이었다. 현지주민들의 반대와 저항이 거세지자 일본군은 8월 ‘거제도 방비대 사령관 명령’으로 방비대 군령을 발표 해 군부대 인근 주민의 군시설 파외고 저항, 군사시설 누설 등에 대한 군법을 적용한다는 강경찰을 발효했다. 그럼에도 조선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극렬 반대마저 묵묵부답이었다.

1930년대 일본군 장교 수통.

이어 벌어진 항일은 일본인 측량사 추방이었다. 1906년 화륜선을 타고 도만이개(현 도만동 서쪽 해변)로 들어온 일본인 측량사들이 남의 논밭에 들어가 무단으로 측량을 하자 분개한 농민들이 이들을 물리력으로 쫓아낸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 정부를 압박해 진해만과 영흥만을 군항예정지로 지정하면서 군항개발을 위한 토지 강탈 절차가 진행됐다.

진해만 군항지 조사위원(위원장 한성부윤 박의동)과 일본측 위원은 1906년 10월 마산 이사청에서 회동해 진해만 일대 땅 점탈 절차를 강행하고는 조선인의 저항에도 이듬해 봄에 땅값 지불을 강행했다.

농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강탈당한 땅값 거부운동을 벌였다. 김화익·배달원·문석윤 등 이 고장 반일청년들이 이를 주도했다.

1904년 웅천 향장이 된 문석윤 선생의 모습.

1907년 당시 웅천현의 향장(鄕長)이었던 문석윤(文錫胤·1879~1913)은 땅값 수령 거부운동에 이어 웅동수원지 축조공사 때에도 항일 행위를 하는 등 웅천 일대 항일에 그는 중심에 있었다. 1913년 경 일본 해군 함정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그 후유증으로 34세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일제 초기 항일은 이뿐이 아니다. 석동 주민들은 일본인 추방 봉기를 했다.

마산 이사청 이사관으로 있다가 뒤에 마산부윤이 된 미마쓰의 아들 쇼오고가 석동 뒤에 있는 배문엽의 산을 멋대로 개간해 과수원을 만들어버리자 1912년 이장 배효준(1871~1931)과 동민 김시영(1880~1924). 우휘수(1847~1923) 등이 주도해 70여명이 장정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인이 심은 과일나무를 파내고 그 자리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주민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인 순사의 칼을 빼앗아 부러뜨리고 농기구로 위협해 쫓아내버렸다.

1900년대 일본군 찬합(일명 항고).

일제는 예사로운 봉기가 아니라고 보고 무장한 경관과 흉기로 무장한 일본인 300여명을 보내 주민들을 진압하려 하자 마을 장정들은 일단 피신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당하는 핍박을 보다 못해 사흘만에 자수했다. 경찰은 주동자들의 주장이 정당했기에 큰 죄로 다스리지는 못하고 배효준, 배정헌(1849~1919), 배정규(1847~1923), 배정구(1852~1024) 등을 단순한 경찰공무집행방해로 다루었다.

◇창원의 독립만세 운동

창원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창원읍 의거, 진동면 고현장날 의거, 진동면 삼진의거, 웅동면 마천의거, 천가면 가덕진 의거, 상남면 사파정 의거 등이 있다. 그 중 진동면 삼진의거는 기미년 4대 의거로 손꼽히는 대 의거이다.
1919년 4월 3일 지금의 마산 합포구 진전·진북·진동 3개면 주민들이 일으킨 의거로 당시 변상태를 중심으로 7000여 명이 참가했으며 사망자 8명, 부상자 22명이 날 정도로 치열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남국억 선생 주도 아래 여성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권장한 무궁화 수지도.

창원 근대를 가다 (1) 프롤로그
창원 근대를 가다 (2) 침략의 길 마산포
창원 근대를 가다 (3) 침략의 길 – 웅동 저수지
창원 근대를 가다 (4) 침략의 길 – 진해군항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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