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치로 나서자-뒷북 총선 관전기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당선된 사람보다 떨어진 사람이 더 많으니, 산수를 대면 떨어진 사람에 대한 위로가 앞자리로 와야 한다. 그런데도 왼통 당선된 사람에게 축하하고, 당선된 자릿수로 이러쿵 저러쿵 재단하기에 바쁘다.

내가 나서는 것도 그런 온갖 말에 한 말 더하는게 될까 싶어 저어되지만, 그래도 한마디 보태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분석하고 전망하는 그런 깊은 생각에서 투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뜻에 따라 투표한다. 그걸 가지고 국민의 뜻이 어떻네 하고 분석하고 재단하고 전망하는 것은 중등 수학 과학 수준으로 생각해도 심각한 논리적 오류이다.

1. 한나라당 분란의 씨앗

총선 결과를 유심히 뜯어보지 않더라도 몇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한나라당의 승리, 범 박근혜류의 승리, 역대 최악의 낮은 투표율,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의석 2석 확보, 이재오 이방호의 몰락 같은 것들은 그냥 눈에 들어온다.

이중에서도 내 눈에 확 띄는 것은 박근혜의 화려한 부활이다. 한나라당 안에만 50여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친박연대와 무소속을 합치면 80여명 그를 따르는 국회의원이 생겨났다. 그러고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고작 백명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박근혜 의원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는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 없는 듯 하다. 단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운하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라고 했다. 철도 페리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의석 구조로 볼 때 범 박근혜계가 대운하에 반대한다면 이 대통령은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해서도 공식 입장을 밝힌 바가 없지만, 적어도 총선 기간 중 전 국민 의료보험 적용 확대에 초석을 놓았다는 점을 적극 알려온 데 비춰 보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을 구슬러 같이 가거나 제로베이스에서 새판짜기를 시도하지 않고는 임기 초반부터 내부의 반발에 발목 잡혀 그의 정책을 펴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새판 짜기를 시도하려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새판짜기의 칼자루 역시 박근혜 의원이 쥐고 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2. 그럼에도 범 보수의 과점 의석 확보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박근혜계 무소속 등이 어우러진 범 여권 진영이 권력다툼으로 지지고 볶고 분탕질을 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제한적이다.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 권력을 둘러싼 모멘텀에 따라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분을 접고 한 목소리, 한 걸음으로 갈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더구나 이 발길에는 자유선진당도 언제든지 함께 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곧 범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정당별로 당선자를 보면 한나라당 153석으로 과반을 차지했고, 통합민주당이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을 각각 나눠가졌다. 이 중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는 이른바 ‘범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이에 맞설 세력으로는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있을 뿐이다. 세력 판도로 보면 범 보수 정당이 185석이다. 여기에 친박계 등 한나라당 성향에 가까운 무소속 10여명을 합치면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범 보수진영이 확보하게 된다.

대운하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같은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철학(?)에는 반대할 까닭이 없는 정치 집단이 국회의 2/3 가까이 차지했다면, 이를 국회 안에서 막아낼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야 한다.

3. 결국 정권은 ‘학실’하게 보수진영으로 넘어갔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이른바 ‘개혁’진영이 쥐고 있었던 10년 정권이 확실하게 보수진영으로 넘어갔다. 물론, 그 10년간 그 ‘개혁’ 진영은 정권의 절반만 가졌을 뿐이었다. 청와대와 국회 정도였지, 지방의회와 지방정부는 대부분 한나라당이 차지했던 때가 많았고, 권력의 핵심 축인 사정 정보 기관에도 한나라당에 줄을 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니 하는 말이다.

하여튼 그 반쪽짜리 정권마저 청와대에 이어 국회까지 한나라당이 회수해 갔으니 비로소 범 보수 정권이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범 보수진영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20대였던 80년대를 정권에 맞서 싸워보기도 하고, 그렇게 싸우는 ‘철모르는 녀석’들을 진압하는 전경으로 복무해보기도 한 나로서는, 그 암담하고 참혹했던 시절이 자꾸만 떠오른다.

정권을 탈환한 그들은 이제 착착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다. 자본은 어렵게 확보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들 것이다.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같은데서 수도권 규제 완화니, 상속세 폐지니, 노동시장 유연화니 하는 정책을 줄기차게 건의할 것이고(이미 시작됐다), 정권은 못이기는척, 또는 앞장서서 그런 일들을 추진할 것이다.

물론, 서민들에게 당근은 던져 줄 것이다, 별 효과도 없는 유류세 인하니, 통신요금 인하니 하는 것들 말이다. 유류세 인하해봐야 한달에 자동차 휘발유값 15만원정도, 버스차비 3만원 정도를 쓰는 나로서는 전부 다 깎아 준대야 18만원이다. 통신요금 인하해 준대야 우리 네식구 휴대전화 10만원, 인터넷 3만원 다 더해도 13만원이다. 그래봐야 31만원이다. 내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 임금이 21만원만 깎일까? 수도권 규제완화로 우리 동네 있는 큰 공장이 수도권으로 본사를 옮기면 그로 인해 내가 입는 손해가 그에 못미칠 것인가?

4. ‘이방호 꺾은 강기갑’ 눈속임에 딸딸이 치는 일 없어야

강기갑 의원이 이방호 총장을 꺾은 것은 가까이서 상황을 주시해왔던 나로서도 매우 기분 좋은 일이고, 최상의 찬사로 강기갑 의원을 축복해주고 싶다.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충분히 축복받고 칭찬받고 기대받을만한 쾌거다.

그러나, 돌아가는 판을 지켜보니 그렇게 기뻐할 일은 아니다 싶다. 선거가 끝나고 제 정치세력은 나름대로 바뀐 정치상황에서 자리잡기 위한 여러 모색을 하고있다. 민주노동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당을 박차고 나갔던 진보신당과의 관계설정이나 쪼그라든 의석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에 거는 국민의 기대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은 큰 부담일게다.

게다가 보수진영에서도 강기갑 의원의 당선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사람들은 세뇌되고 있다. 마치 환상을 보면서 마스터베이션 하는 10대 청소년처럼. 강기갑 의원 개인은 분명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여느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것이라고 기대할만 하다. 그러나 정치세력인 정당에 속한 국회의원 한 명이 해낼 수 있는 일은, 기분나쁘지만 그가 강기갑이라 해도 그다지 많지 않다. 시도때도없이 단식하고 의장석 점거하고 하는 식으로 무얼 얼마나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좌재오 우방호’를 꺾은 영웅 한 명에 도취돼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5. 모두가 ‘생활정치’의 전사로 나서야

이번 선거를 두고 곳곳에서 ‘역대 최악의 투표율’을 들먹인다. 맞다. 투표 정말 징~하게도 안했다. 강제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글도 여러곳에서 읽었다. 나는 강제투표제는 반대한다. 우리가 초딩시절 귀에 못이 박히게 배웠던 “100% 투표에 100% 찬성”이라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의 선거제도와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기권도 분명한 정치적 의사 표현 방법이다. 단지 투표장에 가서 기권 의사를 명백히 밝혔느냐, 아니면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기권’을 한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내가 후보와 정당을 각각 다르게 투표한 까닭도 내나름이다. 그걸 나무랄 수는 없다. 단지,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따른 행동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지 고민이나 해봤는지, 그냥 귀차니즘 때문에 아무렇게나 행동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많겠다.

하여튼, 지금의 의석 비율이 그런 기권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 기권한 사람들이 전부 투표에 참여했더라면 범 보수진영이 250석 이상 차지하는 결과로 나타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데,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느니, 강제투표제를 도입해야한다느니 떠드는 것은 재미없다.

그보다는, 그러첨 열 낼 기운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생활정치의 전사로 나서야한다. 동창회도 열심히 나가고, 조기축구회 산악회에도 빠지지 말고, 직장 동료와 상사를 안주로 소주도 마셔가며 밤늦도록 말싸움도 해보고, 그렇게 생활정치에 나서야한다. 그렇다고 목적의식을 너무 드러내면 ‘따’ 당한다.

가슴에 잔뜩 벼린 조선낫 하나쯤 담더라도 내 삶은 거칠지 않은 모나지 않은 날카롭지 않은, 그리하여 주변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섞여 살아가야 한다. 내 삶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도록 해야한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이 엄혹했던 것을 되돌아본다면, 까짓것 2MB 정부라해서 못살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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