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빈곤이 아쉬운 창원 으뜸마을 만들기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는 매년 10월께 ‘환경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축제 내용이야 그렇고 그런 동네 축제입니다. 그렇지만, 이 축제에는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서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산맥이 뻗어내려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곳이 용화지구입니다. 이곳은 행정구역으로는 경북 상주시입니다. 정부는 1995년 이 곳에 온천개발을 허가했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을 비롯해 인근지역이 감당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주민들은 반대운동에 나섰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과 투쟁 끝에 사업계획을 백지화해냈습니다. 이 싸움은 지역주민의 환경권을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면민의 동력을 총동원한 싸움과 승리를 기리는 지역 축제가 자연스레 시작됐고, 주민의 자긍심이 한껏 고조되는 그야말로 공동체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그런 축제로 자리잡았습니다.
녹색창원21 실천협의회가 주관해서 추진하는 ‘환경수도 창원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엊그제 22일 심사위원단 서류 평가회의가 있었습니다. 창원시 62개 읍면동에서 제출한 63개 사업을 두고 1차 서류심사를 한 것인데, 정말 참담했습니다.
응모한 사업 절반이 넘는 36개가 꽃동산·꽃길·화단 등의 이름으로 꽃밭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6개 사업은 벽화 그리기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정자나 쉼터 조성, 등산로·산책로 조성이나 정비 같은 너무나 뻔한 사업을 빼면 불과 서너개만이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거나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건강한 지역을 만들려는 염원과 의지를 담은 사업이었습니다.
아, 물론 꽃밭을 만들고 벽화를 그리며 쉼터를 조성하는 것이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을 공동체의 의견을 모아내고, 함께 할 길을 열어주며, 그리하여 건강한 공동체를 일구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좋겠는데, 전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창원시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는 까닭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풀뿌리 주민자치 실현과 지역공동체 운동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창원, 환경수도 창원을 만들어가기 위하여"입니다. 그러나 사업계획 대부분은 ‘공동체’는 관심 밖이고, 오로지 어떻게 예산을 따내서 동네에 풀 것인가, 잿밥에만 눈길이 가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한 심사위원은 "이건 동네 숙원사업도 아니고, 오로지 동장 숙원사업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낸 것"이란 혹평까지 내놨습니다. 심지어 시 사업으로 예산까지 확보돼 있는 것을 ‘으뜸마을 가꾸기’라고 내놨습니다.
더구나 제출된 사업계획서는, 형식적으로는 각 읍·면·동마다 ‘으뜸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회가 사업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만, 내용을 살펴보면 읍·면·동 사무소나 주민자치위원회가 작성해 제출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마을 주도권을 둘러싼 아름답지 못한 행위가 있었다는 얘기도 솔솔 들려옵니다.
마을 속에서 건강한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주체와 지도력을 이끌어내려는 노력 부재와 지역의 특성을 살려 주민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상상력의 빈곤. 이것이 이번 창원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 대부분에 적용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예산에 맞춰 억지로 사업을 선정하기보다는 재공모를 하더라도 사업 취지에 맞도록 일이 진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꽤 괜찮은 의도로 시작된 사업이 뿌리내릴 수 있게끔 관련 기관단체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청천면 축제는 타산지석으로 삼을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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