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곳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

조지오웰 장편소설 <숨 쉬러 나가다> 조지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368쪽, 한겨레출판, 1만 3000원

“나는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다. 하지만, 이제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 모르게 생긴 17파운드를 어디다 쓸 것인가?”

뚱뚱하면서 활달하고 발랄한, 패티(Fatty)나 터비(Tubby)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어딜 가나 자리 분위기를 주도하는 보험 외판원 조지 볼링. 아침 샤워를 하면서 문득 기분이 좋아야 할 이유를 생각해낸다. 얼마 전 경마장에서 딴 17파운드를 자신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동물농장> <1984>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조지 오웰의 소설 <숨 쉬러 나가다>가 한겨레출판에서 나왔다.

오웰은 모두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썼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물론 <동물농장>(1945)과 <1984>(1948)이며, 처녀작 <버마 시절>(1934)이 국내에 번역, 출간돼있다. 오웰은 작가로서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됐던 1936년을 거치며 그 이후 자신이 쓴 모든 글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라 술회한 바 있는데, 이 <숨 쉬러 나가다>는 그러한 문학적 입장에 입각한 첫 소설 작품이자 자신의 대표작 <1984>에 담긴 많은 문제의식의 씨앗을 엿볼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흔다섯 살 먹은 중년의 뚱보 보험영업사원 조지 볼링.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의 곡물·종자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차대전에 참전해서 하급 장교로 전역했고, 운 좋게 들어간 보험회사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런던 외곽 대규모 주택단지에 살고 있으며 겨우 먹고살 만한 형편에(하류 중산층쯤 된다), 매사 돈 걱정뿐인 아내와 쟁쟁거리는 두 아이와 함께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날 아침, 볼링은 경마에서 딴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20년 전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가스요금과 학비, 우윳값, 라디오 소음, 무엇보다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평화’와 ‘정적’이다. 현실의 모든 중압감을 잊고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공간(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 연못이 있었다)에서 낚시하며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소년 시절의 옛 마을로 ‘숨 쉬러’ 떠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대규모 주택단지와 공업타운으로 변해버린 옛 마을과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옛 연인, 쓰레기 매립장이 된 비밀 연못뿐, ‘숨 쉴 곳’은 이미 아득히 사라져버렸다.

조지 오웰.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10~1938년 그 30년 사이 1차 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영국은 미국에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넘기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제국주의 세력들 사이 힘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과 더불어 영국 내부에서도 모든 생활영역에서 자본주의 원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던 시기가 20세기 초반 무렵이었다.

오웰은 <숨 쉬러 나가다>에서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저무는 한 시대의 질서가 현대라는 이름의 새 시대정신에 의해 어떻게 삼켜지는지 그 과정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열심히 꾸려가던 곡물 종자 가게가 어떻게 대형 할인점의 체계화된 저가 공세에 의해 망해가는지를,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지침 아래 무조건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여자 종업원과 그를 닦달하는 중간 관리자 모두가 해고라는 불안에 떨고 있는 처지임을, 런던 외곽 주택개발사업자들의 사기극과 그들이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시스템 구조를,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경쟁과 불안감이 전쟁을 겪으며 더 악화했으며 “마치 거대한 기계에 휘어잡”힌 개인들의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닌 채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오웰은 담담히 그려낸다.

특히 이러한 시대 배경과 주인공이 처한 처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가장의 삶, 대다수 노동자의 삶과 오버랩되면서 세기를 건너뛴 한국에서 개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되새김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가올 2차 대전과 파시즘이 지배하는 세상을 너무나도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동물농장>과 <1984>가 2차대전과 히털러 혹은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경험하고 난 뒤 그 특징과 폐해를 풍자와 패러디로 회고한 이점을 누린 작품이었다면 <숨 쉬러 나가다>는 철조망과 거대한 얼굴 포스터, 슬로건, 00색 셔츠단, 생각을 지시하는 확성기 등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냈고, 그것을 작품으로 출간하고 난 3개월 뒤 2차대전과 아우슈비츠로 현실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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