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없어 나눠줄 게 없다고? 천만에

많은 젊은 기업가들이 부를 얻고 나면 외곽 지역에 커다란 주택을 구입하고 길게 누워 그 상황을 즐긴다. 이런 삶은 열정 넘치는 데이비드 로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도전이 아니다. 그는 좋은 일에 재정을 지원하는 일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자상한 사람이다. 오페라는 그가 자신의 행운을 나누고, 자신의 열정을 좀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나누는 방법이다. 다른 모든 자선사업과 마찬가지로 나눔에는 개인적 기쁨이 존재한다. -20장 ‘시골 정원에 세운 오페라 하우스 – 데이비드 로스’ 266쪽.

지난달 15일 안철수 교수가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 5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가로 환산했을 때 1500억여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는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많은 재산을 보유한 이들이 아무런 사회적 연유 없이 이처럼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한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벌기업 총수들이 법을 어겼거나 사회적 말썽을 빚었을 때 면피용으로 수십·수백억 원을 내놓아 재단을 설립하거나 한 일은 있었지만 안 교수 사례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기부’ 자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확장되지는 않았습니다. 안 교수가 차기 대선 주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로만 아블라모비치……. 세계적인 거부들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소식은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고 새로운 뉴스가 아닌 세상이 됐습니다. 지난해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자’며 출범시킨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CNN 창업자 테드 터너,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등 69명이 참여해 총 2000억 달러(240조원) 기부를 약속했습니다. 이는 2010년 미 국민의 기부총액(2910억달러)의 3분의2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이뤄지는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기부’가 이렇게 유행한 적은 없었다. 기부 문화의 새로운 물결은 이젠 전 세계적 현상이다”는 말처럼,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호주에서 기부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전 마이크로소프트사 부사장 대니얼 페트레, 할리우드로 간 이베이의 공동 창업자 제프 스콜, 알코올 중독자에서 영국 축구의 멘토로 거듭난 레전드 토니 아담스, 남아공의 주거 환경 개선에 나선 아일랜드의 부동산 개발업자 니알 멜런, 다양한 사회사업의 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바디 샵’의 설립자 고든 로딕…….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이들은 자발적인 관심에서 출발해 경영 노하우를 자산사업에 충분히 활용하고, 새로운 무델을 만듦으로써 자본주의에 사회적 정의를 부여한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실천은 어떤 경쟁자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23명의 이야기는 기부금 용지에 사인함으로써 끝나버리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선’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설명할 수 어려운 영역입니다.

이들 신세대 기부자들은 목표하는 일에 직접 참여해 자신의 기술과 능력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창조하고 주도합니다. 자신의 자산 뿐만 아니라 시간과 재능까지 기부와 자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지요. 경영철학의 대가 찰스 핸디는 이들을 사회의 행복을 키우는 촉매제라고 일컫습니다.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은행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대출해주는데, 고객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이 은행은 ‘돈이 없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돈이 적을 수록 더 잘 빌려준다’는 원칙에 따라 세워졌습니다. 보통 은행이 담보를 잡고 대출해 준 돈조차 떼일 때도 그라민 은행의 가난한 대출자들은 98% 이상 원금이 상환될 정도로 성공한 은행이 됐습니다.

“나는 가난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것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자, 좋은 일을 시작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되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자, 나눔을 일상으로 습관화 하자”는 추천의 글에서 제시한 바만 실천해도 우리 사회는 더 큰 나눔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찰스 핸디·엘리자베스 핸디 지음, 수희향 옮김, 328쪽, 뮤진트리, 1만 5000원.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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