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체육에 정치색을 덧칠하지 마라

제발, 정치권에서 체육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이명박 정부의 독선도 여기서 그쳐야 한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어제 결국 사퇴했다. 표면상 이유는 사무총장 임용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것이지만, 그가 퇴임 기자회견에서 “하고싶었던 말,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가슴에 묻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을 보면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갈등은 이번 사퇴를 불러온 촉매는 됐을지언정 본질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지고보면, 이번 일은 지난 2006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 선출 불승인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체협 회장으로 한나라당 이강두 국회의원이 선출되자 문화관광부가 승인을 거부했던 것. 당시 문광부는 △정치인이 체육단체 수장을 맡는 것은 불합리 △경영성과 평가에서 최하위인만큼 CEO형 단체장이 적합 등의 이유를 들며 승인을 거부했고, 국체협은 지금껏 박철빈 경희대 명예교수가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체제로 오고 있다.

두 경우 모두 정치인이 체육단체 수장을 맡은데서부터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경우다. 김정길 대체회장은 국회의원, 초대 행자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등을 지난 정치인 출신이다. 국체협회장 승인이 거부된 이강두 국회의원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현직 의원이니 당연히 정치인이다.

체육단체는 정치조직이거나 정당 외곽조직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렇지만 예산과 행정 지원 없이는 커질대로 커진 체육단체를 운영해나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정권과 코드나 라인이 맞지 않으면 대정부 관계가 껄끄럽고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정권과 어느 정도 교감이 없이는 대한체육회나 국민생활체육협의회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안다. 예산 때문만은 아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범 국민적인 동원체제를 이끌어 내는 것은 국가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발적인 국민적 응원과 열광을 헐뜯으려는 뜻은 없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체육회라는 조직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체육회는 공식적으로는 정치적인 조직이 아니다. 그렇지만, 가맹협회나 지역 체육회는 철저히 정치적이다.

우선 지역 체육회. 16개 시·도마다 체육회가 있는데, 체육회장은 시도지사가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전국 254갠가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마다 시군구 체육회가 있는데 시장 군수 구청장이 당연직 회장이다. 시도지사나 시군구청장은 정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일부 무소속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행정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가맹단체도 마찬가지다. 대한 또는 한국이라는 명칭이 붙는 체육단체는 내가 게을러서 찾아보기 싫어 그냥 넘어간다. 경남만 두고 보면 경남배드민턴 협회장은 마산시장이다. 구체적으로 연결은 기억력이 달리는데다 게으르기까지 해서 찾아보기도 싫지만, 거제시장 통영시장 밀양시장 진해시장 등등이 한 협회를 이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거로 자치단체장이 바뀌고 나면 새로 당선된 사람의 취향에 따라 시군 실업팀이 바뀌기도 하고 협회장을 못하겠노라고 어깃장을 놓은 경우도 종종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경남에서 순수하게 체육인 출신이 그 협회의 수장이 앉아 있는 경우는 축구협회, 태권도협회, 유도협회 정도였다. 50여 개 협회 중 나머지는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장이 회장이었으며, 배구협회 경남에너지 사장, 육상협회 경남은행장 등등으로 기업체 대표가 회장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한나라당 의원의 국체협 회장 승인을 거부했으니, 우리도 노무현 정권 코드인 대체협 회장을 몰아내겠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이유에서 김정길 대체회장을 몰아낸 것으로 비치는 독선을 저질렀다. 유인촌 장관이 말하는 대체와 국체협의 통합 방안은 오래전부터 체육개혁 방안으로 논의돼 온 일이다. 그렇기에 공개적으로 그렇게 추진하겠다는 것을 밝힌 것은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그래도, 이명박 정부가 체육계 개혁을 진정으로 원했다면, 김정길 사퇴가 아니라 당연직 체육회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분리시키는 일부터 하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도 이미 한나라당이 장악한 지역 체육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한체육회부터 손봐주려 덤볐다. 그들의 눈에는 100여 일 남은 올림픽도, 이긴 경기를 지게 하는 핸드볼 올림픽 예선에서 드러난 뼈아픈 국제 스포츠 외교의 현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 정치는 아니라고 강변하며 중국의 티베트 강점과 무력 진압에 따른 서구 여러 나라의 항의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한마디 논평도 못하는 약체 정권이, 손아귀에 들어온 대한체육회만은 철저하게 정치에 복속시키려 들었다. 스포츠가 정치에 종속돼야 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북경 올림픽 보이콧까지 들먹였던 프랑스 같은 EU 국가와 보조를 맞춰야 했었다. 중국이 주장하는,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 정치와 연관짓지 마라는 주장에 동조한다면 대한체육회장의 10개월 남은 임기도 보장해줬어야 했다.

“우리가 정권을 잡았으니 너희는 다 집에 가.”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유인촌 장관이 총대를 멨다. 온갖 핑계를 대고 뒷전에서 겁박했는지 모르지만 도가 지나쳤다. 이게 유인촌식 문화 관광 체육 정책이라면, 배우 유인촌을 굉장히 좋아했던 나도 장관 유인촌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물론, 김정길 대체회장이 물러났다 해서, 100여 일 후 열릴 북경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일부러 진다거나, 힘껏 달리거나 물살을 헤칠 힘이 있는데도 대충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권이야 바뀌었든 말았든, 선수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 몇 개에 온 국민이 열광하는 새에 체육인들은 가슴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정권, 정책은 결국 국민의 저항에 의해 무너질 것이다.

제발,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국민의 가슴을 포근히 감싸 안을 궁리나 해라. 자꾸만 일 저지르지 말고!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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