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월가로 행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Q: 2007년 1월,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홈디포의 CEO 로버트 나델리는 퇴직금으로 2억 1000만 달러를 받았다. 실패한 CEO가 받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 아니냐고?

A: 나델리가 실제로 어떤 형편인지 알고 있는가? 엄청난 부양비를 대야 하는 전처가 열 명쯤 있을 수도 있고, 그 전처들이 하나같이 장애 등으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돈이 얼마나 들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본문 27쪽)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은 것은 책 제목이 도발적인데다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이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게 한 힘은 독특한 ‘헌사(獻辭)’에 있었습니다.

편집보조, 교정 담당자, 교열 담당자, 홍보 담당자, 인쇄업 종사자, 트럭 기사, 서점 직원…. 책을 만들어 독자의 손에 전하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책 서문 말미에 집필을 도와준 동료나 조수, 가족, 부모 등에게 바치는 헌사를 쓰는 경우는 자주 봤습니다만, 이처럼 속표지 뒷면 판권표시 이후 가장 첫 페이지에 이처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그들이 없었더라면 책이 나오지도 퍼지지도 않았을 이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책은 전작 <긍정의 배신>에 이은 저자의 또다른 역작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신선한 구호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1%에 대한 99%의 도전도 그 1%의 보이지 않는 반격에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점령 시위의 중심이었던 미국에서도 시위대를 경찰이 연행하기 시작하면서 연행되는 이들도 속속 늘고 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항구에서 벌어진 ‘항구를 점령하라’ 시위가 경찰의 연행으로 마무리됐고 샌프란시스코 월가 점령 시위대도 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입니다. 앞서 지난 7일에도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저스틴 허먼 광장에서 두달 가까이 점령 시위를 벌여온 반(反)월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는데, 경찰은 당시 텐트 100여개를 철거하고 시위자 최소 85명을 연행했습니다.

한 때 전 세계로 점령 시위가 확산됐던 적도 있는데, 이는 ‘월가’로 상징되는 국제 금융자본의 세계 시장 장악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현상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양극화’라고 불리는 부의 집중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미 경제학자들은 전 지구적으로 중산층의 몰락과 상위 1%로의 부의 집중이라는 현상을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오! 당신들의 나라>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미 긍정주의의 폐해를 고발한 <긍정의 배신>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약자를 짓밟고, 부를 독식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무너뜨린 1%의 초부유층을 향해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로 정조준 했습니다.

실적 들먹이며 직원을 마구 자르더니 주가 떨어져도 자기 전별금은 챙기는 알뜰한 대기업 CEO, ‘경제력만큼 치료받아야 한다’며 가난한 아이들마저 내치는 ‘공평’한 병원과 의사, 보험료는 점점 더 올리고 보상은 점점 더 줄이는 이상한 보험사, 선거 때만 되면 불법체류·동성애·낙태 같은 똑같은 레퍼토리 들고 나와 판을 뒤집는 한결같은 보수주의자. 당신이 가난하고 아프고 불행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네 탓’이라고 말하는 1%.

이게 미국만의 이야기일까요?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시킨 한미FTA의 핵심은 무역 자유화가 아닙니다. 무역이나 자본의 이동에 따라 얻는 경제적 이익은 우리가 미국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저런 미국식 시스템의 한국 정착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른바 ‘선진 경제 시스템 도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여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도입될 ‘선진 경제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펜 끝에서 살 떨리는 두려움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나꼼수’와 ‘개콘’에 열광하는 시대, 도덕과 정의가 실종된 비틀린 시대를 풍자와 조롱과 야유를 통해, 때로는 정공법으로 고발하면서 99%의 평범한 이웃을 웃기고 울리며 마침내 가슴 서늘하게 만드는 독설을 퍼붓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시선은 빈부 격차 고발에 그치지 않습니다. ‘내부의 적’으로 변질된 의료제도, 사회적 불만을 억누르는 기제로 쓰이는 성과 가족제도 등에 대한 각종 보수 담론, 노동에 지친 가난한 이들을 어르는 종교 주술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날카로운 비판을 들이댑니다. 저자가 이처럼 전방위로 포격을 가하면서도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한군데입니다. 한 때는 자본가들의 미덕이기도 했던, 그러나 이제는 너무 희미해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절절한 염원과 이를 위한 분연한 행동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판매원 등으로 위장 취업해 ‘워킹 푸어’의 현실을 고발했던, 10개월에 걸친 화이트칼라 계층의 취업 과정을 체험하고 신자유주의 시대 중산층의 아메리칸 드림이 끝났음을 고발했던, 삶과 글이 일치하는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울림이 큰 격문입니다.

“우리 모두 월스트리트로 행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 당신들의 나라>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296쪽, 부키,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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