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른 타작을 했습니다

26일 밤 10시가 다돼가는 시각. 때르르릉 울리는 전화벨 소리.

아버지셨습니다. “내일 시간 있냐?” “오전에는 일이 좀 있는데요. 왜요?” “타작하려는데 시간 어떤가 싶어서…” “아니, 타작은 2주 후에 하기로 하셨잖아요?” “그게 그렇게 됐다. 바쁘면 안와도 된다.” “… 시간 만들어 볼께요.”

뒷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습니다. 원래는 아들녀석 영재원 데려다 주고 오전에 무학산 등산을 할 계획이었지만, 등산계획은 취소하고, 아들 녀석만 영재원 데려다 주고, 마치면 버스 타고 진주로 오라고 했지요. 그 말고도 토요일 처리해야 할 집안 자질구레한 일 처리하자니 서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주 도착해 물 한 컵 마시고 있는데 콤바인 기사분께서 전화를 하셨더군요. 지금 출발하니 논에 가서 기다리라고…

바로 논으로 갔습니다. 논이래 봐야 경상도 표준말로 ‘세도가리’ 세필지로 1000여평 남짓 합니다. 어쨌거나 타작은 시작됐습니다.

한시간 반쯤 걸려 타작은 끝났고, 1톤 짐차로 한 차 싣고 농협 RPC(rice processing complex, 미곡 종합 처리장, 그냥 ‘방앗간’이라 하면 될 걸 왜 이리 어려운 말을 쓰는지…)로 갔습니다. 토요일 오후 1시가 다돼가는 시각이었지만, 미리 전화를 해둔 덕에 직원들이 기다려 주더군요.

700kg 조금 넘었는데 수분함유율 21%를 반영하니 실제 무게는 650kg 남짓 되고, 아직 잠정가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40kg 가마당 4만 8500원 정도로 예상 할 때 손에 쥐는 돈은 70만원이 채 못될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는 65만원 정도 돈 샀는데, 올해는 조금 더 내서 돈도 조금 더 받을 것 같네요.

동영상 뒷부분에 보면 나오듯, 제법 펴 말렸습니다. 작년에는 40kg 가마로 48가마를 식량으로 남겼다가 10가마 정도를 인근 식당 등에 팔았기에, 올해는 조금 적게 남겼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해보다 수확이 줄어들었습니다. 작년에도 줄어든 것인데, 올해는 더하네요.

몇 년 전 아버지께서는 300만원을 통장에 넣어 두고 논 농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타작하고 보니 통장 잔고가 0원이더랍니다. 작년에는 적자였지요. 올해도 물론 적자일 것입니다. 그나마 수매한 돈으로 자동차 보험료 낼 목돈이 되니, 부모님과 우리 4형제 가족 식량은 깨끗한 것으로 댈 수 있으니 농사를 짓는다시네요. 내년에는 벼농사를 할지 말지 고민중이랍니다.

농약 비료 거의 안쓰는데도 중간 중간 돈이 수월찮게 들어간다네요. 그나마 연금으로 생활하시기에 푼돈 들어가는 것 메꿀 수 있어 짓고 있지만, 밭농사도 만만치 않다 보니 이제는 기운이 부치는가 봅니다.

아마도 이번주 토욜쯤에는 햅쌀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밤과 군고구마, 깻잎과 상추로 싸먹는 돼지 삼겹살, 한동안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만 식단이 차려질 것 같아 기대됩니다.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2 Responses

  1. 김주완 댓글:

    맞아요, 그게 진짜 무서븐 말이죠. ㅋㅋ

  2. 파비 댓글:

    무서버요. “그게 그렇게 됐다. 바쁘면 안 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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