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 남녀를 위한 변명

“일부 영화인들의 방종한 성생활이 일반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경종을 울리고 피폐한 도덕감을 확립하기 위하여 고소하는 바이오니 일벌백계의 견지에서 엄중조치하여 주심을 앙망하나이다.” – 1962년 10월 22일 인기배우 최무룡(당시 34세)의 처 강효실(당시 31세)이 최 씨와 당대 최고 인기배우 김지미(당시 24세)를 간통혐의로 고소하면서 낸 고소장 중에서.

“내가 불륜을 저지른 것은 분명 올바르지 못한 판단이었지만 그 때문에 불륜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판단으로 불륜을 저지르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불륜 이후 충동적으로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들이다. 몇 사람의 삶이 심각하게 파괴되었지만 불륜 자체로 인한 것은 아니며, 불륜이 아무 피해 없이 끝날 수도 있었다. 사소한 위기는 끔찍한 파멸로 밀어닥쳤다. 덧붙이자면, 내 불륜 상대 역시 나보다 나은 게 없었다는 것이다.” – <결혼하면 사랑일까> 115~116쪽.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남의 ‘불륜’ 얘기를 들으면서 ‘로망’을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불륜과 로망 사이 거리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것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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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과 전쟁> 중.

현대 사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과 가정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쪽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이 불륜 또는 로망을 꿈꾸기도 하고, 실제로 그 때문에 결혼 생활이 파탄 나거나 가정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제대로 ‘불륜’에 대해 고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경건한 어조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강조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는 못”(<결혼하면 사랑일까>  13쪽)하는 데도 마치 ‘불륜은 부도덕한 것이고 배우자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하는 도덕률만으로 불륜을 제어하겠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륜에 대해 저명한 철학자가 정색하고 고찰한 책을 냈고, 조금 늦긴 했지만 한국어판이 나왔습니다. 초판은 1982년에 나왔고 1990년과 1997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출발은 이랬습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다섯 개 신문에 “혼외 불륜 관계의 원인과 결과를 연구하고 있는데 설문지와 인터뷰에 응해주실 분을 찾는다”는 광고를 게재하고, 이에 응해온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저술한 것입니다. 초판이 나온 이후 1996년 다시 비슷한 광고를 게재하고 사람들을 만나 개정판을 냈습니다.

저자 리처드 테일러는 브라운대학, 컬럼비아대학, 로체스터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형이상학 분야에서 많은 이바지를 했습니다. 특히 최근 영미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덕 윤리학(virtue ethics)의 중심에 서 있는데, 덕 윤리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보편적 의무로서의 도덕(morality)이 가진 편협성을 비판하고 공동체에 기인한 윤리를 주장하는 학풍입니다.

윤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다양한 실제 경험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린 저자의 결론은 불륜이 부도덕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일부일처제를 똑같이 지키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인간 본성에 비추어) 바람직하지도(결혼으로 불행한 삶을 보면)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려고 인터뷰 한 사람들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불륜 동기에 근원적인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떤 경우든 성적 쾌락만을 얻으려고 불륜은 저지르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를 흔히 ‘바람둥이’나 ‘돈 우한’이라고 부르며 그릇된 이미지를 고착시키지만 실제로는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불륜은 당연히 부부 사이의 약속과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혼외 사랑에 대해서는 성관계 이외에 애정의 원천이 되는 것은 모두 배제하고 아주 하찮은 것으로 축소하는 입장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본문 77쪽)는 현실을 기술하지만, 인터뷰 결과로는 성관계가 불륜의 한 요소일 뿐이며 불륜 당사자들에게도 부차적인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어디까지가 불륜인지, 무엇이 불륜을 불러오는지, 아름답고 깨끗한 ‘로망’으로 끝낼 수 있는 불륜이 존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제시합니다.

또 불륜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설파합니다.

첫 번째로 ‘염탐하거나 몰래 뒤를 캐지 말라’고 합니다. 불륜은 명백히 배신이지만 염탐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성적인 배신이 일어났다고 해도 부부관계가 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람도 불륜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때 배우자가 위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면 상황은 불을 보듯 빤하게 파멸로 이어지겠지요. 한쪽이 자아존중감에 상처를 입고 나면 결코 치유되지 않으며 손상된 결혼생활은 다시 회복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에 앞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설명한다. 생물학적으로 보아도 남성은 일 년에 100명의 자녀를 볼 수 있는 충동과 신체적 조건에 있는 반면 여성은 일 년에 한 명의 자녀만 낳아 기를 수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은 일부다처제적 충동을 억누르고 사는 존재이다. 이는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과 달리 낯선 사람에 대한 성적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남자는 자신의 성적 능력(성기의 크기, 발기의 지속)에 우스워 보일 정도로 집착한다. 반면에 여성은 이와 달리 자신에 대한 평가, 즉 남자가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나 장점에 관심을 보여주길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이런 사실에 대부분 무심하다.

불륜 당사자들에게도 규칙은 필요합니다. 좋게 시작한 관계가 꼭 나쁘게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데요, 나쁜 이별은 불륜 사실을 폭로하는 ‘복수’ 등 걷잡을 수 없는 파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혼외 관계의 연인은 먼저 ‘상대의 욕구를 알아야’ 하는데요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욕구 충족의 관점에서만 세상의 모든 예비 연인들의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둘만으로 이뤄진 관계이므로 정직해야 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하며 최후통첩을 날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20120406_book001결혼은 분명 인간이 진정 행복한 삶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한 가장 단단한 토대입니다. 그렇다고 결혼한 사람은 행복하다거나 결혼이 행복에 이르는 확실한 길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는 부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부부관계에서 정조를 중요시하지만, 비록 성관계가 아니더라도 부부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오히려 더 심각한 배신도 있습니다.

‘불륜이 결혼을 망치는 게 아니라 끝난 결혼이 불륜을 낳는다’는 저자의 일갈은 오늘도 ‘로망’을 꿈꾸는 이들이 새겨 읽을 만합니다.

<결혼하면 사랑일까> 리처드 테일러 지음, 하윤숙 옮김, 352쪽, 부키, 1만 3800원.

그렇다면, 부부 생활 중 한때의 일탈로 볼 수도 있는 ‘성매매’는 어떨까요?

오늘날 매매춘은 우리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외국 군대의 주둔을 허용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에서 시작해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때론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때론 정치적 명분을 위한 정략적 용도로 이용된 매매춘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한국 사회와 동거해왔습니다. 거기에는 국가의 폭력과 인권 문제, 국가 정책의 문제까지 아우르는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7시 창원시 상남상업지구 분수광장에 수백 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같은 달 1일 성 구매자에 의해 피살된 노래방 도우미 여성을 추모하고, 성매매 근절 대책을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추모제 제목은 ‘나는 환하게 웃고 싶다’였는데, 술에 취한 성 구매자에게 목이 졸려 숨진 고인이 일기장에 자주 남긴 글이랍니다.

창원시 상남동은 서울 강남에 버금가는 유흥과 성매매 산업으로 유명한 동네입니다. 오죽하면 ‘창원의 주력 산업은 기계산업이 아니라 상남동 성매매 사업이다’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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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9일 밤 창원시 성산구 상남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게 피살 당한 여성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 경남도민일보DB

‘성매매’가 ‘산업’이 된 웃지 못할 현실입니다. 성을 매개로 사람을 사고파는 것이니 노예를 사고파는 것과 비교해도 결코 낫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매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명동산악회’란 조직을 만들어 일본인 관광객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명동산악회 회장 김모(58)씨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회원 22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88 올림픽 이후 활개쳤던 ‘기생관광’이 여전하다는 방증입니다.

사실, 성매매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인터넷에 ‘성매매’로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 기사가 뜹니다. 더구나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이른바 ‘집창촌’이 아니라 주택가에서도 버젓이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문화 시리즈’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이번에는 ‘매매춘’을 발가벗기고 나섰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매매춘의 뿌리를 살펴보고자 개화기 홍등가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합니다. 성매매, 매매춘에 대한 사회적 집단 오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동안 고의적 또는 정략적 의도에 따라 단절되고 잊힌 매매춘 기록들을 일별했습니다.

“매춘부들을 ‘절대적 희생자’로 보는 시각은 그들을 침묵하게 한다. 일반 여성의 단 한마디가 금과 같은 가치를 갖는 데 반해, 매춘부의 말은 한마디 가치도 없다. 매춘부의 말은 대번에 거짓이나 조작된 것으로 간주한다”(191쪽)는 현상은 국가가 포주가 돼 몸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로 경제를 일으키겠다며 매매춘을 장려해온 정부의 실상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강준만 교수의 이런 진단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도드라져 보이게 합니다.

“한국은 ‘양지에선 근엄, 음지에선 게걸’의 이중성이 도드라지는 나라다.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도덕적 분노로 밀어붙였으면 이를 관철하기 위한 충분한 뒷받침이 있어야 했는데, 달랑 분노뿐이었다. 게다가 정략까지 가세했다. 무언가 보여주기 위한 전시효과로서의 의욕이 앞섰다는 뜻이다. 덕분에 오늘날 성매매는 더욱 음지를 향해 갔고, 더욱 게걸스러워졌다.”

매매춘 문제는 단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도덕적 분노’로 밀어붙일 만큼 간단한 문제 역시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바로잡아 나가야 할까요?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강준만 지음, 264쪽, 인물과사상사, 1만 2000원.

디지로그포유

IT와 최신 기술 동향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이 하수상한지라 시사와 경제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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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sponse

  1. 디지로그포유님, 안녕하세요.
    저는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이라고 합니다.

    저희 반디앤루니스는 다음 View와의 제휴를 통해 매주 ‘다음 View’에 노출되는 블로그 중 좋은 글을 로 선정하여, 선정된 블로거분들께 반디앤루니스 적립금을 지급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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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