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함께 밭매며 일궈낸 ‘에코 아일랜드’ 꿈
“미숙아 밥 챙겨 뭈나?”
“예 많이 뭈어예, 엄니는예?”
지난달 18일 오후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연대도에서 ‘에코 아일랜드’ 준공식이 열린 후 김두관 도지사와 김동진 통영시장 등 주요 내빈들이 섬을 떠나자, 내빈들 안내하랴 행사 사회보랴 파김치가 된 윤미숙(50) 푸른통영21 사무국장에게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살갑게 보살펴 줍니다.
사실, 윤 국장이 4년 전 처음 연대도에 발을 들였을 때는 김 씨 할머니 뿐만 아니라 50여 가구 80여 명 주민 대부분이 윤 국장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연대도는 국립공원으로 묶여 있어 그동안 주민 불편이 많았는데, 또 행정에서 지원해 뭔가 일을 벌이면 주민들 삶은 더 고달파질 거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거 때 말고는 서자 취급 받는” “행정·의료·복지 사각지대”인 섬이야 말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윤 국장은 그 때부터 섬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섬으로 주민등록까지 옮겨 온전히 연대도 사람이 됐다네요.
윤국장 말입니다. “4년 전 처음 연대도에 들어왔을 때 주민 반응은 무척 쌀쌀맞았어요. 육지 사는 것이 뭘 안다고 섬에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는 식이었지요.”
지난달 18일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연대도에서는 김두관 지사와 김동진 통영시장을 비롯해 많은 외지인이 참가한 가운데 ‘연대도 에코아일랜드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마을 주민과 푸른통영21, 통영시, 경남도, 정부 등이 합심해서 탄소배출 제로에 도전하는 섬으로 만들고자 노력해온 성과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지사나 김 시장 모두 이구동성으로 의미를 부여했던 민관 협치 ‘거버넌스’ 모범 사례 중심에는 푸른통영21 사무국장으로 있는 윤미숙 씨가 있습니다. 윤 국장은 지역신문에서 10여 년, 이후 통영거제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20여 년간 환경운동에 힘써왔습니다. 미륵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에도 열성적이었던 그가 ‘민관협치’ 선봉에 섰다니 의아합니다.
“전임 시장이 어느 날 보자더라고요. 통영에 환경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기에 그러자고 한 게 시작입니다.”
그렇게 푸른통영 21 사무국장을 맡고 나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도 많았다고. 그때 든 생각이 섬에 관심을 두고 일을 시작해보자는 것이었답니다.
“섬사람들 참 안됐잖아요. 선거 때 말고는 서자 취급당하고, 행정·의료·복지 모든 것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만큼 사람 때를 덜 타서 자연이 잘 살아있기도 하지요. 그런 섬을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찾다가 보니 연대도가 보였습니다.”
연대도에서 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시와 협의하고, 주민 설명회도 열고 하면서 바쁘게 보냈지만 영 주민들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연대도는 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어 그동안 재산상 불이익을 많이 당했는데 또 시나 행정이 지원해서 사업을 벌이게 되면 더 큰 규제를 받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었지요. 또 하나는 폐교가 된 조양분교를 활용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이미 학교 터와 시설을 팔려는 주민도 있어 이래저래 환영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네요.
그때부터 윤 국장은 틈 나는 대로 연대도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때는 맨발로 함께 밭을 매기도 하고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마을 주민과 스킨십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도 하나 둘 마음을 돌리고 윤 국장 지지자로 나서기 시작했다니 인간승리가 따로 없습니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키 150센티미터 남짓한 작달막한 체구의 그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솟구쳤는지, 정말 대단합니다. 십수년 전부터 그의 활동을 지켜와봤던 저도 정말 ‘깜놀’이었습니다.
“주민 마음 돌려세우는 것이 사업의 절반이었어요. 그게 3년 걸렸지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어머니 아버지도 많이 생겼어요. 마을 어르신들은 저를 부를 때 ‘윤 국장’ 그런 식이 아니고 ‘미숙아’ 해요. 정말 딸처럼 생각하고 대해주시는 거죠.”
그렇게 마을 주민은 설득했는데, 이제는 사업비가 문제였습니다. 그때 마침 경남도 녹색성장 브랜드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지방보급사업, 행정안전부 명품섬 베스트 10 지원, 통영시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예산을 끌어올 수 있어 한숨을 돌렸답니다. 윤국장은 이에 대해 “이게 바로 모자이크 사업 아닌가요? 각계 각기관이 조금씩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예산을 마련해주고 행정적 지원을 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윤 국장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하니 아무래도 ‘그대는 욕심쟁이 우훗!’. 이미 연대도로 주민등록지를 옮기고 집도 마련해 실질적인 연대도 주민이 됐지만, 그는 ‘에코 아일랜드’에서 나오는 수익은 일절 챙기지 않고 있습니다. 수익은 주민들이 1/n 씩 나눠서 가지는데도 말이죠.
“대규모 시설을 만드는 일이라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먼 길을 돌아왔지요. 이제는 ‘할매공방’ 마을 기업이 제대로 수익을 내 주민의 실질 소득 증대에 이바지하게 해야 합니다. 에코 체험센터도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고 연대도 지겟길이나 다랭이 꽃밭 등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도 해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례가 통영과 남해안을 벗어나 온 국토로 확산하게끔 힘쓸 계획입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 너무나 익숙한 말이지만 때때로 자기 형용 모순에 빠지기도 하는 어려운 말입니다. 그것을 맨발로 일궈내고,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그의 꿈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연대도는?
연대도에 대한 설명이 거창합니다. 탄소 제로의 섬, 천천히 걷는 섬, 꽃향기가 흐르는 섬, 에너지 체험의 재미가 있는 섬, 보고 느끼고 배우는 섬, 지속가능 발전의 섬…….
연대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설물은 마을회관으로 쓰이는 ‘패시브 하우스’와 구 조양분교를 리모델링 한 ‘에코 체험센터’입니다. 이 둘이 있기에 ‘탄소 제로 섬’ ‘에코 아일랜드’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게 됐지요.
마을 회관, 비지터 센터로 쓰이는 ‘패시브 하우스’는 2층 양옥 건물입니다. 그 옆에 있는 경로당 ‘구들’은 경남도가 지원해 시작된 연대도 마을기업인 ‘할매공방’ 작업실로도 쓰입니다. 이 두 건물에는 외부에서 전기 선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스나 석유 같은 보일러 시설도 없지요. 냉·난방은 지열과 태양광으로 합니다. 150kWP 태양광 시설이 설치돼 전기를 생산하고 있고, 지열로 난방을 하며 자연 채광을 최대한 살려 쓰고 있습니다.
에코 아일랜드 체험센터에 설치된 자가발전 회전 시소. 시소에 달린 페달을 밟으면 전기가 발생하고 그 전기 에너지로 원판이 회전하며 시소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체험센터에는 이런 자가발전 놀이기구 4종이 설치돼 있습니다.
구 조양분교를 리모델링한 ‘에코 체험센터’도 그렇습니다. 역시 화석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요, 잔디밭으로 조성한 운동장 아래에는 지열공 16공이 뚫려 있어 지열로 난방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25kW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가 채워줍니다. 최대 100명까지 수용 가능한 캠프장 등 다용도 시설입니다.
사실, 연대도는 섬이지만 숲이 있고, 해안 생태를 살필 수 있으며 게다가 에너지 체험까지 할 수 있으니 어린이나 청소년 체험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래서 체험센터에는 다양한 체험 시설도 갖췄습니다. 태양열 조리기 2대, 자전거 발전기 8대, 인간동력 놀이기구 4종 등입니다. 태양열 조리기 한 대는 자동을 태양광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고, 한 대는 사람이 태양광 방향에 맞춰 돌려 줘야 하는 것인데, 둘 다 오목한 거울을 모자이크 해 태양광을 중앙에 있는 조리기로 모아주는 것입니다. 태양이 뜬 날이면 한 시간 정도면 닭 백숙도 해 먹을 수 있을 정도라네요.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섬마을을 바꿔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섬에 몸 담고 사는 사람들이 먹고살 고민까지 해결했다니 더 대단합니다. 마을기업 할매공방에서는 국화차 같은 것들을 직접 만들어 판매해 수익을 올릴 뿐만 아니라 에코 체험센터에서 나오는 수익은 그대로 주민들이 배분한다고 합니다. 30명 이상 단체로 참가할 수 있는데, 1박하는 데 1인당 1만 원 씩 받는답니다. 여기에 마을 부녀회가 ‘로컬 푸드’로 차려내는 식사는 끼당 6000원 씩이니 체험센터가 활성화 되면 쏠쏠한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구좁니다. 더구나 30명이 안되는 경우에는 마을 민박으로 돌리고 체험 시설은 이용할 수 있게 했다니 정말 살만한 섬마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느낌입니다.
아름다운 다랭이 꽃밭이 있고, 연대도 지겟길이 있으며, 작지만 해수욕장도 갖췄습니다.
민관 협치 거버넌스를 실천한다는, 탄소배출 제로화에 도전한다는 거창한 의미 부여가 없더라도 다양한 체험 활동 속에 자연과 하나되고 청정, 아름다움, 느림, 휴식과 배움이 있는 연대도에 가면 참 많은 것을 얻을 것입니다.
연대도에 가려면 통영시 산양읍 달아마을 선착장에서 ‘섬나들이호’를 타면 됩니다. 오전 8시와 10시, 오후 2시와 4시(하절기에는 5시 30분)에 각각 연대도로 출항합니다. 운항시간은 30분이며 요금은 어른 기준 4000원이라네요. 에코 체험센터는 유치원생 등의 체험활동도 할 수 있는데 당일치기일 경우 1000원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약 문의는 055-649-2263으로 하면 됩니다. 누리집은 http://www.yeondae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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