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가는 길에 꽃이라도 뿌리오리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이 쓴 ‘진달래꽃’이라는 시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한번 쯤은 이 시를 외워야 하는 고충에 시달리기도 했겠지만, 참 빼어난 시임에는 분명합니다. 근래 가수 마야가 노래 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김두관 경남도지사 부부.

보통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는데 이렇게 얘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쪽이 가깝겠지요.

“내가 보기 싫어 간다고? 진짜 간다고? 그럼 안잡는다. 그래 잘 가는가 보자.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한아름 따다가 가는 길에 뿌려줄께. 그 꽃을 밟고 간다면 니는 사람도 아니다. 어? 진짜 꽃을 밟으며 간다고? 흥, 그런다고 내가 울고불고 앙탈 부릴 것 같나? 눈물 한방울도 아깝다. 안흘린다. 잘 가서 잘먹고 잘살아라.”

그런데 소월은 다르게 노래했습니다.

사람이라면 소중한 것을 잃게 될 때 그것을 붙잡고자 애쓰고, 소중한 것을 앗아가는 이에게 분개하는 것이 본성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소월은 이 시에서 소중한 님이 떠나간다는데, 그것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는데도 ‘가실 길에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아름따다 뿌릴터이니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고 노래합니다. 더구나 그렇게 정성들여 뿌려놓은 꽃을 즈려밟고 떠나시는 님에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독자는 인고의 의지로 이별의 정한을 극복하는 시적 자아에 감명받게 됩니다. 어차피 떠날 님이라면, 그리고 떠나는 것이 님이 진실로 바라는 일이라면 굳이 붇잡지 않겠노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달래꽃을 가실 길에 뿌려 ‘축원’까지 해주겠다는 데서 비장미까지 느껴집니다.

근래 김두관 지사의 정치 행보를 지켜보고 있자니 자꾸만 이 시가 머리에 맴돕니다.

김 지사는 4년 임기 중 절반을 보낸 시점에 도민 곁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욕심이나 정치적 야심을 채우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적시해서 말한 바는 없지만 ‘도민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김 지사가 중도에 사퇴하는 것은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보다 더 얄밉게도 느껴집니다. 년말 대선에서 경남권이 최대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판단이 아니더라도, 경남 최초로 야권 공동정부를 구성했던 김 지사의 퇴장은 경남 앞날을 더 암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정치공학적 판단이긴 합니다만, 도민이 맡겨준 야권 공동정부를 작파했을 때 년말 대선과 동시에 치러질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 야권 도지사가 태어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른바 ‘김두관 도정’ 2년 성과가 미미하다는 것도 걸립니다. 낙동강 사업 반대는 흐지부지됐고, 최근에는 갈짓자 행보를 보인다고, 그의 든든한 지지.지원세력인 민주도정협의회에서마저도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르신 틀니보조사업이나 모자이크 사업 같은 경우도 체감 성과는 미미합니다. 그런 와중에 지사직을 사퇴하고 나서 의회에서 논의될 올해 추경 예산은 지사가 없는 마당에 지사 업적으로 보여질 부분에 대한 대폭 손질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딱히 ‘관권선거’를 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임명한 부지사가 지사 권한대행을 할 때 야권 김 지사의 도정 철학을 얼마나 지켜나갈지도 의문입니다. 의도하든 말든, 김 지사의 치적을 지우는 쪽으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했다는 말도 걸립니다. 부산시장이고 대구시장이고 경북지사고, 다들 시.도정을 잘 이끌어나가는데 온 힘을 쏟는데 어떻게 경남지사는 지사만 되면 대권병이 도지느냐는 겁니다. 김혁규 전 지사가 그랬고, 김태호 전 지사도 이번에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나설 모양샙니다. 게다가 김 지사까지 중도사퇴하고 대선에 나선다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경남 지사 자리는 대권병 감염소’라는 오명도 뒤집어 써야 할 판입니다.

모든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김 지사 대권호’는 자가발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멈추려 해도 제동장치가 없는 대권호는 선장 의지와는 관계없이 선원들이 전진 동력을 최대한 가동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 지사는 도민 곁을 떠나려 합니다.

사실 “니가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물러설 줄도 알아야지”라는 대사는 드라마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진달래꽃’이 3류드라마나 막장으로 흐르지 않는 까닭은 자기 절제와 정한을 승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렇게 정성들여 뿌려놓은 꽃을 즈려밟고 갈 님에 대한 원망까지도 입술 앙다물며 속으로 삭이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제 도민 곁을 떠남으로써 더 크게 돌아오겠다는 김 지사의 행보 앞에, 도민들은 ‘왜 떠나느냐’며 앙탈이라도 부려야 할까요? 아니면 진달래꽃이라도 가실 길에 뿌려드려야 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꽃을 뿌려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간절한 염원이 있다면 도민들이 ‘공무도하가’를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가신님을 어이할꼬.

고려 가요 ‘가시리’처럼 “셜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 그런데 무엇으로 돌아올까요?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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