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해맞이, 함양 화장산 강추합니다

이제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올 한해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국가대사 대통령 선거도 끝났고, 개인적으로도 올 초 계획했던 꿈을 이뤘거나 이루지 못했거나 저무는 해에 묻고 새해 새 다짐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내년 새해 해맞이는 어디서 해볼까 고민하신다면, 이곳을 강추합니다. 함양군 휴천면과 유림면 사이에 걸쳐 있는 화장산(花長山)입니다. 해발 586.4미터에 불과하고, 우리가 산행을 시작했던 휴천면 임호마을이 해발 180미터 정도이니 실제로는 400미터 남짓한, 그야말로 1000미터 넘는 산이 17개인가 18개인가 되는 함양군에서는 야산도 안되는, 뒷동산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살면서 노고단이나 천왕봉에서 일출을 두세번씩 봤던 나로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보는 일출은 바닷가에서 보는 일출과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 수평선을 뚫고 솟아오르는 일출과는 다른 맛이 온통 운해로 둘러싸인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마치 신선경에 든 듯한 황홀감을 안겨준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산을 발아래 굽어보며 운해 위에서 신선경을 느끼려면 많은 시간과 체력을 바쳐야 합니다. 산을 잘 타지 못한다거나 체력이 좋지 못한 사람이 새벽 일찍, 또는 밤새 산을 올라야 한다는 건 큰 부담입니다.

화장산은 그런 점에서 산을 잘 타지 못하는 노약자나 어린이라 할지라도 큰 부담이 없습니다. 나도 이제는 체력이 저질로 전락한지 오랜지라 산을 잘 못탑니다. (한때는 중산리서 천왕봉까지 3시간이변 달려가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쩝…) 지난 16일 6시에 일어나서 어정대다 보니 6시 40분에 임호마을에서 출발했습니다. 대체로 해 뜰 시각은 7시 40분쯤. 1시간만에 올라야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겠는데, 산이 아무리 편하다 하더라도, 높이가 그닥 높지 않다 하더라도 처음 가보는 길인지라 긴장하기도 했고, 떠오르는 해를 꼭 봐야겠다는 욕심도 있고 해서, 사실 산에 오를 때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오르기만 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시각을 보니 6시 30분.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산은 절반도 못올라온 듯했습니다. 조급해지는 마음에 좀 무리해서 달리다시피 했습니다. 그럴 수 있을만큼 산은 완만하고 길도 여느 임도 못지않게 넓게 나 있어서 달렸는데, 아뿔싸, 5분도 못달려 체력은 고갈되고 잠시 숨을 돌리려고 보니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오르막길이군요. 동쪽으로 돌아보니 앞에 가리는 것 없이 훤하게 트였는데 곧 해가 솟아오를 듯 동쪽 하늘이 온통 시뻘겋습니다.

잠시 고민. 여기서도 전망이 괜찮은데 끝까지 올라갈 것 없이 여기서 해 뜨는 것을 보고 올라갈까….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국 꾸역꾸역 쉬엄쉬엄 정상을 향해 발길을 떼었습니다. 그렇게 10여분을 더 가니 드디어 정상. 축구 운동장 두개는 될 법한 넓은 평지가 눈앞에 확 펼쳐집니다. 바로 동쪽 하늘을 보났더니 해가 한뼘 정도 솟아 있네요.

앞서 먼저 올라온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젊을 시절 전국 유명하다는 해돋이 명소는 웬만큼 가봤고, 한 1년쯤 전에도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일출도 봤지만, 참 오랜만에 보는 해돋이였습니다. 그만큼 감동도 몇백배!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품으려 심호흡도 한번 하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1985년 여름 어느날, 태풍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지리산 종주할 것이라고 지리산 노고단에서 야영을 마친 새벽, 운해가 바로 발 아래까지 자욱하게 깔려있는데 저 멀리 동쪽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던 그 태양에 맞먹을만큼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만산운해가 다 발아래였지만, 지금은 축지법을 쓴다면 세걸음이면 가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에 천왕봉을 비롯한 백두대간, 저멀리 서북쪽으로는 남덕유산, 왕산, 황매산 등등 이름만 들먹여도 그 웅장한 위용이 그려지는 산들이 마치 화장산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고, 그 사이에 자욱한 운해가 깔린 것이 마치 절해고도에 서 있는 느낌? 얼마전 끝난 TV 드라마 아랑낭자전에서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이 구름속에 노니는 모습마냥 마치 이세상이 아니라 신선경에 든 듯한 모습? 그야 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저 멀리 천왕봉이 보입니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모습을 뒤로하고 기념사진.

화장산이 해맞이로 좋은 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인공의 손이 미친 것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정상부가 헬기장이라는 것입니다. 헬기 이착륙이 쉽도록 주변을 깨끗하게 평지로 만든데다 10여년 전 큰 산불이 났다더니 그래서인지 주변에 큰 나무가 없습니다. 눈높이에서 주변을 둘러보는게 걸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화장산은 1000미터 넘는 산 17개에 둘러싸인 분지 함양의 동쪽에 아담하게 솟아있어 새벽에 올라가면 화장산을 둘러싼 360도가 모두 자욱한 운해에 묻혀있다는 것입니다. 낮에 화장산을 올랐던 이에게 들었는데, 낮에 오르면 함양 분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그 역시 절경 중에 절경이라고 하더군요. 다음에는 낮에도 한번 올라봐야겠다 싶습니다.

花長山. 꽃이 길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산 이름입니다. 그러나 신라시대 기간 군사력을 길러냈던 화랑(花郞)을 생각한다면 쉽게 풀리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원래 함양을 비롯한 경남 서북부지방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 접경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랑들이 누비던 산하이기도 하지요. 산 아래 임호마을에는 ‘사랑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경상도 말에서는 ㅎ 발음이 ㅅ 발음으로 바뀐 어휘가 제법 있습니다. 이를테면 ‘형님’을 ‘성님’이라고 하는 것처럼. 화랑들이 뛰어놀던 ‘화랑들’이 ‘사랑들’로 됐고, 화랑들이 길게 장구하게 지키는 산이라서 ‘화장산’이 됐다고 억측을 해봅니다.

다가오는 2013년, 화랑들이 조국 강산을 지키고자 산야를 누비며 체력과 정신을 단련했다고 추측되는 화장산에 올라, 2012년 대선으로 인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버리고 새로 몸과 마음을 다잡는 계기를 마련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1월 1일은 일정 빼기가 어려울 듯해 25일 새벽에 아내와 아이들 손잡고 다시 한번 올라볼 생각입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출 명소답게 ‘해맞이 제단’도 있습니다.

이렇게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사진을 찍다 보니 마치 ‘키다리 아저씨’가 된 느낌입니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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