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참 어렵다? 한국어는 참 어렵다?

평소 기사뿐만 아니라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다 쓰고 나면 한컴 한글과 (주)나라인포테크가 개발한 상용프로그램 맞춤법 검사기로 맞춤법 검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맞춤법 검사기로 검사할 수 없는 ‘제목’ 같은 데서 잘못 쓰는 것을 알지 못하기도 한다. 역시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기계치’가 돼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기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글 표기법을 비롯해 한글·한국어에 대해 틀리지 않도록 많이 외워야겠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찾아서 공부하려니 그도 예삿일이 아니어서 차일피일 해왔는데 국립국어원이 펴낸 <기자를 위한 신문언어 길잡이>라는 책을 받아보고는 몇 번을 되풀이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예사로 생각했거나 고질적으로 잘못 썼던 게 무엇인지도 깨우쳤고, 맞춤법 검사하면서 왜 그렇게 고치는지 모르면서도 그냥 고치라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고쳤던 게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신문언어 길잡이> 표지.

이를테면 이 글 제목으로 쓰인 ‘한글은 참 어렵다? 한국어는 참 어렵다?’도 그렇다. 지금 나로서는 둘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잘못 혼용하는 예도 종종 있다(이게 한글맞춤법을 쓰다 보니 바뀐 글 쓰는 습관이다. 예전에는 ‘혼용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썼는데 맞춤법 검사기는 이를 ‘혼용하는 때도 잦다’로 대치어를 제시한다. 한데 이 대치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나름으로 ‘혼용하는 경우도 가끔/종종/자주 있다’로 쓴다).

ㄱ에 ㅏ 를 더하면 ‘가’가 되고 어쩌고 하는 식의 한글이라면 그다지 어려울 건 없다. 하지만 ‘밖에’ 앞뒤를 두고 어떻게 띄어 써야 하는가를 따지고 들어가면 ‘한글’도 쉬운 글은 아니다. 이밖에도? 이 밖에도? 수밖에? 수 밖에? <길잡이> 책에서는 “‘밖에’가 조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명사 ‘밖’에 조사 ‘에’가 붙은 형태로도 쓰인다. 조사로 쓰일 때에는 ‘밖에’를 앞말에 붙여 쓰지만 명사로 쓰일 때에는 띄어 써야 한다. ‘밖에’가 조사로 쓰이면 그 뒤에 부정하는 부사나 서술어가 온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어렵다. 부사 조사 이런 말에서 숨이 턱 막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글’이 어렵다고 접근했는데 ‘국어’가 그래서 어렵구나 생각도 밀려온다.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밖에’ 뒤에 ‘도’가 붙으면 앞말에 띄어 쓰고, ‘밖에’가 들어간 문장에서 그 뒤에 부정하는 부사나 서술어, 이를테면 ‘없다’거나 ‘안’ ‘못’ 같은 부정하는 단어가 쓰이면 붙여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밖에’ 뒤에 ‘는’이 붙으면? ‘밖에는’이 되면 뒤에 부정하는 단어가 쓰이므로 앞말에 붙여 써야 한다. ‘너밖에’나 ‘너밖에는’ 이런 식이다. 이 말 뒤에는 ‘없어’라는 말이 붙어오게 돼 있다. ‘없어’라는 말이 붙어오지 않는다면 ‘너 밖에도’가 맞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첫 번째’와 ‘첫째’다. 이른바 기수와 서수 개념인데, 참 자주 틀렸던 것 같다. 일단 <길잡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럿을 차례로 가리킬 때 맨 처음 것이 ‘첫째’이다. 이에 비해서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에 맨 처음 회가 ‘첫 번째’이다. 몇 가지 오류가 있을 때 이를 나열하려면 ‘첫째’, ‘둘째’, ‘셋째’로 나열해야 한다. 여러 번 한 일을 하나씩 나열할 때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로 나열한다.” ‘어느 날 첫 번째 아이 돌잔치’가 아니라 ‘첫째 아이 돌잔치’가 맞는다는 것. 아이가 여럿 있는데 그 중 가장 맞이 돌잔치는 ‘첫째’가 맞다. 하지만 그 맞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 맞지만 여러 형제 중 순서로 다섯 번째 아이의 생일을 두고 ‘다섯째 생일’이라 하는 것이 맞다. 앞엣것은 한 아이가 5살이 된 생일이고 뒤엣것은 여럿인 중 다섯 번째 아이 생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띄어쓰기와 ‘째’만으로도 구질구질한 설명 덧붙이지 않고 정황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형사 ‘첫’은 뭔가? ‘첫 방송’, ‘첫 출근’, ‘첫 출전’ 이런 식으로 자주 쓴다. <길잡이>는 “‘첫’은 관형사이므로 뒤에 동사나 형용사가 올 수 없다. 뒤에 동사나 형용사가 온다면 ‘첫’을 부사어로 바꿔 ‘처음으로’를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첫 출근’은 ‘처음으로 출근’이나 ‘첫 출근을’로 바꾸면 된단다.

‘줄다리기’를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마주 보고 줄을 당겨/댕겨/땅겨/땡겨 자기 쪽으로 끌고 가면 이기는 놀이’에서 어떤 게 맞을까? 일단 ‘땡겨’는 경상도 사투리이므로 후보에서 제외된다. 여기서 <길잡이>를 보니 “‘당기다’를 쓸 자리에 ‘댕기다’나 ‘땅기다’를 잘못 쓰거나 반대로 ‘댕기다’나 ‘땅기다’를 쓸 자리에 ‘당기다’를 잘못 쓰기도 한다. ‘당기다’는 ‘입맛이 돋아지다’의 뜻이고, ‘댕기다’는 ‘불이 옮아 붙다 또는 불을 옮아 붙게 하다’의 뜻이며,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의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당기다’에는 위 설명 말고도 “물건 따위를 힘을 주어 자기 쪽이나 일정한 방향으로 가까이 오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를테면 ‘그물을 당기다’ 같이 쓰인다는 것. 그러므로 ‘줄다리기’는 ‘줄을 당기’는 놀이이다. 입맛은 ‘당기’는 것이고 도화선에 불은 ‘댕기’는 것이다. 얼굴이 건조해지면 피부가 ‘땅기’게 된다.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줄다리기’는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서, 굵은 밧줄을 마주 잡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라고 돼 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헷갈리고 아직도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어 아래 ‘은/는’과 ‘이/가’를 어떻게 쓰냐는 것이다. 이 판단은 그 문장만 볼 것이 아니라 앞뒤에 놓이는 문장까지 고려해서 해야 한다. 나는 흔히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200자 원고지 1장 남짓한 분량으로 짧은 기사를 쓸 때 ’00초등학교는 사제동행 봉사활동을 했다’라고 쓴다. ’00초등학교가’라고 쓰려니 다른 학교는 안 하는데 유독 그 학교만 그런 활동을 해서 돋보인다는 뜻으로 읽힐까 저어했는데 내가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라는 게 <길잡이>를 읽으면서 든 자각이다. <길잡이> 설명을 보자. “주격조사 ‘이/가’ 대신에 보조사 ‘은/는’을 주격으로 쓰려면 두 가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비교’나 ‘대조’의 필요성이고, 둘째는 설명의 필요성이다. 즉 다른 것과 비교하거나 대조할 목적이 있으면 보조사 ‘은/는’을 써서 주어를 만든다. 또 설명문(묘사문과 구별하는 의미에서)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 보조사 ‘은/는’을 써서 주어를 만든다. 그 외에는 주격조사 ‘이/가’를 사용한다.” 내가 글 고질병에 걸린 듯하다. ‘나무가 자라서 숲을 이룬다’라고 써야 하지만 ‘나무는 자라서 숲을 이루고 강은 흘러 바다를 이룬다’라고 써야 한다(나무가 자라서 숲을 이룬다면 강은 흘러서 바다를 이룬다’라고 쓸 수도 있겠다). ‘네가 가라’도 맞고 ‘너는 가라 나는 멈추마’도 맞다. ‘네가 가면 나는 뒤통수 친다’도 맞다. 그럼 ‘나는 네가 좋다’는 어떨까? 위 설명대로라면 ‘내가 네가 좋다’로 해야 할까? 여기에는 앞에 ‘너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가 생략돼서 ‘나는 네가 좋다’가 아닐까? 단지 문장뿐만 아니라 앞뒤 문장까지 고려해야 하고 생략된 문장까지 생각해야 하니 ‘국어’가 어렵다.

첩첩산중이다. ‘에’, ‘에서’, ‘에게’, ‘에게서’는 어떻게 나누는 것이 맞나? ‘한 음식점에 모여’가 맞는데 ‘한 음식점에서 발표’도 맞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사례를 찾기 어렵다’로도 쓰인다. 한데 내가 주목한 부분은 ‘에게’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람이나 동물 따위를 나타내는 체언 뒤에 붙어) ①일정하게 제한된 범위를 나타내는 격조사. 어떤 물건의 소속이나 위치를 나타낸다. ②어떤 행동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는 격조사 ③어떤 행동을 일으키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격조사’라고 나와 있다. 그럼 그 ‘사람’의 범주에는 ‘자연인’만 포함되는 것일까 아니면 ‘법인’도 포함되는 것일까. 돈을 많이 번 사람이 ‘합천군에/에게’ 장학금 수억을 내놨을까? 합천군은 상식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아닌데, 법으로는 ‘법인’에 해당한다. 에/에게를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아직도 헛갈린다.

온갖 어려운 문법용어를 나열한 앞의 사례와 달리 흔히 틀리기 쉬운 것들도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이 정부는 한마디로 멍청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아니면 좌파적 아니냐고’라는 글에서 뭐가 잘못됐을까? <길잡이>에서는 ‘나열의 일치’라고 해서 이 예문을 들었다. 멍청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좌파적이라는 서술인데, 왜 마지막 좌파적에는 ‘아니냐’는 말을 달았느냐는 것이다. ‘멍청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좌파적이라고’라고 써야 한다는 것. ‘여럿을 나열할 때는 나열하는 대상의 형태나 성질이 같아야 한다. 명사는 명사끼리, 서술어는 서술어끼리 나열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술어의 형태도 일치하도록 하고, 부사어나 관형어도 일정한 형태로 나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금의 감소와 이자율이 하락했다’는 따위는 ‘세금과 이자율이 낮아졌다’고 해야 맞다.

여기 기록한 내용이라도 앞으로 내가 글을 쓸 때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신은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지켜나가겠다는 노력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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