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투이는 왜 죽어야 했나

시골 섬마을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 투이(Thuy·베트남 배우 닌영 란응옥 Ninh Duong Lan Ngoc 분)가 있다. 자상한 시아버지(명계남 분)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김미경 분), 그리고 남편 한정수(강상석 분)와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갑자기 닥친 불행. 남편 정수가 미심쩍은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다.

영화 <안녕, 투이> 시작 장면. 복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 하던 투이는 이내 깨닫는다. 남편은 오토바이를 탈 수 없었다는 것을. 국제 결혼을 하고자 베트남으로 왔던 정수를 투이가 오토바이에 태워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 것. 하지만 이정도로는 술을 마시고 자동차를 훔쳐 폭주하는 일이 그다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년 현실에 비춰볼 때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는 투이의 주장은 일축될 수 있었다.

한걸음 더 나가 정수의 아버지이자 투이의 시아버지는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면서 아들의 죽음에 의혹을 나타낸다. “오토바이는 커녕 자전거도 타지 못하던 놈이었다. 내가 젊었을 때 술에 취해 작두질을 하다가 아들 손가락 네개를 잘라먹었다”는 것. 그게 오른손이었는지 왼손이었는지는 영화 속에서 끝내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쪽이었든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손가락 4개가 없는 상태에서 자전거건 오토바이건 핸들을 잡을 수 없으니 탈 수 없다는 건 자명한일.

하지만 사건을 초동조치하고, 수습까지 한 경찰은 끝내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 죽었다는 일관된 얘기 뿐이다.

투이는 뭔가 거대악이 버티고 있음을 깨닫고 차근차근 남편 죽음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간다. 하지만 투이가 기댈 언덕은 없었다.

“아무도 내 말 들어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요?”

거악에 맞서 싸우다가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요”라는 절망을 넘어선 투이는 베트남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나섬으로써 새로운 반전을 예고한다.

11월 26일 밤 7시 30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CGV합성동점에서 영화 <안녕, 투이> 제작자 설미정 씨와 경남이 낳은 김재한 감독이 함께하는 시사회에 참가할 영광을 얻었다. 

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영화감독이지만, 첫 장편영화인지라 사실 기대 수준을 한껏 낮추고 참가했다. 딱 그 기대 수준정도에서 영화는 시작됐다. 알 수 없는 장면, 알 수 없는 등장인물의 행동, ‘도대체 저렇게 툭툭 던져놓고는 저걸 어떻게 다 추스릴려고 던져놓기만 하는거지?’ 싶을 정도로 지루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이 주~욱 나열됐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잠시일 뿐. 이내 긴장감 넘치고 빠른 진행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영화에는 온갖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는 결혼이주 며느리, 당신제를 모셔야겠다는 동네 어른인 시아버지와 개발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이장, 서울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섬마을 파출소로 쫓겨온 경찰관, ‘자율방범대’라는 이름으로 ‘방범’의 대상이 돼야 할 정도로 권력과 폭력을 일삼는 집단, 남편의 지독한 폭력 앞에서 남편과 헤어져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내가 없으면 저 사람은 살 수 없어요’라며 결국 남편에게 돌아가겠다고 하는 또다른 결혼이주여성…

이런 에피소드들은 때로는 아무런 상관 없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영화를 이끌어 간다.

‘도대체 이 영화가 얘기하려는 것이 뭐야’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퍼뜩 스치는 깨닳음. ‘아 이것이야 말로 우리네 삶이구나’.

그렇다. 김재한 감독은 우리 삶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고부관계도 있었고, 동네를 지키려는 각기 다른 형태의 ‘폭력’도 있었고, 신구 세대갈등도 있었고, 법질서와 동네 질서를 지키려는 갈등도 있었다. 인권도 사랑도 황혼의 쓸쓸함도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다 영화 주제로 소재로 손색 없는 것인데도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 담아내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재한 감독은 그 욕심을 정말 섬세하게 절제했다. 과감한 생략 기법을 써서 무거운 주제에 관객이 빠져들어 허우적대지 않도록 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김 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 때 어떤 평론가는 장르영화로 재미가 부족하지 않느냐고 쓰기도 했는데 나는 처음부터 장르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이세상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데 이 사람이 노인이면 노인문제가 등장할 수 있고 이사람이 못사는 사람이면 경제문제도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들이 군데군데 다니면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주여성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 그대로 중첩적으로 보여지게 하싶었던 것다. 장르영화로 쓰릴러로 미스터리로 쾌감을 주려고 했다면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가정이 남편이 죽었다. 그런데 이상해서 이 부인이 남편의 죽음 원인을 찾아서 부딛히게 되면서 겪는 일을 액션 영화라거너 이런 빠른식으로 전개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이 마을을 보여주고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거다. 딱히 뭐 어떤 주제를 가지고 뭔가 핵심을 찔러야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관객과 대화하는 김재한 감독(오른쪽)과 설미정(왼쪽) 제작자.

어쨌거나 오늘(11월 27일) 영화는 개봉한다. 비록 스크린 수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국내 유수의 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감상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딱 한가지 가장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스토리의 반전이 그야말로 극적으로 일어나는데, 그 반전 스토리 흐름에 비쳐볼 때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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