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성공하려면 이것은 꼭 챙겨라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의장도 지냈고 경남지역 환경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인식(62) 선생은 5년 전 돌연 교칙에서 명예퇴직 후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 유어면 세진 마을로 들어가 환경운동과 교육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귀촌’이긴 한데 농사 지으러 들어간 것은 아니니 ‘귀농’은 아닙니다. 그런 그가 귀농 또는 귀촌 하려는 도시사람에게 5년간 경험에서 묻어나는 깨알 팁을 털어놨습니다.
간담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이인식 따우기 자연학교 교장.경남블로거공동체(경남블공)은 7월 29일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이인식 선생을 초청해 ‘이인식과 함께하는 보람있는 노후생활’을 주제로 간담회를 했습니다. 오후 7시 시작해 뒷풀이까지 마치니 밤 10시 15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단연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귀농 생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5년 전 창녕군 우포늪으로 귀촌할 때 딱 두가지를 결심하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혼자서 술 안먹기, 혼자서 라면 끓여먹지 않기. 이 두가지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사람을 굉장히 많이 버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스스로 제어할 때 건강이 있고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겠다 싶어 좌우명처럼 정해놓았다는 겁니다. 전교조 해직교사로 살아가던 시절, 함께 해직된 교사 중 일부가 그랬다고 합니다. 전교조에서 한달에 10만 원 주는 것으로 매일 소주 마시고, 안주거리가 없으니 라면 끓여 소주마시고 그런 해직교사가 몇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막상 복직됐을 무렵부터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일찍 저세상으로 떠난 이도 있고, 교직 수행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을 해친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귀촌하면 아무래도 혼자있는 시간이 많을 터이니 자신을 다잡지 않는다면 그도 건강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이 둘을 철칙으로 정하고 우포늪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다음으로는 배우자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지금도 현직 교원입니다. 아내는 창원에 남겨두고 혼자 우포늪으로 들어갔습니다. 배우자에 대해 하나는 굳이 함께 귀촌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라고 했고, 귀촌.귀농을 하려면 남편보다는 아내의 감수성과 직관을 잘 활용하라고도 했습니다. ‘제로 경제학’을 들면서 자식 다 키운 부부는 서로가 조금씩 놓아줄 필요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간담회에 참석한 여성 6명의 의견을 다 들어봤는데 대체로 놔주기 싫다는 쪽이 우세했습니다. 놔준다고 생각하고 독립한다고 읽는 남자만의 로망이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배우자는 싫다는데도 억지로 함께 귀촌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귀촌을 결정할 때 아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경상도 남자들은 술 한 잔 함께 마시고 나면 금방 형님 동생하게 되고, 귀촌하면 뭐든 다 도와줄 것처럼 얘기하기도 하지만 막상 한 동네서 살게 되면 언제그랬냐는 듯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합니다. 반면 여성은 특유의 섬세함과 촉으로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남성보다는 훨씬 잘 알아챈다고 하는군요.
뒤풀이 자리.‘텃세’에 대한 얘기도 했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들어간 사람들은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이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들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려는 행위라는 거였습니다. 아래윗집 살면서 된장도 나눠먹고 도시사람들이 가져다 준 선물도 나눠 쓰고 하면서 형제같이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마을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가 되면 철저하게 외면하고 소외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가 마을 공동사업을 하면서 외지 강의를 한 강사료도 마을 공동 기금으로 입금됐는데도 그 기금을 사용할 때 그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더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마을 공동체에 들어가려면 정보를 주고 도움을 주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가 귀촌했을 때도 어려움은 많았지만, 마을 이장과 관계가 개선되면서 수월하게 안착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을 이장이 어느 대학 의대를 다니는데 마침 그 의대에 그가 아는 교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교수를 통해 이장 아들을 한 번 챙겨주고, 대학 교육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그러자 이장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더라고 했습니다. 도시 생활에서 다져온 인맥과 정보를 시골 공동체를 위해 풀어놓고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라는 얘기였습니다.
귀촌 귀농을 결정했더래도 처음부터 집 사고 논.밭 사고 하는 식으로 돈으로 해결하려 하지 마라고도 했습니다. 요즘 시골에는 빈집이 많으므로 조금만 돈을 들여 수리하면 10면 정도 장기 임대할 수 있는 집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임대해서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자주 봤다고 했습니다. 평당 2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논을 귀농한 사람에게 평당 5만 원이라고 해서 판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시골 공동체가 살아있기에 그집 논이 얼마에 팔렸다는 것은 온 동네 사람들이 금방 다 알게 되므로 훨씬 비싼금으로 샀다는 것을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간담회에 참가하고, 뒤풀이까지 함께한 사람들. 경블공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많았다.마지막으로 귀농.귀촌이 절대선은 아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귀농.귀촌을 하더라도 마음 맞는 아는 분들과 함께 귀농하면 좋겠고,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거고, 아울러 시골 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귀농.귀촌한다고 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도시에서 줄곳 살아온 사람은 도시에서 할 일이 더 많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도시에 남아서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재주를 갖고 노후를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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