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을 비는데 무슨 띄어쓰기 마침표 타령?
조문을 할 때 흔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이 말을 두고 해괴한 이야기기 인터넷에 떠돌더니 없어지지를 않고 잊을만하면 불쑥 불쑥 눈에 띈다.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죽은 사람에게 내세에서의 복을 비는 것인만큼 종결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므로 마침표(.)를 찍으면 안된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삼가’라는 말을 붙이려면 그 앞에 고인을 지칭해야한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말도 글도 아닌 ‘나 무식해’라고 외치는 것 밖에 안된다.
1. 띄어쓰기
우리나라 글은 원래 띄어쓰기가 없었다. 세종어제훈민정음이나 월인천강지곡 언해본, 규중 편지글, 홍길동전 어디에도 띄어쓰기가 돼있지 않다. 원래 한문을 쓰다보니 한문투에 익숙해 띄어쓰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우리 글에 띄어쓰기는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독립신문이 창간할 무렵에야 비로소 생겨났다. 따라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글을 띄어쓰면 안된다는 주장은 ‘원래 우리 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으니 지금도 띄어쓰면 안된다’는 주장일 뿐이다.
2. 마침표
마찬가지로 우리 글에는 원래 마침표니 쉼표니 물음표 느낌표 따옴표 같은 문장부호가 없었다. 서양 알파벳에 따라 들어온 문장부호를 우리식으로 실정에 맞게 발전시켜 온 것이 지금의 문장부호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낫괄호니 겹낫괄호니 하는 문장부호도 쓰였지만 지금은 거의 안쓰고 있다는 데서도 문장부호도 변화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옛글에서 ‘고인의명복을빕니다’라고 적힌 것을 보곤 띄어쓰면 안된다, 마침표 찍으면 안된다고 정신나간 소리를 했나본데 이게 작년 가수 신해철 사망사고 이후 인터넷에 급속히 퍼졌다.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니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속지 마시길.
3. 삼가
“고인의명복을빕니다”라고 쓰거나 “홍길동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홍길동이 고인임)라고 써야지 그냥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라고 쓰면 안된다고도 한다. 이건 또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삼가’는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라는 뜻의 부사라고 표준국어사전에 뜻풀이가 달렸다. ‘소인은 삼가 대인을 만나 뵈옵고 싸우지 않고 화친을 의논하려 하옵니다.'(박종화 <임진왜란>)이라는 용례까지 달려있다. 명복을 빌어주고싶은데, 유족들은 아직 고인이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명복이라고 하자니 이건 죽은 걸 전제로 하는 말이니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뭐 그런 감정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것인데 웬 개뿔?
결론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띄어써야 맞다. 마침표? 그건 찍어도 그만 안찍어도 그만이다. 원칙으로는 문장이 완결됐으므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하지만 한글맞춤법 문장부호 규정에는 표어나 표제어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것으로 돼 있으므로 이 글을 표제어로 본다면 마침표를 찍지 않아야 된다.
여기서 뽀~나스
조문할 때 부의금을 주는데 봉투에는 무난하게 조의(弔儀) 근조(謹弔) 따위로 쓰면 된다. 또는 향촉대(香燭代)라고 써도 된다. 어떤 이는 부의(賻儀)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고 한다. 부의록을 작성해서 다음에 빚갚음을 하고자 상주가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부의인데 어떻게 조문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쓰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지 싶다.
그보다는 부조금 봉투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다. 한자가 쓰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한글로 적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 말은 봉투에 쓰는 말이 아니라 봉투 안에 ‘단자’라고 하는 부의 물목을 적어넣는 종이에 쓰는 말이다. 그래서 봉투에는 한자가 쓰기 싫거나 어렵다면 그냥 한글로 근조나 조의, 향촉대 등으로 쓰면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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