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효율적이면 전체도 효율적이다?

1985년 여름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였는데 우리 과 동기 전체가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학생이 40여 명, 남학생은 10명도 안 됐지요. 여학생이 많다는 걸 고려해 일정도 3박 4일로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습니다.

대열을 지어 등산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가장 앞서 가는 사람이 가장 편하고 맨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 가장 힘듭니다. 맨 앞 사람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뒤따르는 사람은 그 페이스에 따라가야 합니다. 뒤따르는 사람이 걸음을 잘 못 걷는다거나 할 때 조금씩 뒤처지게 되는데 이게 여러 사람에 걸쳐 누적되다 보면 맨 뒤에 가는 사람은 자기 페이스를 잃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허덕이게 됩니다.

경남 창녕군 화왕산 억새 등산 모습. ⓒ경남도민일보

경남 창녕군 화왕산 억새 등산 모습. ⓒ경남도민일보

우리는 중간중간 남자를 배치해 독려해가며 가기로 했고, 구례 화엄사에서 출발해 1박이 예정된 노고단까지 예정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지체해서야 겨우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도로에서 미약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교통체증이 자주 일어납니다. 맨 앞에 가던 차는 오르막이 시작된다는 것을 인지 못 하고 평지와 같은 수준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갑니다. 당연히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게 되는데, 뒤따르는 차는 앞차와 거리가 가까워지니 브레이크를 살짝 밟게 됩니다. 그 뒤차는 앞차 브레이크등에 불이 켜지는 걸 보고는 조금 더 브레이크를 밟게 됩니다. 이게 누적되면 10여 대쯤 뒤에 오던 차는 거의 정지하게 되고 체증은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걸 두고 환영 효과(Illusions Effect)라고 합니다.
등산 대열에서 맨 뒤에 가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것도 일종의 환영 효과라고 할 만합니다. 조금씩 누적된 지체가 대열 전체로 보면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생산현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부품 2가지가 들어가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각 부품별 공정 소요 시간은 제각기 다릅니다. ㄱ부품은 1분에 한 개씩 나오는데 ㄴ부품은 10분에 3개씩 나옵니다. ㄱ과 ㄴ을 결합해서 ㄷ을 만드는 공정에서는 ㄱ부품 3개가 쌓일 때까지 ㄴ부품이 도착하지 않아 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ㄱ부품은 쌓여만 가고 ㄴ부품은 제때 안 오니 계속 일 없이 쉬는 시간이 생기게 됩니다. 각각 공정은 성실하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정작 전체 공정에서 보면 노는 일손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 비효율을 해결하겠다고 ㄴ 부품 생산 라인을 3개 더 증설했더니 ㄷ부품 공정에서 비효율성은 사라졌는데 이제는 재고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ㄱ부품 라인을 조금 줄이고 ㄴ부품 라인을 조금 증설해서 속도를 맞췄더니 시장 수요만큼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 가지 방법 다 비효율적입니다. 각각 공정은 최대의 효율로 가동되는데 전체 공장으로 보자면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재고가 쌓이면 자금 회전이 막히고 경영에 부담을 줍니다. 생산이 시장 수요에 못 따라가면 더 많은 돈을 벌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공정별로 어느 정도의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공장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려 할 것입니다. 반대로 ㄷ공정에서 빈둥거리는 노동자를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작 중요한 효율성은 놓치게 됩니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5년 9월 16일 자에 게재됐습니다. 기록 차원에서 블로그에 포스팅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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