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도 시장에 믿고 맡겨라

서양 우스개에 경제학자와 싸우면 안 되는 이유라는 게 있습니다. 답 중 하나가 경제학자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밀병기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뭐 적이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보이기라도 해야 싸우든 타협하든 도망치든 할 건데 보이지 않으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경제학에서 벌어지는 논란 중 많은 것이 ‘시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시장이 그 ‘보이지 않는 손’ 구실을 하는데, 그 비밀병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두고 많이 다투는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에서 주류는 신자유주의입니다.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나 어찌 보면 ‘시장만능주의’라 할 수 있을 만치 시장을 숭배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는 국가가 영향력을 행사할 때 시장을 왜곡하게 되고 건전한 경제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수요와 공급 변동에 따라 자유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가격에 따라 수요와 공급도 조절된다고 봅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자유경쟁시장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상상 속에서, 이론에서나 상정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장이기에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다른 경제학자들은 이런 시장만능주의가 폐해가 많은 만큼 국가나 사회가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장에 얼마만큼 개입할 것인지를 두고도 생각의 편차는 매우 큽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 교과서 8종. ⓒ대한민국 공감

정부가 어제(3일) 발표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도 시장 논리로 볼 수 있습니다. 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하겠다는 것은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철저히 계획하고 통제하겠다는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같습니다. 교과서 자유발행제도는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시장에서 소비자가 선택하는 상품이 살아남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같습니다. 현행 제도인 검인정 교과서는 시장에 맡겨는 두되 시장이 제구실을 못 하는 부분에는 국가가 개입하는 경제체제입니다. 여기는 수정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기타 시장 시스템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는 여러 경제 사조가 포함되겠습니다.

이렇게 논란을 단순화해놓고 보니 쓴웃음이 납니다. 대한민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래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편입됐습니다. 집권여당은 물론이고, 야당 내에도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신봉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경제관이나 신념에 맞는 주장을 하려면,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주장해야 합니다. 설사 자유롭게 발행된 교과서 안에 종북이나 자학 사관이 들었다 할지라도, 친일·독재 미화가 들어있다고 할지라도, 시장에서 이런 저질 교과서는 퇴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인정 제도만 해도 신자유주의 경제와 맞지 않습니다. 이미 작년에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2000곳 이상이 정부 요구로 수정됐습니다. 국가가 시장에 나갈 상품을 평가하고 ‘이것 안 고치면 시장에 못 내놔’라고 개입한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공산주의식이라니요.

흔히 알려진 대로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국가가 계획하고 통제하는 사회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집권한 세력이 국사 교과서만은 공산주의를 도입하겠다고 나섰으니 이보다 더한 개그가 또 어딨겠나 싶습니다.

이왕 논란이 붙은 것, 세게 제대로 논쟁이 붙어서 이참에 교과서 자유발행제도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친일을 미화하든, 독재를 미화하든, 주체사상을 미화하든, 반미를 담고 있든, 백가쟁명으로 교과서를 다 내보라고 하는 겁니다. 시장에 던져졌을 때 어떤 교과서가 채택될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게 시장이고, 그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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