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금융전쟁 준비는 어쩌고 사드 타령?
얼마 전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 주인공 여진이 복수극을 벌이던 중 시아버지가 될 뻔했던 대정그룹 최 회장과 한판 승부는, 좀 뻔한 스토리였지만 박진감 있게 그려졌습니다. 회사 인수합병을 두고 양측이 베팅을 이어가면서 판돈을 엄청나게 불려놓고는 여진이 갑자기 발을 뺌으로써 대정그룹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설정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서 국제적인 금융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곤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용한 돌팔이’ <용팔이> 드라마 포스터. ⓒSBS주식시장에서 베팅은 도박판에서 일어나는 베팅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도박판에서 배짱 하나만으로 무리한 베팅을 하다가는 밑천 털리기 십상인데, 주식시장에서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재빨리 발을 빼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진 돈을 전부 잃어도 된다는 투자자가 있어 이런 베팅을 한다면? 물론 상대방은 자신의 상대가 모두 잃어도 상관없다는 점을 모른다고 할 때 효과는 더 극적이겠지요.
중국은 미국 달러를 3조~4조 달러 정도 가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미국이 달러화 가치를 10% 평가절하하는 조치를 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그밖에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전 세계 나라들이 보유한 국부 10%가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처럼 미국으로 이전되고 맙니다. 중국은 4000억 달러,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 많은 돈이 졸지에 증발해버리게 됩니다. 달러를 보유한 나라들이 앉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금융전쟁의 전조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2010년 중국은 미국 재무부 증권의 순매수자에서 순매도자로 돌아섰습니다. 반면 그해 영국이 미국 재무부 증권 최대 구매자로 떠올랐는데, 배경으로 중국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직접 거래보다는 제3국을 통한 관리에 나섰다는 의혹입니다. 그보다 앞서 중국 국부펀드가 미국의 강력하고 공격적인 사모펀드 주식 30억 달러어치를 사려고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엄청난 돈이지만 중국이 보유한 달러의 0.1%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미국 증시에서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같은 대표주를 공격함으로써 증시 정도가 아니라 미국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중국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시절은 하수상합니다. <용팔이> 여진과 최 회장처럼 미국과 중국이 직접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세계는 금융전쟁 일보 직전까지 와 있습니다. 정보와 기술과 여건은 이미 충분합니다.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자본의 음모를 걱정하는 분들은 3차 세계대전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만, 만약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총이나 미사일, 핵무기 같은 물리적인 전쟁보다는 사이버 전쟁, 금융 전쟁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봅니다. 그 피해는 물리적 전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치명적일 것입니다.
물리적 전쟁이야 ‘주적’ 개념으로 북한만을 상정하고 있습니다만, 금융전쟁은 주적이 누군지는커녕, 전쟁 중이라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미 97~98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가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경험이 예방백신으로 작용해야 할 터인데, KFX(한국형 전투기) 사업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게 한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5년 11월 18일 자에 게재됐습니다. 기록을 위해 블로그에도 올려둡니다.
최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