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참, 별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젯밤 잠을 설치고, 오늘 밤도 잠을 설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무척 짜증이 났습니다.

어제는 서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집에 오니 자정이 가까웠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요.

새벽녘이었습니다. 웬 개구리 우는소리 같은 큰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개구리 소리라기에는 너무 크고, 그렇다고 천지가 진동할 그런 소음은 아니고, 사람 기분 나쁘게 할, 딱 그 정도의 소리였습니다. 옥외난간에 나가 내려다봤더니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을 깜빡이면서 그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도난 방지기에 무슨 문제가 생긴 듯했습니다. 옥외난간에 앉아 담배 하나 피고 나서, 내려가서 차 주인에게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소리도 그쳤습니다. 그래 그냥 자려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깬 잠이 쉬 되돌아오지는 않더군요.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려 하는데 또 그 소리가 났습니다. 이런 왕짜증 ㅠㅠ

그때는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나는 5시 반이면 일어나서 인터넷 신문 편집을 해야 합니다. 그냥 참고 일찍부터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몇 분 동안 께르륵 거리더니만, 그 소리도 곧 그치더군요. 집중해서 편집을 하고 있는데 여섯 시가 다 돼 갈 무렵 다시 그 소리가 났습니다. 화가 나서 뛰어내려 가봤더니, 차에는 그 흔한 연락처도 하나 없고, 아파트 관리소에서 발급한 동·호수가 쓰인 스티커도 없었습니다. 짜증이 나고, 누군지 꼭 보고 싶기는 했지만, 아침 바쁜 시각에 그 일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무시하고 하던 일 계속 했습니다. 새벽잠을 설친 덕에 오늘 하루는 완전 엉망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어제 서울 출장 갔다 온 보고서를 쓰려 하는데 또 그 소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뿌리뽑겠노라고, 경비실로 달려갔습니다. 경비 아저씨와 함께 그 소리가 나는 차 있는 데로 와서 확인했지만, 여전히 누구 차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새에 이웃이 경비실과 관리실에 막 연락을 한모양이었습니다. 관리실에서도 왔지요. 그렇지만, 관리실에 등록되지 않은 차라 했습니다. 경보기가 제대로 울렸더라면, 아마도 차주가 내려와 봤겠지요. 그러나 쏟아지는 비 때문에 잘못 동작한 듯,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도 아니니 참, 딱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더군요. 오늘 밤도 잠 못 이룰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집에 왔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나는 좀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입니다. 더구나 어제 설친 잠을 벌충하느라 10시쯤 돼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살포시 드는 순간 예의 그 기분 나쁜 소리가 또 났습니다. 들던 잠이 깨고 나니, 정말 기분 더러웠습니다. 어제도 제대로 못 잤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잠은 오지 않고, 괜히 짜증이 나 옥외난간에 나가 비상등 깜빡이며 소리를 내는 차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견인차가 오더니 그 차를 끌고 가더군요.

그 사람도, 일부러, 지어, 우리 아파트 사는 사람들 잠 못 자게 해야지, 하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일 아침이면, 아마도 그 차 주인은 굉장히 당황하고 화를 낼 것 같습니다. 이 아파트에 입주해 사는 사람이라면 더 화를 내면서 아파트 관리소에 막 따지겠지요. 어쩌면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가면, 관리소 직원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웃이 나서 잠 못 이룬 이야기를 하며 따진다 하더라도, 아마도 그 차주는 미안한 생각보다는 자신의 차를 견인해 간 데 대해 화를 내는데 열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제3자는, 차주 편을 들 수도 있겠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주민의 차를 견인해가게 하는 데가 어딨느냐”고요.

이왕 달아난 잠, 여러 가지를 곱씹어 생각해 봅니다.만약, 그 차주가 연락처라도 남겨뒀더라면, 입주할 때 관리소에 차를 등록했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아냐, 요즘은 차에 남겨둔 전화번호로 사기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래, 입주하는 사람의 차 번호를 관리소에 등록하게 하는 일은 어쩌면 과다한 개인 정보 요구일 수도 있어. 혹시’대포차’라면 전화번호를 남길 수 없을지도 모르지. 아니, 이사온지 얼마 안 돼 미처 관리소에 등록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일리가 있지요. 그러면 바꿔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이 아파트에 입주한 그다음 해에 큰 태풍이 왔습니다. 몇 집은 옥외난간 유리창이 깨어지기도 했고, 지하 주차장 내려가는 통로 지붕이 날아가는 바람에 애꿎은 차 몇 대가 ‘작살’이 나기도 했습니다. 차주를 불러 조치를 해야 하는데 전화번호도 없고, 관리소에 등록도 안 돼 있고, 누구 차인지 알 길이 없다면 어땠을까요. 태풍이 몰아쳤을 때는 밤이 꽤 늦었는데도, 관리소에서 방송을 해서 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기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어디 다른 데 가 있거나 해서 차를 지하로 옮기지 못했을 때, 연락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피해를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내 차를 운전한 지가 벌써 15년을 넘겼습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내 차보다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데요, 예전에는 ‘삐삐’ 번호를, 요즘은 손전화 번호를, 내 차를 가지고 얼마 안 돼서부터 지금까지 운전대 위쪽에 붙여 놓고 다닙니다. 자동차는 손수건이나 접는 자전거처럼 접어서 어찌 못하는 것이고,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세워둬야 합니다. 차를 세울 때는 내 차가 다른 차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처럼 보여 그냥 세워뒀는데, 뒤에 앞 뒤 옆에 있는 차가 빠지고 다른 차가 서고 하면서 내 차가 다른 차에게 방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차를 잘못 주차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분명히 내 차 왼쪽에있는 차가 주차 선을 넘어 서 있기에, 나는 할 수 없이 오른쪽으로 밀려 주차를 했는데, 왼쪽에 있던 차가 빠져나가고 다른 차가 주차 선에 맞춰 세웠습니다. 내 차 오른쪽에 차를 세운 차주가 나에게 막 화를 내면서 “주차도 제대로 못하는 넘이 차는 왜 끌고 나와”라고 화를 냅니다. 나는 억울하지요. 그래서 요즘은 조수석 쪽으로 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주차 선에 맞춰 차를 세우려 애를 씁니다. 그런 차원에서 차에 연락처도 꼭 남겨 둡니다. “내 차다. 불편하면 이리로 연락하시오” 하고 연락처를 남겨 두는 것입니다.

참, 별것 아닌 일로 화가 나기는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할 때, 그 불편을 없앨 수 있는 통로로 연락처를 남겨둔다면, 서로 얼굴 붉히고 짜증 내는 일은 한결 줄어들지 않을까요?

내일(이런, 벌써 오늘이 돼버렸네요) 아침에는 그 차 주인 얼굴을 꼭 보고 싶은데, 그리고 저간의 일을 얘기해 주고 싶은데, 그럴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도 당장은 화가 나겠지만, 누가 따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내가 생각한 이런 내용을 스스로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차에 운전자나 차주의 연락처를 남겨 두는 것은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남을 배려하는 작은 마음이라도 있다면 굳이 안 할 까닭도 없겠지요. 기본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더 밝아지지는 않더라도, 더 어두운 사회로 가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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