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인 과잉경호 유감
오늘 아침 출근길이었습니다. 전경 한 명이 인터체인지 진입도로를 막아서 있는 바람에 길이 막혔습니다. 내가 타는 버스는 그 인터체인지를 지나 1km쯤 갔다가 유턴해서 반대편 인터체인지로 진입해야 합니다. 처음 인터체인지에 진입하려는 차들로 밀린 걸 보고 내려서 전경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vip경호 때문에 그런다는 말을 듣고 대통령이 왔나라고 생각하며 반대편으로 가서 내렸던 버스에 다시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전경이 또 인터체인지 진입을 막는 것 아닙니까. 반대 방향인 진입로를 이쪽 막았다 저쪽 막았다 하는게 아마도 그 전경이 처음에 길을 잘못 막았거니 생각하면서도 은근이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나는 시내버스를 환승해야 하는데 갈아탈 버스가 오기까지 보통 2~3분 정도 여유 밖에 없습니다. 두 번이나 이 친구 때문에 서 있다 보니 갈아타야 할 버스 시각이 지나버렸죠. 그 버스는 27분에 한대 있는 노선입니다.
나는 지금껏 대통령 2명과 국무총리 1명, 영부인 1명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해봤습니다. 대통령 경호야 무척 까다롭죠.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오면서 점차 누그러졌습니다.
처음은 95년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거제에서 기자 노릇하고 있었는데 대우조선에서 잠수함 진수식 한다고 김영삼 대통령이 왔습니다. 멋도 모르고 카메라 들고 들어가려다 검색대에 보관해 두고야 식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식장에 들어가서도 단상과 나란히 있는 기자석에서 꼼짝도 못하고 앞만 보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멀찍이 있는 멀티비젼을 통해서 대통령 연설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 고개를 옆으로 돌려봐도 대통령 모습을 볼 수 없었지요. 말이 대통령 취재지,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 장식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다음은 국민의정부 초대 총리로, 실세 중에 실세 총리였던 김종필 총리를 진주에서 취재할 일이 있었지요. 아마 1999년이나 2000년 어름이었을 겁니다. 진양호 둑을 높여 새로 쌓았는데 준공식한다고 온 것이지요. 그런데, 이때 경호가 얼마나 삼엄한지, 나는 직접 경험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 박통이나 전통 시절 못지않게 삼엄하다고, 같이 있던 선배 기자들이 수근대더군요. 물론, 그럴만한 까닭이 있긴 했습니다. 농민들이 총리에게 보상문제로 달걀을 던질 것이라는 첩보가 있었고 실제 행사장에서 직선거리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농민 집회가 예정돼 있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5년 쯤 전에 대통령 경호에 맞먹는 경호를 하는 것은 오버했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아, 이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당시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유료화 된지 얼마지 않았습니다. 총리 일행이 탄 차가 사천공항에서 서진주 나들목으로 들어오려는데 요금소에서 ‘총리면 총리지 왜 도로비 안내려느냐’는 비슷한 취지로 근무 직원이 따지는 바람에 행사장 도착이 5분쯤 늦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도로비를 냈는지 어쨌는지, 그 직원은 무사히 그 요금소에서 계속 근무했는지는 알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네요.
최근의 대통령 취재는 2007년 2월이던가, 신항 개장식이었습니다. 물론 검색대를 통과하고 노트북이나 카메라 따위도 일일이 점검을 받은 뒤 비표를 붙이고서야 들어갈 수 있긴 했지만 전부 가지고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기사 작성에 송고까지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딱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주변의 휴대전화 기지국을 중지시켰는지 아니면 방해전파를 쏘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휴대전화가 행사 끝날 때까지 먹통이 됐다는 점이었습니다. 행사장을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었고, 앞에서 대통령이 연설을 하건 말건 뒤에서 참석한 주민 붙잡고 인터뷰를 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YS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였지요.
회사로 오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대통령이 올 날은 며칠 더 남았고, 오늘 창원 CECO에서 물 엑스포를 한다니, 아마도 물과 관련있는 환경장관이나 수자원공사를 관리하는 건설장관이나 아니면 뭐 총리쯤 되는 이가 방문했겠거니 싶더군요. 그렇다면 이게 뭡니까. 장관이나 총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시간 맞춰 가게 하려고 생업에 바쁜 시민의 발을 묶어둬도 된다는 것인가요.
우리나라 경호 능력도 굉장히 발전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몇 년 전 부산에서 APEC 정상회담 경호도 해봤고, ‘적성국가’라는 북한의 심장부에 대통령을 두 번이나 모시고 가서 경호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장관급 움직인다고 도로를 막는 60년대 70년대식 경호를 하다니 이명박 정부 들어 경호 요건이 까다로워지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따져보면 도로를 막는 것은 ‘경계하고 보호한다’는 뜻의 ‘경호’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2000년인가였을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광양군 다압면에서 ‘사랑의 집 지어주기 운동’ 현장을 방문한다기에, 진주에서 근무하는 나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서 광양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쇳덩이가 타이어에 박히는 바람에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져 목숨까지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겨우 차를 진정시켜 갓길에 세우고 살펴보니 휠이 깨어져 완전히 교체를 해야 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영부인 일행이 탄 차보다 내가 10분 정도 앞선 거리에 있는 듯 했는데 견인차 부르고 했다가는 취재를 망칠 형편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공구 꺼내 타이어 교체 하려고 낑낑대는데 경찰차가 와서 서더니 “뭐하고 있느냐”고 대뜸 호통부터 쳤습니다. 여기 있으면 안되니 가드레일 넘어가서 언덕 밑에 납작 엎드려 있으라는 것이었죠. 어이가 없어 왜 그러는지는 안다. 나도 광양으로 가야한다. 취재해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무전기로 뭔가 상의하는 듯 하더니 그래도 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대신, vip 지나가고 나면 자기들이 타이어 교체해 줄테니 뒤따라 가라고 하더군요. 달리 별 수가 없어 그리 했고, 취재를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vip가 탄 차에 뛰어든다거나 차로 어떻게 하거나 하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경찰관들은 아마도 고속도로에 민간인이 뻘쭘하게 있으면 경호실에 깨어질 것이 더 걱정돼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전에 취재기자로 등록하지도 않은 나였지만 영부인 바로 옆에 붙어선 경호원 옆에 따라붙으며 미니 인터뷰까지 했으니 당시 경호가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았던 셈이지요.
오늘 아침의 그 도로는 정체가 될 시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장관이 탄 차라고 요란하게 표시내고 가지 않는 한 보통 시민들은 누가 오는지 가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입을 막은 것은 ‘높은 어르신 지나는 길에 걸리적거리지 마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지나친 권위의식이요, 지나친 알아서 기기입니다.
요인을 안전하게 잘 보호하되 국민과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요인의 업무 처리 편의를 봐주긴 하되 시민의 생업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그런 경호가 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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