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지난해 11월 30일, 인터넷 포털 ‘다음’ 실시간 검색어로 부산일보가 올랐습니다. 그날 부산일보 사 측은 부산일보 편집국이 만든 기사를 막고자 윤전기를 세우고, 신문발행을 중단했습니다. 또한 온라인에 기사가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고자 홈페이지마저 폐쇄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언론사에서 권력에 의해 기사가 마음대로 가위질 된 적도 있고 노조 파업으로 신문 발행이 중단된 일은 있었습니다만, 경영진이 신문발행을 막은 적은 없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정수재단’이 있습니다. 정수재단은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장학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 신문사를 소유하지 못할 까닭은 딱히 없긴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수재단이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관계가 있기에 문제가 됩니다.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기자회견. ⓒ언론노조

부산일보 노조는 “정수재단은 독재시절의 장물이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해야한다”라고 주장하는데요, 5·16 군사쿠데타로 세력이 남의 재산을 강탈해 그 재단을 설립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화해위원회는 “1962년 3월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에 지시해 부일장학회의 재산을 강제 기부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진실위는 “부일장학회가 공적으로 운영돼야 하나 5·16 장학회를 거쳐 정수장학회로 이어져왔으며 그 과정에서 사유재산처럼 관리됐다”고도 밝혔습니다.

박정희가 사유재산을 강탈한 것만 해도 심각한 공민권 침해로 문제가 되는데,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사유재산으로 둔갑해 상속되다시피 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재단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수재단 이사장을 하는 동안 1995년부터 1998년까지는 비상근직으로 연간 1억 3500만 원을, 1999년부터 2005년까지는 상근직으로 연간 2억 5350만원씩을 각각 받아갔습니다.

박 비대위원장은 2006년 정수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났습니다만, 박정희와 박 비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활동해온 최필립이란 이가 이사장 자리에 앉으면서 박 비대위원장의 ‘수렴청정’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언론인, 정치인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저자 김재홍 씨가 박정희 유신정권이 어떻게 망조가 들어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권력 핵심부에 있던 인사들의 육성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을 내놨습니다. 그 중에는 박정희가 쿠데타 자금 지원을 거부한 부산의 재력가 김지태로부터 어떤 야비한 수단으로 부일장학회를 강탈했는지, 그 부일장학회를 바탕으로 어떻게 MBC와 경향신문을 사유화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렸는지를 생생한 증언으로 제시한 내용도 있습니다.

박정희 권력의 횡포는 모두가 민주주의의 기본규범을 파괴한 것이 핵심 문제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권력의 횡포로 얻은 전리품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상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박근혜.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연권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확립된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의 수호야말로 국가권력을 포함해서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3대 기본권입니다. 이 중에서 반민주적 독재권력이 침해하는 것은 대부분 자유권과 생명권입니다. 재산권에 대해서는 웬만한 독재권력도 대부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박정희 정권은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의 사유재산을 거침없이 강탈했습니다. 저자는 몰수해서 국가 헌납을 해도 안 될 일인데 강탈해서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고 그것을 후대가 상속재산처럼 운영해 박정희에 의한 ‘더러운 전쟁’의 전리품을 딸인 박근혜 의원이 손에 넣은 모양새가 됐다고 기술합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아마도 이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혈서로서 ‘대일본제국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일본군 장교로 입신한 박정희가, 4.19혁명정신을 짓밟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도 어언 반세기가 지났다. 1961년 민주정부를 뒤엎고 총으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가 18년간 일인독재 철권통치를 자행한 끝에 그의 심복인 김재규의 총탄에 비명횡사한 지도 벌써 32년이 지났다. 한 세대가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그 ‘박정희 망령’이 아직까지도 우리 현실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에 ‘민주혁명’의 대의로써 박정희를 처단한 김재규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후 아직까지도 그 명예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어쨌거나 북한의 삼대 세습과 유훈통치를 비판하면서도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헌정 유린 사범, 쿠데타 주범, 역적패당의 수괴 박정희가 유령으로 떠돌며 한국 정치를 농단하는 시점에서 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자못 의미가 깊습니다.

특히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한 내용은, 일반적인 권력 뒷얘기가 그렇듯이 야릇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줍니다. 주색잡기에 빠진 박정희 말기에 대한 기술에서는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이라거나 “화대는 100만~200만 원, 반강제 ‘차출’도 허다했다” “상상을 초월한 박정희의 술과 여자” 같은 ‘아랫도리’ 얘기는 소름이 돋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는 정당방위였다”거나 김재규는 군사독재를 청산하려는 최후 수단으로 박정희를 사살했다면서 어느정도 ‘영웅시’까지 하고 있는데, 그런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김재규의 그 ‘거사’도 모양을 달리한 쿠데타였을 뿐이며 실패한 쿠데타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설령 성공했다 할지라도 전두환·노태우 나부랭이와 하등 다를 바 없이 역사의 단죄를 받아야할 범죄일 뿐입니다.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김재홍 지음, 328쪽, 책보세, 1만 5000원.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digilog4u(디지로그포유)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