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면 행복할까에 대한 단상.txt

참 많이 고민된다. 왜 이리 ‘이혼’한 부모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을까.

몇시간 후면 소년체전 취재하러 전북으로 떠난다. 2002~03년, 2018~19년. 소체취재 4년차이다. 

해마다 교육청에서 모법·미담·이색 사례를 제공해 준다. 뭐 그걸 기사로 쓴 건 10%도 안될 것이다. 지금도 혹시나 참고할 자료가 있을까 싶어 교육청이 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아빠(엄마)를 대신해준 할빠(할아버지+아빠)·할마(할머니+엄마)를 위해 꼭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은혜에 보답할 거예요.”

어쩌면 이리도 한결일까. 부모는 이혼했다. 생활전선에 내몰린 한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어버이에게 맡겨뒀다. 그런 불우한·어려운환경에서도 열심히 운동해서 경남대표로 뽑힐 정도로 기량을 뽐내고 있다. 올림픽에 나가기 전 소년체전에서 경남 명예를 드높이겠다.

내가 주목하는 건 아이의 이런 도전과 함께 그 부모는 왜그랬을까 하는 부분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도전할 목표를 갖고 열심히 하는 이 어린선수들을 응원한다. 이아이들이 그런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더라면 이만큼의 성장을 이뤄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원래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므로…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른바 ‘행복 추구권’이다. 신혼이혼이든 황혼이혼이든, 또는 졸혼이든.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누구나 행복하고자 선택을 뒤집을 수는 있다. 또는 최소한 ‘불행’은 피하고자 도망갈 수도 있다. 

‘이혼’한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남은 아이들은 뭔가 싶은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가지 신조가 있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은없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얘기는 했다. 굳이 따를 필요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산다고.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걸 벗어나고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말자.’

사정을 모르는 남들이 봤을 때 ‘오죽했으면 이혼했을까’ ‘오죽했으면 달아났을까’와 ‘남은 아이들은 뭐냐고’가 충돌하는 장면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이혼을 세 번했다. 이 얘기를 술자리에서 꺼내면 ‘능력자’ 얘기가 먼저 나온다. 씁쓸하다. 나는 그런 취지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3번 결혼하고 3번 이혼할 수 있느냐고 받아들인다. 아니, 그보다는 ‘3번 결혼’에 방점을 찍는 얘기가 더 많다.

3번 이혼한 그 선배 얘기 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만, 나의 행복추구권과 나의 행위에 따른 새로운 생명체의 행복 추구권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게 현명한 것일까 하는 게 고민이다.

왜 이 아이들은 이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할까. 이 아이들을 이렇게 힘들게 한 그들은 지금 어디에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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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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