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견 휠체어 자작 후기

우리집 댕댕이가 이제 나이가 많아 ‘노령견’에 들어갑니다. 유기견은 아니었지만 한 할머니가 키우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며 유기하려는 것을 우리가 데려와서 벌써 15년이 지났네요. 당시 그 할머니는 몇살인지도 모르겠다며 한 1년 키웠는가 싶다고 했으니 아마 16살 쯤 되지 싶네요.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깔이 대단해서 동물병원이고 미용실이고 호텔이고 그냥 손사래를 칠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예방주사 한 번 안맞힌 것 같았고, 미용도 집에서 할머니가 직접한 것 같더군요.

10살 무렵, 장이 사타구니 근육 사이로 흘러내리는 탈장으로 수술 받고 10여일 입원했던 적은 있지만 그밖에 다른 병치레 없이 잘 지냈는데 최근 부쩍 노화에 따른 불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척추디스크입니다. 예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심해져 스스로 일어서는 것마저 힘들어 합니다. 그러다보니 척추 주변과 뒷다리 근육이 퇴하하고 걷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근육은 더 퇴화하고… 악순환이었죠.

우선 뒷다리와 배를 감싸서 들어올릴 수 있는 도구를 구매해서 한손으로는 허리를 들어주고 한손으로는 목줄로 이끌며 산책을 시키다보니 뒷다리 근육도 올라오는지 제법 스스로 일어나서 걷기도 하네요.

그래서 억지로 시키는 산책 말고,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댕댕이 휠체어를 알아봤는데, 이건 너무 비싸서 ㅠㅠ; 30만~40만원을 예사로 넘기더라고요. 그래서 이리저리 DIY로 만든 사례는 없는가 구글링해봤더니 제법 쌈박한 아이디어가 보이더라구요.

그래! 도전!!!

우선 PVC 파이프를 쓰기로 했습니다. 비교적 자르고 연결하고가 수월할 것으로 봤습니다.

처음 PVC 파이프 20mm 규격 1개하고 ㄱ자 앵커 8개, ㅜ자 앵커 4개, 자유회전 바퀴 2개와 1자주행 바퀴 2개를 샀습니다. 설계도부터 그리지는 않았고, 그냥 대강 머리속으로 개념도를 그려가며 하나하나 자르고 조립했습니다.

대강 구상한 그림입니다. ㄱ자나 ㅜ자 앵커 모두 파이프가 26mm 들어가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횡축과 종축 길이를 정할 때 자른 파이프 길이에서 52mm만큼 변동이 있다는 걸 고려해야 했는데, 처음에 이걸 잘못 계산해서 좀 헤맸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인 집에서 그냥 쇠톱으로 자르다 보니 정확하게 잘라내는 게 힘들었고 비스틈하게 톱질이 되면서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기도 하고 짧기도 해서 조립하고보면 아귀가 딱 안맞기도 해서 이거 미세조절한다고도 애를 먹었네요.

그래서 ‘26mm가 앵커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에 주목해서 대강 앵커와 앵커를 연결하는 파이프 길이는 52mm가 아니라 48~50mm로 잘랐습니다. 짧은 것은 조금 덜 밀어넣으면 되지만 길면 다시 잘라내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든 게 이거였습니다. 몇가지 문제가 발생했는데요, 바퀴 고정대 폭이 파이프 굵기보다 넓다 보니 안정적으로 고정이 안됩니다. 또한 횡축을 잡아주는 파이프가 1개씩 밖에 없어 굉장히 불안정했습니다.

그래서 보완책을 고민한 끝에 앞뒤로 길게 파이프를 연결한 다음 횡축을 앞에 2개, 뒤에 2개를 추가하고 바퀴도 4개 고정점 가운데 3개를 고정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사각형으로 생긴 자리에 나무판을 덧대 4개를 모두 고정할까도 생각해봤지만, 5㎏이 안되는 우리 뭉치 몸무게를 생각해보니 3개만 고정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구상이었고, 하다 보니 파이프가 더 필요해서 4m짜리 파이프 하나와 회전형 바퀴 2개, ㅜ자형 앵커 8개, ㄱ형 행커 4개를 추가 구매했습니다.

그리해서 탄생한 게 이녀석입니다. 한데 앞뒤로 길쭉해지다 보니 위에 표시한 부분이 약간 불안해 보입니다. 저 상태는 파이프 연결부위를 고정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연결 부위에서 약간의 이격이 겹치면서 약간 아래로 처지더군요.

이후 각 연결 부위를 나사못으로 고정했습니다. 원래 PVC 파이프 전용 본드가 있습니다. 본드로 고정할까도 고민해봤지만 그러면 나중에 변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싶어 나사못 고정으로 했습니다.

지금은 아직 울집 댕댕이가 이 휠체어에 적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간식으로 유혹하며 운동을 시키는데 놀이터 2바퀴 돌면 헉헉대네요. 하지만 조만간 적응하고 열심히 훈련하면 예전같은 젊음을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더는 근육이 퇴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작하면서 몇가지 팁이 있습니다. 파이프나 앵커 모두 거의 비를 바로 맞는 건물 외부에 보관돼 있습니다. 먼지와 매연 등으로 심하게 더럽습니다.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바퀴. 이것도 처마밑에 보관돼 있더군요. 뻑뻑해서 잘 구르지 않기에 4WD로 한번 세척해줬더니 딱딱하게 굳은 구리스가 덩이째 빠져나오더군요. 이후에는 정말 부드럽게 잘 작동했습니다.

남은 과제는 아내의 요구이긴 한데 사실, 이제는 쓰는 것 말고는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위쪽에 댕댕이를 앉힐 수 있는 바구니를 달고, 뒤쪽에 진자 유모차처럼 밀고다닐 수 있게 손잡이를 만들어 달랍니다. 크게 힘을 받는 부분은 아니니 불가능하지는 않겠는데, 피스로 고정된 일부를 다시 분리하고 ㅜ자 앵커를 몇개 더 사와서 재조립해야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재료는 20mm pvc 파이프(길이 4m) 2개, ㄱ자 앵커 8개, ㅜ자 앵커 22개, 회전바퀴 4개, 1자형 바퀴 2개입니다.

파이프 1개에 4000원씩 8000원. ㅜ자 앵커 1개에 1000원씩 12개 1만 2000원, ㄱ자 앵커 개당 2000원에 8개 1만 6000원, 바퀴 개당 2750원씩 6개 1만 6500원. 직접 지출된 돈은 총 5만 2500원, 부가세 별도였기에 부가세 포함해서 5만 7750원이 들었습니다. 이 중 ㄱ자 앵커는 계산 잘못으로 4개가 남았고, 1자형 바퀴 2개도 남았습니다. 그리고 파이프도 2m 정도 남았네요.

여기에 집에 있던 피스 제법 많이 소모했고, 전동 드라이브 방전으로 3번을 완충했습니다. 톱밥 등 청소한다고 진공청소기 돌리면서 전기요금도 조금 추가.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PVC파이프 앵커가 ㄱ자와 ㅜ자로 2차원 연결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레밍의 왼손 법칙처럼 3차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앵커가 있다면 앵커 사용은 줄이면서도 훨씬 심플하게 만들수 있겠는데, 우리동네에서는 구할 수가 없더군요.

가성비는 괜찮아 보입니다.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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