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아들자랑 그리고 한국 과학기술

물리학에 ‘초끈이론’이라는 게 있단다.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여기에 푹 빠져 있기에 뭔가 싶어 책 한권 읽어봤다만, 내 지적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자식들은 부모를 초월하는구나’ 자각했고, 내 품에서 놓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날아갔고, 힘든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 ‘지금’이 뭔지는 나중에 애기해야겠다.

9644B654-8620-406D-949F-802DE999CCE2.jpeg
우리 아들 연구실 지도교수인 정모세 유니스트 교수.

이 글은 몹시 길다. 자랑하는 마음도 조금 들어 있지만, 기록하는 마음으로 쓴다. 마지막에 3줄 요약은 해두겠다.

조국, 장제원, 나경원 등등등.…

금수저 얘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들의 자녀가 이른바 ‘금수저’라는데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어 보인다.

조국 법무장관이 후보 시절 기자회견 하기 전, 내 아내와 대화를 했다. 우리는 저런 반칙과 편법을 쓰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아내 기억으로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경남도교육청을 담당하고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지역 교육청이 영재교실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에게 영재교실이 있으니 학교에 가서 물어보고 지원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알려줬다. 다른 아이들이 모를 수도 있지만 내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알려준 셈이다.

그해 아들은 영재교실 시험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떨어진 후 독기를 품고 영재교실에 합격하겠다며 전문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첫 시험 문제를 받아보고는, 선행 학습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더라며 학교 수업과는 관계없이 과학과 수학을 깊이 공부하는 학원에 보내달다는 거였다. 그래서 6개월 정도 전문 학원에 보냈다. 그리고 5학년 때 다시 응시해서 합격했고 6학년 1년간 영재교육을 받았다.

중학교에 가기전 예비 중1 상대 경남대 영재원과 창원대 영재원에 응시했지만 다 떨어졌다. 아들은 더 독하게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시신경염’으로 시력을 잃었고 열흘정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 일은 1년 쯤 전 아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당시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내가 그 스트레스를 풀어주지는 못할망정 나 자체가 더 스트레스였다고 말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억장이 무너지더라.

예전에 썼던 시신경염 관련 글 – 아이가 갑자기 눈이 안보인다고 하면
그리고 영재원 관련 글들
두 아이 영재원 입학식 마치고
두 아이 영재원 입학식 마치고 2
영재원 또 재수할 것인가
반장하고 짰다는 우리 아들 어쩌리오

1학년 말 예비합격자로 경남대 영재원에 합격했고, 운 좋게 미등록자가 있어 1년을 영재원에 다녔다.

나는 매주말 아이를 장유에서 경남대까지 태워다주고 데려오는 운전기사였고, 우리 가족에게 주말은 마산 월영동 주변 탐색 말고는 할 게 없는 생활을 버텨냈다.

이때만 해도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는 기대로 나나 아들이나 들떠 있었지만,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영재원 다닌 기록은 과학고 입학에 전혀 도움이 안되게 됐다.

고민 끝에 일반고교로 갔는데, 마침 그 학교가 농어촌 고교로 지정돼 교육청과 시 지원으로 기숙형 학교가 됐다. 2년간 기숙사에 있으면서, 그래봐야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그런데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진학한 대학이 울산과학기술대학교. 입학 할 때는 그랬는데 졸업할 때는 ‘울산과학기술원’이었다.

지나고 보니 특권과 반칙을 쓴 적은 없는데 이상하게 많은 혜택을 받았다 싶다. 아들이 울산과학기술대학교에 입학할 때 내가 한 말이 있다.

“아들아, 지금 너는 온 국민이 낸 세금으로 큰 혜택을 받고 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어영부영 할 거면 지금 포기해야한다. 너 아닌 다른 꿈이 크고 실력 있는 사람이 너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기회를 잃었다. 그 사람이 잃은 기회의 가치까지 너가 수용하고 더 뛰어난 성취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내 바람을 배신하지는 않았다. 그간 방황도 있었고, 힘든 시기도 보냈지만 이제는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는 듯하다.

멋있는 우리 아들의 앞날을 축원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아, 여기 링크 하나 건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얘기 중 한 부분은 우리 아들이 담당하고 있다.

우리 아들이 하는 연구에 대한 기사
한국에 10명 뿐인 물리학자를 아시나요

우리 아들이 저 프로젝트의 한 부분 설계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 가서 기초 지식을 배워왔고 연말에는 다시 미국에 가서 관련 분야를 배워 올 예정이다. 국내 연구자도 관련 논문을 쓴 사람은 제법 있단다. 하지만 한국에서 설계하고 실험해서 논문을 쓴다면 자기가 국내 최초가 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긴 하다.

세줄 요약

내가 기자라서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려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정보 전달’이었다.

아들이 ‘독기’를 품고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자 노력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댓글은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