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 이야기 2 – 뭉치가 왔다

2002년인가 3년인가 겨울이었다. 지인이 아팠다. 오래 돼 무슨 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진주에 있는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 어느날 어둑어둑한 시각에 병문안을 갔는데, 병실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한눈에 느낌이 좋았다. 물론 그날 뭉치의 행동은,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좋아할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병실에 들어서자 폴짝 창틀로 뛰어오른 뒤 격하게 짖기 시작했다. 귀여워서 손을 내밀었더니 물려고 입질을 격하게 했다.

지인의 병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그밖에 소소한 주변 얘기까지 두서없이 여러 얘기를 했다. 얘기 끝에 뭉치에게로 화제가 옮아갔다.

지인의 남편이 아는 할머니가 뭉치를 내다버리려 해서 데리고 왔다는 거였다. 그 할머니는 직접 뭉치를 기른 것은 아니었고, 함께 살았던 손녀가 기르던 아이였는데 손녀가 서울에 일자리를 잡으면서 떠나고보니 기를 자신이 없어 내다 버리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데리고는 왔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지인의 남편은 당시까지만 해도 아파트 안에서 함께하는 소형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진돗개나 세퍼드 같은 대형견을 좋아했고, 오토바이에 줄을 매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시킬 정도로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덜컥 ‘내다 버리겠다’는 말에 뭉치를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쪽에서도 불감당이었던 상황이었다.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했더니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당시 우리집에는 ‘누리’라고 시츄 강쥐가 있었다. 누리는 지나치게 소심해서 애교도 재롱도 없이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어 나는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내가 뭉치에게 느꼈던 첫 느낌은 ‘활달하구나 에너지가 넘치는구나’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뭉치를 우리집에 데려오기로 했다.

원래 뭉치를 기르던 할머니가 뭉치 나이가 두살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리는 6개월이었다. 우리집에 온지 한두달 된 아이였다. 당시 우리집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귀가하고 우리가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아이들의 정서에 걱정이 많았기에 누리나 뭉치가 아이들의 정서 안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활달한 뭉치가 누리의 성격을 이끌 줄 알았는데, 겁이 많은지 누리에게 기가 눌렸는지 집 한구석에 숨을 곳만 찾아다녔다. 안그래도 활달하지 못했던 누리 역시 텃세는 고사하고 뭉치를 피하려고만 하는데 도저히 관리가 안됐다.

오전 시간대에는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지만, 당장 내다버릴 수도 없으니 온 가족의 근심만 쌓여갔다.

마침 다른 지인 한명이 누리를 달라고 했다. 아들만 셋 있는 집이었는데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이 부부가 정 붙일 데가 없었던 데다가 딸 기르는 주변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딸처럼 기를테니, ‘누리’를 콕 찝어 데려가고싶다고 했다.

우리집 아이들은 꼭 보내야한다면 늦게 온 뭉치를 보내자고 했지만, 나는 우리집에서 기를 못 펴고 사는 누리가 그집에 가서 큰 사랑 받으면 더 좋겠다 싶어 누리를 보내자고 해서 결국 누리가 그집으로 가고 뭉치만 남게 됐다.

뭉치가 우리집에 오고 한달 정도만에 이렇게 정리됐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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