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 이야기 3 – 뭉치의 친구들(1)

뭉치가 우리집에서 17년을 함께 살았다. 하지만 뭉치가 첫번째 댕댕이 가족은 아니었다.

흰색 페키니즈 ‘은별’이

2003년 여름이었다. 동네에 있는 대형마트에 갔다가 반려견과 인연이 우습게 맺어졌다. 마트 동물병원에 ‘강이지 무료 분양’이라는 글귀가 붙어있었다. 호기심에서 들어갔다가 덜컥 ‘은별’이를 데려오고 말았다.

사연인 즉, 웬 여성이 은별이 예방접종을 맡겨둔 뒤 한달이 넘게 찾아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차마 바깥에 내다버리지 못하고, 동물병원이니 잘 해결해주리라 믿고 그곳에 내다버린 것 같다고 했다.

예방접종비용하고, 당장 필요한 사료, 도구 등으로 10만 원을 주고 은별이를 데려왔는데 영 적응을 하지 못했다.

우리집에 온 은별이는 이 모습과는 조금 다른 완전 흰색에다가 양쪽 볼에 분홍색 연지를 찍은 모습이었다. 2006년 이전 사진을 바이러스로 죄다 날려먹어서 자료사진을 썼다.
Photo by Elisabeth Fossum on Pexels.com

하얀색 페키니즈 잡종이었는데 자신을 버린 옛 주인에 대한 트라우마였는지, 아니면 반려견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는지 근 한달 넘게 우리 가족과 데면데면했다. 그렇지만 아침저녁으로 함께 산책도 하고 집에서도 함께 놀아주려고 애쓴 보람이 있어 서로가 조금씩 정을 붙이고 적응해 가던 중이었다.

어느날 아침 은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도망가지 않겠지’ 생각하고 줄을 풀어준 게 화근이 됐다.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경적을 울리자 이녀석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뒤따라 가면서 이름을 목터지게 불렀지만 뒤도 안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이렇게 도망치는 댕댕이 뒤를 쫓아가면 절대 못잡는다고 했다. 달리기 놀이를 하는 줄 알고 더 신나서 달려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걸 몰랐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두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학교 아이들 담임선생님이 전화해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아이들이 내내 책상에 엎드려 울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밤 은별이 사진이 들어간 전단지를 만들어 사방에 붙이고 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이 당시 일은 내게도 큰 트라우마가 됐는데 해당 내용은 이 블로그에 썼던 적이 있다. 아래 링크 참고. 블로그 이사를 몇번 다니다보니 사진이 날아가서 남아있지 않다.

자동자 전용도로 달리던 강아쥐, 살아남았을까?

여담이지만, 요즘은 우리 아파트 단지내 방송으로 강아지 잃어버렸다며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내용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당시에는 언감생심, 엘리베이터 안에 전단지 붙였다고 항의전화 받고 그랬던 시절이었다.

한 열흘을 아이들이 식욕도 없이 울기만 하는 걸 보다 못해 창원에 있는 한 애견샵에 갔다. 강아지 잃은 슬픔은 강아지로 달래야 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서였다.

눈이 맑고 똘망똘망했던 시추 ‘누리’

그렇게 해서 당시 4개월이라는 누리가 우리집에 왔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관련 이야기는 이 앞편 글에서 밝혔다.

이후 이야기를 전하자면, 그렇게 지인 집으로 입양된 누리는 정말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판단이 잘 안된다.

아들만 셋 있는 그집에서 암컷 누리는 정말 딸처럼 엄마 아빠들이 핥고 빨고 애정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흠은, 음식물을 전혀 가리지 않고 줬다는 점이다. 밥먹다가 누리가 옆에서 재롱 부리면 밥상에 있던 생선이며 고기며 예사로 먹였던 것. 그렇게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이 아니다보니 미용에도 소홀했다. 어쩌다 보면 경상도 말로 ‘쑥시밤티’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으니…

경제적 여유가 없고 반려견 정보에 대해 어둡다보니 그랬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누리한테 미안한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3년쯤 전에 누리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함께 모이면 각자 집에 함께하는 반려견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누리 얘기를 전혀 안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번은 용기를 내 어찌된 거냐고 물었더니 몇달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말했다. 그나마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지는 않았고, 지인의 산에 고이 묻어줬다고 말하는데 눈물을 글썽였다.

누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가 16살 쯤이니 예전같으면 장수했다거나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25년까지 사는 애도 있으니 아쉬움은 남는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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