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시민이 99% 위한 대통령 만든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올해는 온갖 정치 담론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많은 정치 담론의 종착점은 ‘우리’의 권력을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선택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 세력들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복지에 대한 논의가 다른 거의 모든 정치적 의제를 집어삼키는 모양새다. 거칠게 이를 요약하자면 집권여당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정권을 맡겨달라고 하고 야권에서는 ‘안 되겠으니, 못 참겠으니 갈아보자’고 하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수준이다. 우리는 왜 이런 정도의 말장난을 보면서 정치 담론을 펼쳐나가야 할까? 사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난제는 한둘이 아니다. 당장 세계 경제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것인지, 자본가들의 친목클럽인 다보스포럼에서마저 현재의 시장 만능 경제체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속에서 한국 경제는 어떤 모습으로 바꿔나갈 것인지,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과 열악해지는 비정규직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하면 자주권을 확대·유지하면서 조국 통일에까지 이를 것인지, 나날이 고령화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낮은 출산율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사교육비·청소년폭력·학교폭력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렇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이 모든 난제가 ‘복지’라는 한 단어 속에 수렴되면서 정작 현실 문제에 대한 진지한 인식이나 성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마침 그에 대한 통렬한 자성을 촉구하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를 역임한 김병준 씨는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에서 몇 가지, 정말 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성장 담론 없이 집권한다? △국가 위의 기업, 무엇이 신자유주의를 불렀나? △집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양극화를 복지로 푼다? △욕심을 버리고 상생을 하라?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가? 라는 일곱 가지 질문이다.

사실 일곱 가지 질문이지만 처음은 저자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표현한 ‘무용지식’을 떨치자는 것이고, 마지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화두로 잡았던 ‘깨어있는 시민’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앨빈 토플러가 처음 만들어 쓴 ‘무용지식’에 대한 설명으로 책을 시작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지식이나 정보를 뜻하는 말이다. 저자의 가정사에서부터 역사적 사실에 이르기까지 ‘무용지식’이 불러온 잘못된 판단과 그로 말미암은 폐해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문제는 평소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무용지식’일 수도 있는데다 사회 변화가 빨라지면서 무용지식의 양도 점차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무용지식이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된다면? 저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로 ‘자기 성찰’과 ‘관용’을 들었다. 다소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주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딘가 낯이 익은 말이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천착했던 ‘깨어있는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저자는 이렇게 독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요구한 다음 진보 개혁진영이 들으면 아파할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저자가 던지는 첫 질문은 ‘성장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저자는 “진보 개혁진영도 더 적극적으로 성장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43쪽)고 주장한다. 보수주의 성장 담론에 대해 이른바 ‘낙수 효과’를 바란 이명박 정부가 친재벌 위주 성장정책을 펼쳤지만 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더라는 예에서 시작해 왜 낙수 효과가 없었는지, 보수적 시각으로 경제를 운영하다간 부동산 투기나 일으키고 서민경제는 엉망으로 만든다는 점을 여러 자료를 제시하며 주장한다.

이어 진보·개혁의 성장 담론에 대해서도 말한다. 저자 결론은 지금의 진보·개혁진영에는 성장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바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서비스업 위주로 전환해야 하고, 투자환경과 자본시장도 훨씬 선진화시켜야 한다. 결국, 복지 없이는 성장이 어렵지만, 복지만으로는 성장하지 못한다. 더구나 저성장의 아픔은 고스란히 서민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므로 진보가 성장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관해 얘기한다.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기업이 국가 위에 서게 되고, 기업이 국가를 쇼핑할 수 있게 되면서 신자유주의 레짐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양극화, 재정위기, 저성장 같은 문제를 일으키므로 최선의 방안도 아니다. 따라서 현실을 인정하되 사회 정책적 역할을 강화하고 시장 역동성을 활용하며 국가단위 정부를 넘어설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의 여기까지는 집권하겠다는 진보·개혁성향의 정치 세력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면 이제부터는 유권자에게 질문한다.

“정치인들이야 늘 그렇게 이야기하죠. 집권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표를 주면 집권해서 세상 바꾸겠노라고. 그런데 그런 약속을 믿고 투표했다가 뜻대로 안 되면 어떡하지요?” (133쪽)

이 질문 앞에서 5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해본다. 5년 전 이맘때, 우리 국민은 정말 분노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10년간, IMF 구제금융의 늪을 빠져나와 성장동력을 세워가던 시절에 대한 분노와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팽배했다. 노무현 정권이 경제정책을 잘 운용했는지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747이 어쩌고 대운하가 어쩌고 하는 세력들이 선동하는 심판론에 따라 과감하게 정권을 교체했다.

그로부터 5년, 지금 대한민국에는 또다시 분노의 열풍이 일고 있다.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심판하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니 근본적으로 우리가 선거철마다 이런 분노에 휩싸이지 않을 길은 어디에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5년 전 화두가 ‘성장’이었다면 지금 화두는 ‘복지’라는 차이는 있지만, 5년 전 성장을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복지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다들 꿀 먹은 벙어리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 성장, 특히 재벌 위주의 대기업들은 크게 성장했습지만 그 성장의 과실은 대기업에, 1%에 몰렸을 뿐 대다수 국민은 이전보다 더 못한 살림살이로 힘겨워하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 감히 예측해보자면 5년 후 우리 국민은 복지가 확대됐다고 하는데 내게 돌아오는 복지는 보잘것없고 복지비용으로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권력만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마저 끼어들 자리가 없는 지독한 편 가르기를 그대로 둬야 할까? ‘1%’의 탐욕이 현재 위기의 근본 원인이므로 그 1%의 자비심에 기대하거나 그들 탐욕의 성과물을 강탈해오면 문제가 해결될까? 인류의 원죄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단칼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으면 될까? 이렇게 거칠게 툭툭 던져놓고 보니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

저자도 그랬다. 결국,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정치지도자는 생겨날 수도, 생겨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 즉 국민이 그 메시아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이미 누가 나오든 간에 어디에 투표할지를 정해놓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다 그놈이 그놈이지 뭐’라는 허무에 빠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5년 전의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해 다시 5년 후 이런 절망에 빠져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분노가 아니라 대안에 바탕을 둔 정권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이다.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김병준 지음, 280쪽, 개마고원, 1만 4000원.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가 내는 월간지  〈기획회의〉 315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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