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진위논란에 실종된 ‘표현의 자유’
“왜 영향력 있는 글을 썼느냐?” 국가 권력 ‘국민 입 봉쇄 의도’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미네르바’를 두고 누가 진짜인지를 가리려는 진위 논란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가려지고 있다. 아니, 그 전에도 검찰에 구속된 박모 씨의 학력과 나이 논란이 벌어지면서 본질을 희석시키는 일이 있었다.
지난 9일 검찰이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모 씨를 긴급체포한데 이어 10일 구속했다. 박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전기통신기본법의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다. 박 씨가 체포·구속되자 온라인에는 부당하다는 항의성 글이 봇물을 이뤘다. 검찰은 박 씨가 ‘허위’를 인터넷에 게재해 막대한 국가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법원도 이런 영장 청구 취지를 받아들였다. 검찰은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20억 달러를 더 써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간과됐다. 하나는 박 씨가 썼다고 주장하는 지난해 12월29일 ‘대정부 긴급공문발송-1보’라는 글에 있는 “오늘 오후 2시30분 이후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기업에 달러매수를 금지할 것을 공문으로 긴급 전송했다”는 내용이 허위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과는 다른 주장이 있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지난 11일 “공문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7대 금융기관과 수출입기업과 직접 미팅을 갖고 달러매입을 자제하도록 요청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의지가 있다면 이석현 의원의 이 말도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히 실제 정부에서 달러 매입 자제를 요청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하므로 박 씨 글의 진위도 드러나게 된다.
다른 하나는, 글 내용의 진위와 별개로 인터넷이나 출판물 등에 자신의 의견을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 유행했던 노래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 민주공화국의 국민은 당연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다. 박 씨가 인터넷에 게재한 글은 그가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관계없이 그가 살아오면서 얻은 지식과 정보, 판단에 따른 그의 의견일 뿐이다. 그런 그의 의견이 누리꾼을 비롯한 많은 경제 주체들의 공감을 얻었고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왜 그런 영향력 있는 글을 썼느냐”고 다그치는 것밖에 안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만수 장관의 말과 같은 격으로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나가는 처지에 있는 사람의 말은 그만큼 무게가 있고 시장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그래서 조심해야하고 때로는 고도로 계산된 발언을 할 수도 있다. 단지 ‘인터넷 논객’인 미네르바에게 그같은 무게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입을 봉쇄하겠다는 것이 미네르바 구속에 담긴 본질이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처음에는 ‘학력’을 둘러싼 진위 논란으로 본질을 희석하더니 이번에는 <신동아>에서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이의 글을 게재하면서 다시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논란이 퍼지고 있다.
‘진짜’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떻게 그런 예측과 전망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이라면 그런 비본질적인 부분보다는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 드는 미네르바 구속의 본질을 짚어 나가는 것이 우선해야 할 일이다.
<경남도민일보> 2009년 01월 22일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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