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공화국

죽은 피해자는 말이 없고 리스트 밝혀진 역사 없다

지난주부터 대한민국 신문 지면은 두개의 ‘리스트’가 이끄는 쌍두마차를 타고 달려왔다. 간간이 WBC 야구 이야기가 섞여들기는 했지만 대세는 ‘리스트’였다.

하나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돈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탤런트 장자연에게서 골프니 술이니 성이니 접대를 받았다는 사람들 이름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을 겨냥할 것으로 예상됐던 박연차 리스트의 칼 끝이 지난주말 뜻밖에도 이명박 정부의 핵심에게로 쏠려 잠시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던 장인태 전 차관, 이정우 전 해양발전연구원장은 물론, 박 회장의 사업 근거지였던 김해의 송은복 전시장 구속이야 어느 정도 예상할 수도 있었지만 이명박정부에서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추부길 아우어미디어그룹 대표이사가 2억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은 뜻밖이었다.

또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박연차 회장의 돈을 7억이나 받아서 그 중 5억4000만 원을 변호사 사무실 개업비용으로 사용했다는 게 드러났다. 이종찬 전 수석 측에서는 이 돈을 빌린 것이라고 하고 몇 달 뒤 상환했다고 해명했지만 그대로 믿을 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작년 박 회장이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신 정권의 구 정권 청산작업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음험한 정경유착의 일부가 드러난 것으로 사건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부패의 악취를 풍기는 정권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것은 어쩌면 부차적인 성과가 될 만큼 ‘박연차 리스트’의 폭발력은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리스트가 전부 공개되고 부정하게 돈을 받은 사람들이 죄다 처벌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탤런트 장자연 리스트도 박연차 리스트에 못지않은 폭발력을 갖고 있다. 경찰 수사로 성 상납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다 실명이 거론된 인사들 중에는 유력 언론사 대표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젊은이를 한낱 ‘노리개’로 여기고 추잡한 짓거리를 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밝혀진다면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라고 해왔던 이들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밝혀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숱한 ‘리스트’가 있어왔다. 그렇지만 그 ‘리스트’ 내용이 백일하에 모두 드러난 적은 없었다. 정치권이든 경제권이든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리스트’는 쏟아졌지만 처벌이 ‘몸통’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니, 갖은 억측만 일으켰을 뿐 몸통이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았다. 부패 스캔들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직군이 있다면 검찰과 언론, 국세청 등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박연차 리스트에는 검찰 전·현직 고위 간부는 물론 언론계 인사 연루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에는 언론사 대표가 핵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리스트 수사 결과를 고려하면, 이들은 ‘깃털’로도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검찰은 “박연차 수첩에서 곶감 빼듯이 골라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예전에는 곶감을 꼬챙이에 길게 꿰어 보관했다. 한 개씩 빼 먹는 맛이 일품이다.

<경남도민일보> 2009년 03월 26일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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