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 길 알고도 그 길 가신 노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된 국민의 추모 열기가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고민하고 있던 엊그제,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전화를 받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링컨의 ‘5분 연설’을 기억해냈다.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의 영혼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링컨은 지금까지도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간결하고 적절하게 나타낸 말로 자주 인용되는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of the people’이라는 명연설을 했다.

고귀한 희생으로 얻은 ‘만민 평등권’은 모든 국민을 위한 것(for the people)이며, 모든 국민이 주체(by the people)가 돼 이루어졌고, 모든 국민의 것(of the people)이므로 ‘이러한 정치가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헌신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내게 전화를 했던 그 지인은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 남명 조식 선생, 수운 최제우 선생 단 세 분만이 우리 역사상 ‘민본(民本)정치’ 사상을 갖고 실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유가(儒家)에서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보는 위민(爲民)정치는 권력을 가진 자가 백성을 불쌍히 여겨 베푸는 정치이고, 여기에는 백성의 뜻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민본정치는 백성을 근본으로 대하므로 백성을 우러르고 떠받들며, 백성의 뜻을 살펴 행하는 정치여서 백성이 곧 하늘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위민이 아니라 민본정치가 돼야 한다는 점도 얘기했다.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갖춘 우리나라는 국민에 의한 정치, 링컨의 표현으로는 ‘by the people’은 이뤄지고 있다. 그렇게 이명박 정부는 탄생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게 전부가 아님을 모르고 있다. 국민에 의한 정치는 민주주의에 가장 기초적인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와 한나라당은 툭하면 ‘선거에서 뽑힌 정권’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뽑혔는지를 돌아볼 생각도 없는 집단 같다. 그러니 ‘위민’이니 ‘for the people’이니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하물며 ‘민본’이겠는가.

노 전 대통령은 어떠했는가. 그의 정치를 상징하는 일 중 하나는 취임 초 있었던 ‘평검사와의 대화’였다. “그 정도 하면 막가자는 거죠?”라는 희화한 말로 본질이 희석되고 말았지만, 이제 와서야 그 일이 의미하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고 있다. 권력을 쥐고 베푸는(for the people) 정치가 아니라 가진 권력을 놓음으로써 국민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자 한 것(of the people)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국민은 이제야 그가 이루려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 무엇이며, 이명박 정부가 가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었기에, 온 나라에서 그렇게 밤을 새우면서까지 줄을 서서 헌화·분향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남명 선생은 “옳은 길이라면 앞에 낭떠러지가 있더라도 그 길을 가라”고 가르쳤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옳은 것을 적극적·능동적으로 실천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런 가르침이 있었기에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그의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의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영남지역 의병장들은 대다수가 남명 선생의 제자였다) 

수운 선생은 ‘인내천(人乃天)’이라고 가르쳤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그래서일까. 노 전 대통령은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데도 그 길을 갔다. 그는 낭떠러지 앞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가 마지막 발을 내딛기 전 바라본 하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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