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방법 하나, 교차읽기
한 때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적도 있습니다. 책 읽는다고 1주일정도는 정말 잠 한 숨 안자고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젊은 시절 체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아직도 그런 책 읽기 ‘벽’은 남아 있어 한번 빠져들면 만사 제쳐두고 책을 붙들고 씨름하긴 합니다만, 그런 일은 1년에 한두번에 그치고, 대부분은 가볍게 읽기를 즐깁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름 붙인 것인데, ‘교차 읽기’입니다. 어떤 책을 읽다가 문득,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읽었다 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곧바로 그 책을 찾아들고 해당되는 부분을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안의 다른 측면을 살펴보기도 하고, 때로는 한 사안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기도 하지요. 그런 교차읽기는 꽤 된 듯 싶습니다. 2002년 김주완 기자가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과,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http://www.idomin.com/bbs/list.html?table=bbs_1&idxno=2529
오늘은 마산시청을 출입하는 정성인 기자의 책읽는 모습을 살짝 담아봤습니다.
정성인 기자는 도민일보 1기 공채 당시 나이제한을 없앤 덕분에 입사하게 된 ‘늙은 기자’ 중 한명입니다.(아마 입사 당시 나이가 서른 여섯살인가, 다섯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주 파견기자로 있던 중 본사 시민사회부로 와서 약 1년넘게 창원지역에서 경찰서와 환경, 노동 등을 취재했습니다.
그러다 2월 인사발령에서 마산시청으로 옮겼습니다.
일요일인 10일, 저녁 8시께 기사마감을 시킨 후 뭔가를 읽고 있길래 사진을 찍었는데, 과연 그가 읽고 있던 책은 무었이었을까요?
기자가 읽는 책은 주로 취재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적이 많은데, 정성인 기자가 읽던 책은 놀랍게도 ‘동패락송’이라는 고전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문헌설화를 모은 책인데, 주로 당시 유명인사들의 일화로 구성된 글이랍니다.
“그 책을 왜 읽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재미있어서요” 하면서 씨익 웃고는 책을 덮고 일어서더군요. 그가 일어선 책상 위엔 이 책 말고도 ‘용재총화’라는 역시 고전이 얹혀 있었습니다.
그는 요즘 이런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http://www.idomin.com/bbs/list.html?table=bbs_1&idxno=2565
많이 늦었지만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 답변 드립니다.
김주완 차장이
“그 책을 왜 읽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재미있어서요” 하면서 씨익 웃고는 책을 덮고 일어서더군요. 그가 일어선 책상 위엔 이 책 말고도 ‘용재총화’라는 역시 고전이 얹혀 있었습니다. 그는 요즘 이런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라고 했는데요, 그게 이렇습니다.
지난 9일 오후 편집국 당직을 서게 됐습니다. 6시간동안 편집국을 지키며 오는 전화도 받고 손님도 맞아야 하는데 토요일 오후다 보니 걸려오는 전화도 별로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답니다.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가벼운 책 한권 읽을 시간은 되겠다’ 싶어 구주모 부국장 서가에 꽃혀 있는 책을 보다가 동패락송과 용재총화 두 권을 골라 들고 어떤 책을 읽을까 싶어 앞부분 몇장씩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용재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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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글씨 잘쓰는 사람을 죽 나열하면서 평을 하는 대목에서 안평대군의 글씨를 높게 평가하다가 갑자기 최흥효라는 사람을 평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최흥효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유익의 법을 본받아 글씨를 잘 쓴다고 자칭하면서 항상 붓주머니를 가지고 여러 관청이나 대가를 찾아가 글씨를 써주곤 했다. 안평대군이 그를 맞아들여 글씨를 청하였으나 자체가 거칠고 비루하였으므로 마침내 찢어서 벽을 발라버렸다.
다음은 동패락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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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해당 안평대군은 필체가 묘하여 천하에 으뜸이었다. 그가 사는 고을 안에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뵙기를 청하므로 즉시 불러 들였다. 들어오는 사람을 보니 못생긴데다가 낡은 옷을 걸친 가난한 서생이었다.
안평대군이 물었다.
“자네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대감의 필법이 세상에 이름났기로 한번 자세히 보고자 왔습니다.”
안평대군이 각각의 필체로 쓴 것을 가져와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최생이)”자세히 잘 구경하였습니다. 하오나 오늘 와서 청하는 것은 외람되나마 손수 붓으로 쓰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안평대군은 붓을 들고 몇 폭을 썼다.
“과연 가보로 두고 감상할만 합니다.”
“자네가 와서 내가 글씨 쓰는 것을 보자고 하였으니, 반드시 필법을 알 걸세, 내게도 써 보여 주게나.”
그러자 최생이 몇 장을 써서 바쳤다. 안평대군이 그가 쓴 것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하였다.
“자네의 글씨는 나보다 몇 등급 위일세. 세상에 이런 신필이 있는데 지금껏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군.”
“소생은 열일곱살에 처음 글씨를 쓰기 시작하여 이미 높은 경지에 들어갔습니다.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기를 ‘안평대군은 왕실의 귀공자요, 명필로 천하에 이름이 나 있는데 내 글씨가 한 번 세상에 알려지면 틀림없이 안평대군의 명성을 가릴 것이다. 나는 본시 천인으로 어찌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리오.’ 하고 마침내 붓을 잡지 않기로 맹세를 하였습니다. 오늘 대감의 명을 받아 잠시 파계를 한 것입니다.”
“자네가 쓴 것을 간직하여 우리 집안 대대의 가보로 삼고 싶으니 모름지기 두고 가게나.”
“소생이 마음 먹은 바가 말씀드린 대로여서, 결단코 제 필적을 남의 눈에 띄게 할 수가 없습니다.”
최생은 자신이 글씨를 쓴 종이를 빼앗아 마구 찢어버렸다.
안평대군이 말하였다.
“자네 우리집에 자주 찾아오게나.”
최생은 하직을 고하고 가더니, 몇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이처럼 길게 인용을 한 것은 제가 받은 느낌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동패락송에 ‘최생’이라고 나온 사람이 용재총화에 나온 최흥효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면, 제 추론으로는 객관적인 사실이란 “최모가 안평대군에게 찾아와 글을 써 보였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 글을 찢어버렸다.”정도입니다. 덧붙이자면 두 기록 중 적어도 하나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겠죠.
그렇지만 이렇게 다르게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머리가 번쩍 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일매일 취재현장에서 접하는 객관적 사실을 나는 내가 쓰는 기사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닌가, 함부로 글을 쓰고 남길 것이 못되는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동패락송이 읽기 수월하게 짜여 있어 먼저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책에서 비슷한 상황을 다르게 기록한 것을 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면, 진득하게 책 한 권을 들고 파서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나쁠 것은 없겠지요.
교차읽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저도 식물이나 곤충의 이름을 붙이는데 상당한 정확성을 요구하기때문에
좀 애매한 것들은 도감뿐만 아니라 외국사이트까지 뒤지곤 합니다.
도감도 여러개라 포스팅할때 제 책상은 좀 지저분합니다. ㅎㅎㅎㅎ
내가 포스팅한것들이 검색에 걸려
다른이들이 혹 잘못된 정보를 취하게되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리하는데
요즘은 검색을 잘하는게 문제가 아니고
올바른 정보를 골라내는게 중요한 능력이더라구요.
그건 그렇구 소개해주신 책이 재미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같은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어제 김현철 씨를 만났는데, 자신이 실린 기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정성인 기자도 블로그를 열심히 하느냐 – 고 묻기에,
그간의 통계로, 블로그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않다 – 라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 이야기 한 걸까요?^^
전에 도민일보에서 가져 온 신문을 어제 가져다 드렸습니다.
물론 김현철 씨에게도 있겠지만, 신문을 구독않는 제가 챙겨드리면 그 분은 틀림없이 호들갑스럽게 좋아할 테니까요.
역시나였습니다.^^
주말 잘 보내셔요.^^
음… 사실은 어제 천부인권님과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래서 기록을 잘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디라더라?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변질된 사건이 있는데요. 이 사람이 일제시대에 잠깐 징역을 살았는데 그게 도둑질인지 사기인지 그런 걸로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데 이걸 가지고 일제시대에 징역을 살았으니 나는 독립운동가다, 또는 우리 조상님은 독립운동가다, 이런 식으로…
또, 진주 디벼리에 공덕을 칭송하는 목적으로 새겨진 친일파들의 이름을 깍아 지운 일도 있었지요. 몇 년 전인가?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지웠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런 것도 그냥 놔두고 그 옆에다가 야들은 전부 친일파였다라고 금석을 새기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도 있었고요.
좀 엉뚱한 댓글이긴 했습니다만, 하여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어디선가 다산이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