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藥)보다는 병(病)을 만들어 팔아라

<조선일보>가 26일 자에 재밌는 보도를 했습니다.

신비의 묘약이라는 ‘○○탕’ 성분 분석해보니(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5/2009092501289.html)가 그것입니다.

발표나 시험 등을 앞두고 불안·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는 ‘신비의 묘약’으로 알려진 한약 성분을 분석해봤더니 고혈압 약 성분이 주된 성분이었으며, 복용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지요.

내가 이 기사에서 주목한 것은 “2000년 의약분업(分業) 전 이 약국이 팔던 묘약은 알약이었다. 의약분업으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프로프라놀롤이 들어간 약을 팔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약국은 한약을 달인 것 같은 ○○탕으로 알약을 대체했다.”는 기사 문장이었습니다. 이른바 ‘권력’이 작용한 것이지요.

또다른 부분은 “연구팀에 따르면 프로프라놀롤은 나쁜 기억을 지워주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좋을 것 같지만 학계에서는 ‘두려움 등의 정신병리적 질환을 약리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부분입니다.

이제 이 두 부분을 ‘교차 읽기’로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입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강양구 (뿌리와이파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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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환자들이 인도 대사관 앞에서 시위한 이유’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지난 2005년 2월에 주한 인도 대사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과 백혈병 환자들이 모여 시위를 했는데, 그 까닭을 ‘권력’ 차원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2004년 12월 26일 ‘물질 특허 제도’라는 걸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건 우리나라는 이미 20년 전에 도입한 제도입니다. 그런 제도를 인도가 도입한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 대사관에서 시위를 하다니요.

그 배경에는 ‘복제약’이 있습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신약을 개발합니다. 최근의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개발한 회사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을 거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요.

백혈병 치료제로 ‘글리벡’이 있는데 이게 무척 비쌉니다. 그렇지만 당시까지 인도에는 물질 특허가 도입되지 않았기에, 신약 성분을 분석해 그와 똑같은 성분과 효능을 가진 ‘복제약(제네릭)’을 만들어 파는 게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글리벡을 복제한 ‘비낫’은 글리벡의 10%도 채 안되는 가격에 팔렸고, 국내 백혈병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지요. 인도 의약계에서는 에이즈 치료약도 이처럼 복제약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답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특허권·저작권을 무작정 배척할 수 없기는 합니다만, 결국 특허권은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제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 글리벡을 개발한 노바티스는 10여년에 걸쳐 1조 원을 들여 이 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이익은 보장돼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노바티스는 글리벡을 시판한 지 불과 1년 8개월 만에 1조 500억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10여년에 걸친 개발비를 불과 몇 년 만에 고스란히 환수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이익까지 남긴 것이지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 읽기> 입니다.

(이 책은 책 소개에서 찾지 못하겠네요. 김보일 씨가 짓고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2007년 9월 3일 발행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질병을 만들어서 판다고?’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병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은 제약회사들에게 경영상 이익을 가져다 준다. 당연히 그들은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으로, 정상인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폐경도 여성 호르몬을 주사하면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점을 그들은 소비자들에게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 환자의 환경이나 정서나 마음의 문제도 결국 뇌의 문제로 귀결시켜 약물 치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라고 기술합니다.

질병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수많은 인류가 고통에서 해방돼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만, 의사·약사·제약회사 같은 질병과 관련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당장 실직하게 될 것입니다. 또 자고나면 늘어나는 교회 첨탑이나 사찰 같은 종교시설도 간판 내리는 데가 늘어 부동산 가격 안정에도 조금은 이바지할 것입니다.(지나친 비약인가? ^^)

그러니 의료계에서는 자꾸만 ‘병’의 범위를 확장하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들어 머리가 세는 것도, 대중 앞에 또는 시험 감독관 앞에 나서려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는 것도, 양간 통통하게 보기좋게 살이 오른 것도, 여성이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폐경도, 어린 아이라면 당연한 산만함도, 월경 전 나타나는 여성들의 당연한 불쾌감도 제약회사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입니다. 불안장애, 아동 주의력 결핍 장애, 월경 전 불쾌 장애,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은 이름을 붙여 약물 치료를 해야 할 대상으로 각인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신종 플루를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플루 공포증’이라 불릴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습니다. 또 추석을 앞두고 혹시나 전염이 확산할까 정부나 의료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병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목숨을 잃는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떨수록 다국적 제약회사의 잇속만 챙겨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종 플루라는 것도 따져보면 결국 그동안 있어왔던 인플루엔자의 변종이 창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으로만 질병을 다스리려 하는 한, 이러한 신종 질병은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더구나 래이 모이니헌과 앨런 커셀스가 공동 집필한 <질병 판매학>이나 로리 앤드루스와 도로시 넬킨이 지은 <인체 시장: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 같은 책에서 밝혔듯이 이미 ‘병을 만들어 파는 세상’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제한하지 않고, 약에만 의존하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새로운 질병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은 더 커질 것입니다.

질병 판매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레이 모이니헌 (알마,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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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시장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로리 앤드루스 (궁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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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1 Response

  1. 구르다 댓글:

    신중플루(돼지독감)의 사망률이 일반독감 보다 낮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타미플루를 개발한 제약회사의 장학생들이 엄청난데 그들이 과장해서 공포를 퍼트린다는 말도 있고요.

    우리는 언론이 앞장서 공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사망하신분들을 보면 나이많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신종플루가 아닌 일반 독감이 걸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사망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겁니다.
    그때도 언론에서 꼬박 꼬박 그것을 보도할까? 아마 아닐겁니다.

    신종플루 때문에 온 사회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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