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벤트 된 일제고사, 꼭 쳐야 하나

우리집 작은 녀석은 초등 6학년입니다. 요 며칠 새에 학교에서 조금 소동이 있었다네요.

다음달 치는 성취도 평가 때문인데요, 담임 선생님께서 5-6명씩 모둠을 만들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만든 모둠에서 단 1명이라도 평가 결과 ‘미달’이 나오면 그 모둠은 전부 방과후에 남아 보충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답니다.

전교조 경남지부가 지난 8월 성취도 전집평가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경남도민일보

애들 키워 보니 6학년 쯤 되면 속에 영감이 들어앉아 있더군요. 생각할 건 다하고, 잇속은 재빨리 챙기더라는 얘기죠. 그런 애들에게 알아서 모둠을 만들라고 했으니 어떠했겠습니까? 평소 학력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는 서로 모둠에 넣어주지 않으려 하고, 잘하는 애들은 잘하는 애들끼리만 모둠을 만들었겠죠. 그러니 자연 공부 좀 못하는 애들은 어쩔 수 없이 또 그들만의 모둠을 만들었구요.

그렇게 이틀인가 사흘인가 지나고 나서 선생님께서 모둠을 해체하고 원래 자리로 전부 복귀시키더랍니다. 공부 잘 못하는 모둠 애들은 그들대로 별 공부 안하고, 잘하는 애들 모둠은 또 그들대로 성취도평가 시험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므로 공부를 안하더랍니다. 더구나 평소 친한 아이들끼리 모둠에 속하다 보니 수업시간에도 떠들기만 하고 부작용이 더 컸던가 봅니다.

처음 모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생님이 너무 비교육적인 일을 한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면서 딸아이에게 “너네 모둠은 어때?”라고 물었더니 예상대로 친하게 지내던 애들 이름을 죽 대면서 같은 모둠이라고 했습니다. 다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전과목 2개 이상 틀리지 않는 애들만 모였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러면 되나. 조금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너희가 조금만 도와주면 방과후에 남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너무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 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줬습니다.

그런데, 뒤에 모둠이 해체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내가 잘못생각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아이들이 서로 도와가며 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이기적인 아이들이 그 뜻을 못받쳐 줬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번 일제고사를 두고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좀 별난 이 학교의 특징(다음에 기회 있으면 이부분도 한번 포스팅 하겠습니다) 때문이겠거니 생각합니다만, 심지어 중간고사 기말고사 예고를 “모레부터 중간고사 친다”고 아이들에게 알리는 학교이니 성취도 평가라고 크게 괘념치는 않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경남도내 학교 대부분이 성취도 평가때문에 난리도 아닙니다. 큰아이는 중2인데, 지나고 들어보니 지난 여름방학 때도 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 학교로 불러 보충수업을 했답니다. 도교육청은 채점 부정을 없애겠다고 도내 교사 700여명을 모아 2박3일 합숙시키며 채점하겠다고 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성적을 끌어올리고자 보충수업은 기본이라고 하네요.

정작 학생들은 ‘내신성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 시큰둥하답니다. 그런데도 학교가 이처럼 난리법석인 까닭은 내년 도교육감 선거와 밀접히 연관 있기 때문입니다. 경남도교육청은 일선 초중고등학교장 근평에 성취도평가 시험 결과를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교장이 성적 향상에 목을 맬 수밖에 없게됐지요.

그럼 도교육청은 왜 그랬을까요? 경남도교육청은 지난해 성취도평가에서 16개 시도교육청 중 15등을 했습니다. 올해 9등 이내, 즉 한자릿수 등위만 차지해도 교육감의 큰 공적이 됩니다. 내년 교육감 선거 때 “봐라, 내가 교육감 맡고 제대로 했더니 성적이 이렇게 오르지 않았느냐”라고 선거전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고, 유권자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난해 5위 안에 들어간 시도교육청 중 이번 평가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린다면, 그 교육감은 내년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성취도 평가라는 아이들 시험 성적이 교육감을 당선시킬 수도 있고, 떨어뜨릴 수도 있는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로지 ‘성적 향상’이 이번 성취도평가를 앞둔 시도교육청의 지상최대 과제입니다. 지난해 임실교육청이 성적 조작을 했던 것이 올해라고 없을 것으로 믿을 수 없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경남도교육청은 “우리는 성적 조작 없애려고 이만큼 했다”라는 생색내기용으로 합숙 채점이라는 수를 찾아낸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나는 더 큰 걱정을 합니다. 성적 조작을 채점단게에서 하는 것은 하수가 하는 짓이라고 보기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 제약은 따르겠지만, 채점단계에서 조작한 것은 꼼꼼히 뒤져보면 바로 조작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치는 단계에서 부정이 있다면, 그건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실제 우리집 큰 녀석이 다니는 중학교는 지난해 일제고사를 하루 늦게 쳤습니다. 수학여행기간과 겹쳤기 때문이지요. 성적이야 당연히 좋았죠. 수학여행 갔다 왔더니 그날 밤 이미 인터넷에 일제고사 문제와 답이 쫙 깔렸기 때문입니다. 문제 알고 답 아는 아이들은 너무 지나치게 성적이 오르는데 대한 부담감으로 일부러 틀린 답을 써내기도 했다는군요.

시험치는 단계에서의 부정을 걱정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꽤 오래된 일이긴 합니다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무슨 시험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부정행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때야 한 반에 60명씩 되던 시절이었으니 옆사람 답 보고 베끼는 것은 식은 죽먹기였지요. 그래서 한 반의 절반을 잘라 1-2학년 같은 반끼리 자리를 바꿔 시험을 봤습니다. 1학년 1반 절반은 2학년 1반 교실로 가고 2학년 1반 절반은 1학년 1반 교실로 가서 시험 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감독 들어온 선생님이 이상합니다. 그냥 교실 앞문 밖에 의자 갔다 놓고 독서 삼매경이네요. 옆에 않은 2학년 선배는 1학년 시험문제 넘겨 보면서 틀렸으면 정답 가르쳐 주기도 하고, 책상 밑에 교과서 꺼내서 찾아가면서 시험을 치고, 하여튼 처음부터 마음껏 컨닝하라는 분위기였고, 아무도 제재하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으니 아직도 학교에서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성적 향상에 다걸기한 듯한 도교육청을 보고 있자면 이런 성취도평가를 왜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3 Responses

  1. ddcx 댓글:

    일제고사가 무슨 일제시대에 보던 고사냐

  2. ddcx 댓글:

    일제고사가 무슨 일제시대에 보던 고사냐

  3. 구르다 댓글:

    고1 큰녀석 지금 시험기간입니다.
    어제는 국어와 국사, 오늘은 영어를 쳤습니다.
    내일은 수학입니다.

    퇴근하고 잠시 들어가 봤더니 바느질(인형옷 만들기)을 하고 있습니다.
    낼 수학시험인데 공부 다했냐..
    아니요..배불러 배꺼자고 있어요.

    오늘하고 어제는 시험잘봤냐..
    영어는 너무 어렵게 나왔고요, 국어는 4개 틀렸고요. 국사는 어려웠어요..
    내신 별로 신경 안쓰는데,,,
    샘 눈밖애 나지 않을 정도만 하면 되요.

    전 이런 딸이 맘에 듭니다.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죠..

    학교에서 뭐라하든
    부모들이 아이들을 믿어주면 된다고 봅니다.

    부모들이 자식들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으면
    교육감도 아이들 잡아가며 성적올리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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