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사내가 천마리 학에 집착하는 사연은?

“나 너를 알고 사랑을 알고 / 종이학 슬픈 꿈을 알게 되었네 / 어느 날 나의 손에 주었던 / 키 작은 종이학 한 마리 /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을 / 나에게 전해주며 울먹이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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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전영록이 불러 크게 히트했고 천마리 종이학 접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종이학’ 가사이다. 아직도 10대 소녀들은 학 천마리를 접어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는 모양이다만, 나이 마흔을 훌쩍 뛰어넘은 사내가 ‘천마리 학’에 미쳐 지난 7년을 살아왔다니 뜻밖이다.

추석을 앞둔 지난 1일 밤. 9시쯤 진주시 봉곡 로터리 인근에서 만나자는 어름한 약속을 한 탓에 길에서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눈에 보이는 ‘천학 전통찻집’으로 들어갔다. 차 한 잔 마시고 전화 통화되면 그리로 오라고 하거나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눈과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다.

299832_228007_1450나무로 깎아 만든 크고 작은 학으로 실내가 장식돼 있는데, 내공의 깊이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공력을 쏟았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찻집 안에 있는 나무 학이 모두 1200여 마리라고 했다. 주인에게 허락을 얻고 한참을 사진 찍었다. 그러면서 점차 궁금증이 일었다.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언제부터……. 인터뷰 약속을 했던 9시가 지났는데 아직 연락은 없고, 학을 만든 사람을 인터뷰할 시간이 충분할지 어떨지 걱정은 됐지만, 주인에게 학을 깎은 이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은 옆에서 설거지하는 남자를 가리킨다. 남편이라고 하면서.

김성렬(51) 씨. 한사코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그를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이끌어 앉혔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재떨이 갖다 주겠다며 일어서고, 엽차 갖다 주겠다며 일어서고, 정말 인터뷰에 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명색이 기자라면서 그 정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우선은 칭찬부터 시작했다.

“전에 일본의 나무불상 조각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이는 나무 속에 들어 있는 불상이 보인다고 하네요. 나무를 가져다 둔 다음에는 목욕재계하고 한참을 참선하다 보면 나무 속에서 불상이 꺼내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더라고요. 그제야 비로소 조각도를 손에 잡는다더군요. 선생님께서도 아마 나무를 보면 그 속에 깃든 학을 보시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인터뷰를 거절하더니 이 말에 빙그레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7년 전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무공예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산을 돌아다니며 적절한 나무를 찾고 있는데, 순간 나무에 깃든 학이 보이더라는 것.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학 공예였다고. 처음에는 왜 하필이면 학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나무를 깎다 보면 여러 가지가 나온다. 거북이·기러기도 나올 수 있지만, 학은 십장생에 드는데다 고고한 이미지에 끌려 그리했다”고 한 대답은 인터뷰를 피하고자 지어낸 말이었다. 나무 속 학을 보고는 함안에 작업실을 꾸렸다고 한다. 아내와 자식들을 진주에 남겨두고 함안으로 옮기면서 그는 ‘학 천 마리를 깎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김성렬 씨가 나무로 만든 학 작품들.

“천 마리 학을 깎아 찻집을 차리고 상호를 ‘천학’으로 하겠다고 그때 이미 정했습니다. 그렇게 함안에 2년간 있으면서 거의 천마리 학을 깎았지요.” 그렇게 2년간 함안에서 보낸 기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인가에 가장 집중했던 시기였다고 했다. 목표가 뚜렷했기에 밤잠 안 자고 매달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그의 아내 정현주 씨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마움도 표시했다.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 했는지 물었더니 “기사화돼 상처 입을까 걱정이다. 기사는 가끔 과대 포장되거나 신비화되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싫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2~3년 후면 나도 학 공예에 대해 얘기할 수준은 되지 않겠느냐”면서 “그때 제대로 인터뷰하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에게 도리질 쳤다. 꿈이라면 60에 한 번, 70에 한 번 전시를 여는 것인데, 그마저도 그때 가봐야 알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들어내고 새로 만들어 배치하고 있단다. 60이고 70이고 됐을 때 지금의 것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면 전시회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간도 장소도 어름하게 정하고 무작정 기다리기 뭣해 들어간 찻집이었는데, 저쪽 내실에서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걸어 나온다. 이런, 아직 인터뷰가 끝나지 않았는데….

원래 만나기로 했던 이와 1시간 30분 인터뷰를 하고 보니 김성렬 씨는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다. 주인에게 물어도 모르겠단다. 질문 할 것이 많았는데. 이렇게 짧은 인터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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