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여행, 김장에 파묻히다

김장을 했습니다. 지난 8일이 아내 생일이었고, 오는 25일이 결혼기념일이어서 아내와 여행가려고 13일 휴가까지 냈는데, 완전히 헛다리 짚고 만 것이죠.

한 달쯤 전에 김장하기로 날이 잡혀 있었는데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고 아내는 내가 알 것으로 보고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나는 아내에게 놀라움을 주어 기쁨을 더 크게 하고자 말하지 않고 은밀(?)히 준비를 하다 보니 그리되고 말았죠.

금요일 밤에 진주 부모님 뵈러 갔더니 벌써 배추 간을 해서 씻어놓았고, 양념도 다 버무려 놓으셨더군요. 말이 쉬워 그렇지 배추 70포기를 두 분이 다 그리 장만하셨으니 참 죄송스러웠습니다.

하여튼 그날 밤은 부모님과 우리 내외가 생굴 회를 안주로 모처럼만에 술을 꽤 많이 마셨습니다.

그렇게 11시까지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가 화장실 가려고 잠을 깬 게 3시 조금 못돼서였는데, 어머니께서는 또 뭐가 빠진 것이 없는지 챙기고, 양념에 넣어야 할 야채며 다시물 끓이신다고 그 시각까지 주무시지 않고 계셔서 더 미안해져야 했습니다.

아침에 서둔다고 서둘렀습니다. 7시쯤부터 양념에 마지막으로 넣을 야채며 다시물 넣어 다시 버무리고, 씻어놓은 배추 짜서 나르고 그렇게 해서 8시쯤 배추에 양념을 치대기 시작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작년에 김장하면서 양념을 너무 많이 치대는 바람에 나중에 양념이 모자라 다시 양념 버무렸던 일이 있었기에, 올해는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네요. 대신 배추 나르고 양념 덜어 나눠주고 옆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라 해서 그러고 있었습니다. 또 나중에 큰동생 내외 오면 아버지와 같이 밭에 가서 3년 된 더덕을 캐기로 예정돼 있었기에 동생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시쯤 동생이 왔는데, 아버지 말씀이 더덕 몇 뿌리 되지 않으니 다음에 혼자서 캐셔도 된다네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고무장갑 끼고 양념을 치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작년처럼 그렇게 양념 헤프게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서야 어머니께서 고무장갑과 대야를 주시더군요.

큰 매제에게 잔심부름시키고 김치를 담그다 보니 입맛이 슬슬 당기는 게 소주 한잔이 그립더군요. 그래서 매제에게 술 가져다 달래서 마셔가면서 김치 속잎 한 잎 죽 찢어 안주 삼아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딸내미한테 사진 좀 찍으라 했더니 뒤통수만 잔뜩 찍어놨네요. 나도 제법 잘 치대는데 ㅠㅠ;

딸내미한테 사진 좀 찍으라 했더니 뒤통수만 잔뜩 찍어놨네요. 나도 제법 잘 치대는데 ㅠㅠ;

내가 치댄 김치입니다.

내가 치댄 김치입니다.

그렇게 한 7~8포기 치대고 나니 점심때가 됐네요. 그새 나머지 두 동생 내외도 다 왔구요. 아버지께서 밭에 가서 삶은 돼지 수육도 때맞춰 도착하니 담그던 김치 잠시 젖혀두고 갓 담근 김치와 수육, 두부와 함께 낮술 판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집은 참 술을 많이 마십니다. 다 모였다 하면 10명인데 집에서 담근 매실주를 됫병으로 3병쯤 마십니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몇몇은 또 호프집이나 조개구이집 같은데 가서 더 마시기도 하죠. 이날도 안주가 좋아 양껏 마셨습니다. 오후에 담근 김치는 그래서 맛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술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나도 오후에는 어떻게 김장을 했는지, 정리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대충 정리를 하고 모두 낮잠 한숨 때렸지요. 저녁이 되니 대구 사는 동생이 가져온 과메기가 나오네요. 에궁, 저 아까운 것. 나는 그날 밤 장모님 뵈러 가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에 그 좋은 안주를 보고도 술 한잔도 못하고 그냥 과메기만 몇 점 주워 먹는 것으로 그쳐야 했습니다.

해마다 하는 김장이지만, 내가 직접 관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입니다. 그전에는 사실 별 관심도 없었고, 김장을 해도 올해처럼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았기에 나까지 거들 것이 없기도 했겠지요.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김치냉장고 타령을 하셔서 좀 큰 김치냉장고를 사드렸더니만, 이제는 그 김치냉장고가 부모님은 물론, 우리 4형제 몫의 김치까지 보관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덕분에 김치 떨어지면 부모님 댁에 전부 모여드니 형제간에 우애에 좋긴 하지만, 부모님을 더 힘들게 한 것일 수도 있어 고민 중입니다.

이참에 우리 집에도 김치냉장고를 들이고 김장이나 김치는 알아서 해결하나 어쩌나.

디지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체육부에 와서 경남FC,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담당하고, 겨울시즌에는 창원LG세이커스 농구도 담당합니다. 물론 전국체전이나 각종 아마추어나 학교스포츠도 맡아 합니다. 원래는 뉴미디어, IT 등에 관심이 많고, 그에 따른 글을 많이 썼습니다.

1 Response

  1. 크리스탈 댓글:

    크리스마스날 결혼하셨군요.
    저도 12월에 결혼하긴 했지만 크리스마스날은 아닌데… ㅎㅎㅎㅎ

    그나저나 결혼기념일과 생일 겸 여행 물거품 되어서 어쩐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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