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아직 걸음마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노동자가 그야말로 ‘주인’인 기업이다. 주식 지분 100%를 갖고 운영하는 모델로 자본-경영-노동이 하나로 굴러가는 이상적인 기업의 형태로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리 녹록지는 않다. 지난달 26일로 만 3년을 넘기고 4년차로 접어든 진주시민버스㈜의 사례는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의 성패를 되짚어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맡은 정현찬(63) 씨를 진주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서부경남연합 의장 등을 맡은 적이 있으며 진주시 금산면에서 시작해 한평생을 농민운동과 시민운동에 바친 사람이다. 시민버스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농민운동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는데, 기자와 만난 6일에도 전날 대전에서 열린 가톨릭농민회 일로 대전에서 1박2일 연수를 하고 진주로 오는 길이었으며, 인터뷰 이후 곧바로 경남가톨릭농민회 이사회가 예정돼 있었다. 올 들어 경남가톨릭농민회 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 농민운동으로 잔뼈가 굵었는데, 노동운동이나 기업 경영 같은 일을 맡아 처리해내기가 수월치는 않았을 텐데.

지난 2007년부터 진주시민버스 경영을 맡고 있는 정현찬 대표이사. /정성인 기자

지난 2007년부터 진주시민버스 경영을 맡고 있는 정현찬 대표이사. /정성인 기자

△큰 틀에서 보면 농민운동·시민사회운동을 했지만,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우리영농조합이나 작목반 활동도 따지고 보면 경영활동이다. 오랫동안 그런 활동을 해온 경험이 회사를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이기 이전에 기업이다. 경영을 제대로 못 한다면 기업은 존속할 수 없지 않나.

– 출범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안다.

△2006년 8월이었다. 당시 신일교통이 밀린 임금 13억 3000여만 원 등 65억 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그보다 앞서 7월 21일 모든 버스가 멈췄고, 노조는 24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10월 21일에는 사업면허가 취소됐고 같은 달 23일에는 조합원 한 명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노조의 파업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파업 133일 만인 그해 12월 1일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인 진주시민버스㈜가 탄생했다. 시내버스 업계로 보면 진주에서는 삼성교통에 이어 두 번째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이었고, 전국적으로는 청주의 우진교통, 대구의 달구벌교통을 포함해 네 번째였다.

– 삼성교통도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이긴 하지만, 출범 형식은 조금 달랐다고 안다.

△삼성교통과 시민버스의 가장 큰 차이는 원래 있던 회사와의 관계에 있다. 삼성교통은 원래 삼성교통이 부도나자 노동자들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시민버스는 원래 있던 신일교통이 부도나자 이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면허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데 있다. 신일교통이 부도나면서 시내버스 운송사업 면허도 취소됐다. 그러자 노조를 중심으로 출자해 회사를 설립하고 운송면허를 신규로 받은 것이다. 신일교통 노동조합이 중심이긴 했지만, 법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신일교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로운 회사로 출범했다.

– 새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이 만만하지는 않았을 텐데.

△신일교통과 별개로 회사를 설립하려다 보니 종잣돈을 마련하는 것이 문제였다. 부채와 자산을 인수하는 것과는 달리 생돈을 마련해야 했다. 조합원 160명이 각각 500만 원씩 출자해 8억 원을 마련하고 할부로 버스 73대를 새로 사서 운행을 시작했다. 신일교통에서 임금을 몇 달째 받지 못한 조합원들이 500만 원을 마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려달라.

△노동자가 주인인 기업이라는 말인데, 사실 그게 현실 속에 적용될 때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노조가 임금교섭을 하려 해도 그 대상이 곧바로 노조 자신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자주관리 기업’이라는 게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자본과 경영, 노동을 철저히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선 자본인데, 500만 원씩 8억 원에 이르는 출자금 지분은 시민단체에 위탁해뒀으며 노동자는 노동만 담당하고, 경영은 대표가 책임지고 있다. 회사 경영에서 실제로 가장 중요한 기구는 자주관리위원회다. 대표이사와 선임부장을 포함하는 관리단 3명, 승무원 대표 3명으로 구성되는데 매월 1회씩 회의를 해서 경영과 관계된 모든 일을 결정한다.

– 지난 3년을 평가하면 어떤가.

△아직은 뿌리를 내렸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임금 깎아 운영하는 셈이다. 승무원들 한 달에 22일 만근 했을 때 130만 원 정도 받아간다. 상여금 없이 기본급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학교 방학 때면 임금을 제때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입이 급감한다. 다른 자산이 없으니 차입경영을 할 수도 없다.

– 경영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지금 가장 큰 위기에 닥쳐 있다. 차고지를 임차해 쓰고 있었는데, 지주가 부도나는 바람에 차고지 터도 경매로 넘어가 비워줘야 할 처지다. 다른 땅을 임차하려 해도 마땅한 땅이 없는데다 담보물이나 다른 자산이 없으니 땅이 있다 해도 임대료 마련도 쉽지 않다.

– 어쩌면 운송사업 자체가 사양산업이다 보니 겪는 어려움일 수도 있지 않은가.

△대중교통은 노인이나 학생 등 교통 약자가 주로 이용한다. 요금 인상을 하면 승무원 처우는 개선할 수 있겠지만,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제약하게 된다. 결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해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준공영제 도입이 절실하다.

– 현재 도내에서는 마산이 일부 노선에 준공영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진주도 동부 5개 면 노선 5대는 준공영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면적인 준공영제가 도입돼야 한다. 현 정영석 진주시장이 지난 지방선거 당시 준공영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는 6·2 지방선거에서 이 문제가 중요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힘을 합쳐야 할 부분이다. 현재 광역시는 대부분 준공영제를 전면 시행하고 있다. 행정이 운송원가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시내버스 서비스 질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준공영제 아래서는 시내버스 회사별로 무리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과속이나 난폭운행을 할 이유가 없어져 사고 위험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 지난해 부산교통 문제로 진주지역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무슨 일인가.

△진주지역에는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인 삼성교통·시민버스 뿐만 아니라 부산교통·대한여객·영화여객도 시내버스를 운행한다. 모두 220대 정도 되는데, 전문가 분석으로는 진주지역 시내버스 적정 대수를 200~210대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부산교통이 탈·편법으로 무단 증차를 했다. 또 노선 허가만 받아놓고 실제로는 운행하지 않는 등 업계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일을 되풀이했기에 시민단체 등이 반발한 것이다. 그 밖에도 서울 시외버스 요금 부당 과다 징수나 버스운송사업조합 운영과 관련한 회계 투명성 확보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덜 중요한 것은 없지만, 시내버스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것이 공멸의 길로 갈 수 있는 무단 증차 문제였다. 시청에서 열린 회의석상에서 조 사장에게 정말 진주에 시내버스 증차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그도 감차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살아남고자 적정 대수가 될 때까지 증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자주관리 기업이 출범한 지 4년 가까이 돼가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곳도 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 회사만 보더라도 특정 자본이 지분을 대량 매수해 경영권 인수하는 것을 막고자 지분을 사회단체에 위탁해두고 있는데, 이를 주주인 노동자들에게 돌려줄 필요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많아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 자주관리 기업 운영과 관련해서도 손볼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버스노조 본조와 의견대립도 많다. 특히 행정과 학자들이 급하게 틀을 세우다 보니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점차 개선해나가야겠지만, 부수적으로 검토해야 할 일이 많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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