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창원 근대를 가다

창원, 특히 진해 웅동 지역의 근현대사 카테고리입니다. 연재가 끝났습니다.

아픈 역사 딛고 화합으로 ‘세계 속의 창원’ 웅비

아픈 역사 딛고 화합으로 ‘세계 속의 창원’ 웅비

세계 도약 위해 외국과 교류 모색 필요…’유라시아 시발지’ 현대 창원 시민의 몫 600년 역사를 가진 창원. 때로는 따로 가기도, 때로는 함께 가기도 하면서 숱한 에피소드와 스토리를 쌓아왔다.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 간들 ‘이야기’ 없는...

일본 침략·침탈 역사 공존…아픈 흔적 오롯이

일본 침략·침탈 역사 공존…아픈 흔적 오롯이

◇한국의 일본 침략사 = 일본 이끼섬(壹岐島)에는 ‘무쿠리 고쿠리’라는 인형이 있다. 예부터 우는 아이에게 ‘무쿠리 고쿠리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세대불문하고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여기서 무쿠리는 ‘몽고’, 고쿠리는 ‘고려’를 의미한다. 고려는 세계 제패의 야망을 키우던...

섬유·장류·주류업, 창원 근대산업의 주춧돌

섬유·장류·주류업, 창원 근대산업의 주춧돌

우리나라는 전래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 귀천이 있는 사회로 생산·유통을 담당하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1876년 조선이 개방을 하고 부산을 시작으로 인천·원산항을 개항하면서 일본인·청국인 등이 그들 나라의 상품과 다른 서구의 문물을 들고 와 조선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다....

높았던 개화 파도만큼 거셌던 진해지역 항일 열풍

높았던 개화 파도만큼 거셌던 진해지역 항일 열풍

1919년 4월 29일 하오 1시 창원군 상남면 마산헌병대 사파정 출장소에서 서쪽으로 약 400m쯤 되는 진해~창원간 대로상에서 학생 청년을 중심으로 약 50여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했다.…헌병들이 허둥지둥 무기를 챙겨들고 시위 함성이 들리는 곳으로...

근대 창원을 가다 (6) 항일의 길 – 민족교육

근대 창원을 가다 (6) 항일의 길 – 민족교육

1922년 웅천장날 진해 수도에 사는 청년이 중절모를 쓰고 나타나자 성내에서 모자점을 하는 가토가 누명을 씌워 웅천주재소에 고발했다. 일본인 순사가 “조시니노미가 도도지리니”(조선놈이 도둑질이나 하고) 하면서 모자를 빼앗고 청년의 뺨을 때렸다. 이후 웅천 청년단원이 나서 청년의...

우리동네 방공호 어디 있을까?

우리동네 방공호 어디 있을까?

경남의 방공호는 믿을 수 있나?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에서 민간인 2명이 숨졌다. 해병대원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지만, 사람의 목숨을 두고 비교할 일이야 아니지만, 전투력이 없는 민간인이 숨졌다는 것은 북한에 대해 전범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창원 근대를 가다 (5) 항일의 길 – 일제 초 항일

창원 근대를 가다 (5) 항일의 길 – 일제 초 항일

일제강점기 항일의 요람 웅천면(熊川面) 조선말 웅천군의 행정중심인 웅천읍이었던 곳으로 1914년 창원군 웅천면으로 개칭됐다. 1407년(조선 태종 7년) 한국 최초로 개항한 ‘웅천 제포(내이포)’가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이 끊임없었던 곳인데다 한국의 근대기에 식민지 점령국이었던 일본의 군항도시로...

창원 근대를 가다 (4) 침략의 길 ③ 진해군항

창원 근대를 가다 (4) 침략의 길 ③ 진해군항

1509년 중종실록에 웅천현 생활모습을 기록했다. “웅천현 보평역은 일본인 거주지와 거리가 겨우 1리 남짓한데 ㅇ리본인 남녀가 부채를 징수해 낸다는 핑계로 우리 민가에 들어가 밤낮 없이 왕래하여 서로 친하고 사랑함이 형제와 같고 …… 짧게는 1~2년 길게는...

창원근대를 가다 (3) 침략의 길 ② 웅동 저수지

1882년 ‘자국 영사관 보호’라는 명분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상주하게 됐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청국군이 국내에 들어오자 이것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이 유입되면서 이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이를 기회로 서울에 2개 중대(1개 중대는 200여 명), 부산과 원산에 각각 1개...

창원근대를 가다 (2) 침략의 길 ① 마산포

마산은 조선말 창원 ‘마산창’으로 인근의 12개 군·현에서 거두어 들인 세곡(稅穀)을 수납, 보관하여 서울로 해송했다. 당시 선박 200척, 운항할 조군(漕軍) 960명이 배치되다 보니 주변 중성리, 동성리, 오산리, 성산리, 성호리 등 6개 마을이 생겨나 ‘구마산’의 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