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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장류·주류업, 창원 근대산업의 주춧돌

섬유·장류·주류업, 창원 근대산업의 주춧돌

우리나라는 전래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 귀천이 있는 사회로 생산·유통을 담당하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1876년 조선이 개방을 하고 부산을 시작으로 인천·원산항을 개항하면서 일본인·청국인 등이 그들 나라의 상품과 다른 서구의 문물을 들고 와 조선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다....

근대 창원을 가다 (6) 항일의 길 – 민족교육

근대 창원을 가다 (6) 항일의 길 – 민족교육

1922년 웅천장날 진해 수도에 사는 청년이 중절모를 쓰고 나타나자 성내에서 모자점을 하는 가토가 누명을 씌워 웅천주재소에 고발했다. 일본인 순사가 “조시니노미가 도도지리니”(조선놈이 도둑질이나 하고) 하면서 모자를 빼앗고 청년의 뺨을 때렸다. 이후 웅천 청년단원이 나서 청년의...

창원근대를 가다 (2) 침략의 길 ① 마산포

마산은 조선말 창원 ‘마산창’으로 인근의 12개 군·현에서 거두어 들인 세곡(稅穀)을 수납, 보관하여 서울로 해송했다. 당시 선박 200척, 운항할 조군(漕軍) 960명이 배치되다 보니 주변 중성리, 동성리, 오산리, 성산리, 성호리 등 6개 마을이 생겨나 ‘구마산’의 틀을...

창원 근대를 가다 (1) 프롤로그

창원 마산 진해가 합쳐 통합 ‘창원시’로 출범했다. 역사 속에서 창원은 마산 진해와 따로 존재하기도 했고 하나로 합쳐 존재하기도 했다. 통합과 분할이 되풀이돼 온 ‘통합’ 창원은 한국 근·현대사 격랑의 중심에 있었다. 수도권이 아님에도 일제의 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