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ged: 웅천

근대 창원을 가다 (6) 항일의 길 – 민족교육

근대 창원을 가다 (6) 항일의 길 – 민족교육

1922년 웅천장날 진해 수도에 사는 청년이 중절모를 쓰고 나타나자 성내에서 모자점을 하는 가토가 누명을 씌워 웅천주재소에 고발했다. 일본인 순사가 “조시니노미가 도도지리니”(조선놈이 도둑질이나 하고) 하면서 모자를 빼앗고 청년의 뺨을 때렸다. 이후 웅천 청년단원이 나서 청년의...

창원 근대를 가다 (5) 항일의 길 – 일제 초 항일

창원 근대를 가다 (5) 항일의 길 – 일제 초 항일

일제강점기 항일의 요람 웅천면(熊川面) 조선말 웅천군의 행정중심인 웅천읍이었던 곳으로 1914년 창원군 웅천면으로 개칭됐다. 1407년(조선 태종 7년) 한국 최초로 개항한 ‘웅천 제포(내이포)’가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이 끊임없었던 곳인데다 한국의 근대기에 식민지 점령국이었던 일본의 군항도시로...

창원근대를 가다 (3) 침략의 길 ② 웅동 저수지

1882년 ‘자국 영사관 보호’라는 명분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상주하게 됐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청국군이 국내에 들어오자 이것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이 유입되면서 이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이를 기회로 서울에 2개 중대(1개 중대는 200여 명), 부산과 원산에 각각 1개...

창원 근대를 가다 (1) 프롤로그

창원 마산 진해가 합쳐 통합 ‘창원시’로 출범했다. 역사 속에서 창원은 마산 진해와 따로 존재하기도 했고 하나로 합쳐 존재하기도 했다. 통합과 분할이 되풀이돼 온 ‘통합’ 창원은 한국 근·현대사 격랑의 중심에 있었다. 수도권이 아님에도 일제의 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