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서임 예정, 축하만 할 수는 없다

우선 환영한다. 축하한다. 기쁜 일이다.

염수정 안드리아 서울대교구장이 추기경으로 서임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내가 처음으로 대면했던 김수환 추기경님에 이어 이 땅에서 벌써 3번째 추기경이 탄생하는 것이기에 환영한다.

13일 오전 추기경 서임 축하행사에서 인사하고 있는 염수정 추기경 서임자. /경항신문

염수정 추기경 서임 예정자 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천주교인 모두,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축하할 일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참여할 권리가 생겼으니 다른 모든 수식어나 조건을 빼고라도 축하할 일이다. 염수정 교구장이 어제 낮에 있었던 추기경 서임 축하행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추구하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도록 봉사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니 (경향신문 보도  참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천주교인이 아닌, 세속적 의미에서의 축하일 뿐이다. 추기경의 앞길에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 놓여 있을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필부로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할 수도 없다. 함께 기도해줄 수도, 어렵고 힘들고 시험에 들 때에도 아무런 힘을 보탤 수 없는 나로서는 딱 거기에 걸맞은 정도로만 환영하고 축하하고 기뻐할 뿐이다.

이렇게 시작을 해놓고 보니 가슴 한켠에 묵직한 뭔가가 심장을 꽉 쥐어짜듯 갑갑해져 온다. 아마도 고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한 자락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마을에서 5리는 떨어진 마을에 장로교 계열 시골 교회 하나 있던 시절이었으니 천주교니 개신교니 이런 차이도 몰랐을 때였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읽었던 <삼총사>에서 ‘추기경’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야 그 자리가 가지는 무게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추기경’은 매우 나쁜 이미지로 내게 남아 있었다. 국민-민중의 요구와는 관계없이 교회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못된’ 인간의 전형이 ‘추기경’이었다. 나이가 들고 세상 물정에 눈 떠가면서 리슐리외 추기경을 두고 모든 추기-크게는 사제-의 전형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지만, 그런 인식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김수환 추기경님이었다.

1988년 8월 군에서 전역한 나는 한 달도 채 안 돼 복학했고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주도한 명동성당 농성에 참가하게 됐다. 아마 한 사흘쯤 농성장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을 먼발치에서 두 번 뵐 수 있었다. 한번은 오전이었는데 성당 안으로 들어가시다가 먼발치에서 농성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참을 주시하시는 것이었다. 먼발치였기에 눈빛이 어떠했는지 표정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 저분이 추기경님이시구나. 우리를 잊지 않고 지켜보고 계시구나’하는 뭉클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해 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당시는 아마 ‘평화민주당(평민당) 당수셨지 싶다) 농성장을 방문하셨다. 많은 농성자와 악수를 하고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하지만 87년 대선에서 단일화에 실패하고 정권교체에 실패한 원망이 남아있어서였는지 사실 나는 좀 시큰둥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 모습.

그러고 다시 한 번 김수환 추기경님을 먼발치에서 뵐 수 있었다. 두 번씩이나 평소 같으면 뵙기 어려운 얼굴들을 뵈어서였는지 조금 오버하기도 했지 싶기는 한데, 먼발치에서도 김수환 추기경님의 눈빛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아쉬워하고, 갑갑해하고, 측은해하는 듯한 그 표정, 그 눈길. 그날 오후 나는 농성장을 떠나 진주로 왔다. 하지만 그 눈빛은 아주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날 무렵부터 김수환 추기경님이 달라졌다는 세간의 입방아에도 나는 여전히 김수환 추기경님을 잊지 못했고, 그날 그 눈빛에서 얻은 용기를 놓지 않고 있었다.

오늘 다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날 그 표정 그 눈빛을 떠올려 본다. 정진석 추기경이 있지만, 김수환 추기경님께 느꼈던 그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염수정 교구장이 추기경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힘없고 불쌍한 이웃들의 벗이 되고자 애썼던 김수환 추기경님, 그때의 명동성당. 언제부터인가 명동성당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벗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꼭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정진석 추기경 때문이기야 하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달라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대한민국에 추기경 한 분이 더 탄생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분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다.

인제 와서 나 같은 필부가 블로그에 글 하나 쓴다 해서 뭐 달라질 게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외침으로 메아리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교회가 이 땅에, 이 지구에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외면하거나 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주일 쯤 전에 미국 정치권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배우려 한다는 보도가 봇물이었다. 대체로 요지는 “사회적 약자 보호, 불평등 해소 등 진보적 발언으로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정치권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6일(현지 시각) ‘의사당에 울려 퍼지는 교황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프란치스코 교황 따라하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불평등 해소 관련 발언 등으로 인기와 관심을 끌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부상을 의식해 사회정의 화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는 것이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성지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소년의 볼에 입맞추고 있다. /미국의 소리(http://www.voakorea.com/content/article/1708886.html)

그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난해 발언 “너의 형제는 어디에 있느냐”라거나 사제들에게 길거리로 나서라는 촉구를 하면서 기득권 천주교에서 미묘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염수정 (당시) 서울 대교구장은 자칭 ‘인터넷 1등 신문’이라고 떠벌리는 <조선일보> 보도를 보자면 <12일 교황 프란치스코 1세에 의해 신임 추기경으로 지명된 염수정(71·세례명 안드레아) 대주교는 중도 보수 성향으로 한국 카톨릭의 정통을 잇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염수정 대주교는 한국에서 배출한 세 번째 추기경이다. 80세 이하 추기경이라 교황 선출권도 갖게 된다. 염 대주교는 지난해 11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정의구현사제단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촉구 미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당시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새해에는 국민에 “세상을 흑백으로만 판단할 때 공동체는 불행해진다”며 상호 이해와 배려를 호소하는 신년 메시지를 발표했다>라고 한다. 교황의 말씀과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말을 했다. 그런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하고자 결정하기까지 교회 안팎에서의 여러 움직임도 교황께는 큰 부담이 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카톨릭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결정이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염수정 교구장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추구하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도록 봉사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에 한 가닥 기대를 건다. 그게 마음이 가난한 자이거나 돈이 없어 가난한 자이거나, 정에 굶주린 자이거나 그들을 위한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적어도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이후 달라진 한국 천주교회와는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그래도, 환영한다. 축하한다. 기쁘다. 그리고 기대한다.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3 Responses

  1. 번개 댓글:

    니 입맛에 아니라고 실망 이라고? 니가 추기경 임명 하지 그러냐? 그 개똥 정치신부들 중에서…

  2. 도민고 댓글:

    그분의 말씀 한구절만 보지 마시오!.
    그리고 그 시간에 명동성당에 폭발물 허위신고 접수후 교리서 인용하심이며 전체적으로의 내용에서 이해 못하는 분들이…

    • 빠가사리 댓글:

      백번 옳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함에 있어 예수는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은 정의와 자비가 있는데 땅에선 개판이니 가만히 보고만 있을순 없어 그분이 오신거죠
      그 뜻을 제발 아셔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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