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 여혐 논란을 보니 참 허탈하다

점차 명징해져 온다.

사실 ‘여혐’이라는 말 자체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도 했고, 양쪽 주장을 들어보면 다 그럴싸했기에 판단을 유보해왔다.

DJ DOC ‘수취인 분명’ 얘기다.

‘미쓰박’이니 ‘쎄뇨리땅’ 같은게 왜 ‘여혐’인지를 사실 잘 몰랐고,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 몇일 새에 이해하려고 애썼고, 가슴으로는 몰라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세상의 모든 ‘혐오’가 나쁘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다른 사람이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키가 현저하게 작은 사람을 두고 ‘난쟁이 주제에’라거나 ‘병신이 어딜 나서’라거나 이런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병신’은 다른 차원이지만 ‘난쟁이’라고 하는 말이 비하라고 보지는 않는다. 단지 문맥에서 비하하는 뜻이 들어감으로써 거부감을 줄 뿐이다. 얘기가 좀 샛길로 새지만,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면 쉽겠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남편감이라고 인사하러 데리고 왔는데 장애인이었다. ‘불구면 어떠냐.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잘 살면 되지’라는 아버지와 ‘어디 장애인 주제에 내 딸을 넘봐’라고 하는 아버지가 있을 때 그 ‘불구’와 ‘장애인’ 어디에 더 비하 혐오하는 뜻이 들어있을까. 물론 ‘장애가 뭐 대수냐’라거나 아예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 안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사람 사는 게 굳이 혐오하거나 비하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불편이나 불이익을 걱정한다면 조금 오버하는 얘기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박근혜가 여성이라고 해서 비난한다면 옳지 않다. 박근혜는 여성의 전형도 아닐뿐더러 모든 여성의 대표도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여성인 것은 그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무신 여자가’라거나 ‘암탉이…’ 어쩌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같은 이치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어쩌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누구에게나 사생활은 있는 것이고, 아무리 공인이라고 할지라도 사생활은 존중돼야하지만 그 사생활때문에 공적인 임무에 차질을 빚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때 ‘여성이 무슨 장끼냐’라고 하는 것은 여성비하도 여성혐오도 아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미쓰박’은 miss 박이 아니라 mistake 박이라는 해명이 있었다. 나도 어릴 때 축구나 배구할 때 내 실수로 실점하거면 ‘마이 미쓰’라고 외치며 손을 드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현하곤 했다. 미스테이크를 줄여 미쓰라고 해왔다. 쎄뇨리따는 이탈리아어로 ‘아가씨’라고 하는데, 쎄뇨리땅은 ‘새누리당’을 언희(言戱)한 것으로도 읽힌다. 나중에 나온 해명이야 어쩌면 상황에 끼워맞춘 궁여지책일 수 있긴 하지만, 꽤 설득력은 있는 해명이라고 본다. 하지만 어쨌거나 중의법(重義法)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의 뜻에 다른 뜻을 겹친다는 것이니 ‘미쓰박’이 ‘miss 박’이라거나 ‘mistake 박’으로 읽힐 수 있다는 거고 ‘쎄뇨리땅’은 ‘쎄뇨리따’와 ‘새누리당’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여성’ 그것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논란의 배경을 의심한다.

여성을 결혼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리 부르면 안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달리 부른다고 해서 여성을 혐오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비하와 혐오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비하는 적어도 배척하지는 않는다. 주변에 두고 부려먹고 깔아뭉개고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 ‘비하’라면 ‘혐오’는 곁에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감정상태를 의미한다. 고 믿는다.

DJ DOC의 수취인 분명은 그런 점에서 ‘여성 비하’일 수는 있다고 본다. 처음부터 중의적인 언희로 작사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 속에 이미 ‘비하’라는 뜻도 고려했다는 뜻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만약 가사를 적절한 수준에서 수정한다면 충분히 용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걸 두고 ‘여성 혐오’라고 한다면 동의할 수 없다. ‘여성이란 다 쓰잘데기 없는 것. 다 없애버려야한다’는 정도의 감정이 아닌데도 ‘여성 혐오’라고 몰아붙인다는 건 곧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으면 죄다 혐오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사실 우리 사회에 여성 비하나 성 상품화는 널리고 널렸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연예인이나 방송인은 ‘공인’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지만(선출되지 않았기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으로는 ‘공인’보다도 더 중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내가 야구 중계를 자주 보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광고는 대부분 ‘성 상품화’ 아니면 ‘여성 비하’를 키워드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금호타이어의 ‘타이어 프로’ 광고를 보자.

전구 교체는 남편이, 컴퓨터 고장은 오빠가 해결한다는 주제야 말로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여성은 그런 간단한 것도 해결 못해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라는 비하를 담고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는 삼성다이렉트 보험이나 차량 광택제 광고는 또 어떤가. AJ셀카나 설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치킨 광고는 (성 상품화에 관한 한) 애교로 보일 정도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유독, DJ DOC인가. 여기서 나는 ‘순혈주의’를 본다. 나치 독일 히틀러는 게르만 순혈주의를 실천하려고 했다. 게르만 민족이 아니면 열등한 민족이고 씨를 말려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전형적인 ‘혐오’이다. 혹시 박근혜를 몰아내고 처벌하자는 ‘촛불’에 그 ‘순혈주의’가 들어온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했던 사람이 촛불 들고 광장에 함께 할 때 대부분은 용납하고 있다. 사람들 마음이야 다 다를테니 ‘환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용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거나 ‘쫓아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어떻게 될값에 지금은 하나의 목표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고 바른 길로 함께 하겠다는 그 ‘선의’를 존중해서일 것이다.

감히 얘기하건대 DJ DOC ‘수취인 분명’에 ‘여혐’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새누리당 당원이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촛불 대열에서 몰아내는데도 힘써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런 시도는 촛불 대열에서 용납되기 어려워보인다.

우리 사회에 여성 비하를 넘어 여성 혐오가 일상화 돼있다는 주장에는 일정정도 동의한다. 그리고 그런 편견과 비하, 차별을 깨치고 함께 가야 한다는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 온 국민의 공적이 된 박근혜를 몰아내고 처벌하자는 대오에서 부차적인(성차별이나 성적 비하, 혐오 이런 것이 부차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핵심 이슈에서 벗어나있는 부차적인 이슈라는 뜻에서) 것을 두고 분열을 조장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혐오’는 나쁘다. 그렇기에 이번 ‘여혐’ 논란은 평소 일상적으로 제기됐을 때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발 이번에는 그정도에서 그쳤으면 좋겠다. 대오를 흐트려 이적행위를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은 꼭 관철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고로 친구는 늘이고 적은 줄이는 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데는 더 좋은 길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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