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똥꾸같은 방송심의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빵꾸똥꾸’ 발언을 꼬투리 잡아 ‘권고’ 조치를 내린 데 대한 논란이 뜨겁다. 심지어 ‘진보’하고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소설가 이외수 씨까지 그의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러다 통금도 부활하는 것 아닐까”라고 비판하고, 가수 서태지도 팬들에게 ‘메리 메리 빵꾸똥꾸’라고 새해 인사를 전할 정도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빵꾸똥꾸’라는 소릴 들어야 하겠다.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저녁 먹을 때 한 번씩 보는 <지붕 뚫고 하이킥> 프로그램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순재를 비롯해 아역 배우 진지희까지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개성이 그렇게 강하다. 그게 입 안에 있던 밥알이 튕겨 나갈 만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장치로 작동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역 배우의 대사 한마디를 꼬투리 잡는 것은 빵꾸똥꾸다.

이번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지난 7일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 대해 본격 심의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짱구는 못말려> 역시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많이 본 프로그램에 속한다. 성인 만화를 토대로 제작되긴 했지만, 아동 및 청소년의 지적 수준과 정서,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성적 표현과 엽기적 행동을 여과 없이 담았기에 심의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참 빵꾸똥꾸다.

도대체 심의위원들은 21세기 대한민국 ‘초딩’ 수준을 그렇게 모른단 말인가. 그렇게 백안시해도 되는가. 우리 집 아이가 유치원에도 가기 전부터 <짱구>를 보아왔다. 아이들과 같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내가 본 그 <짱구>에 어떤 부분이 어린이에게 부적절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맞벌이로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해준다는 점에서 권장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의위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 3백(三白)이 나쁘다 해서 흰 쌀밥을 밥상에서 빼버리고, 반찬에 소금 간을 하지 않고 설탕은 전혀 쓰지 않는다. 맵거나 짠 음식도 위에 자극적이어서 좋지 않으니 고춧가루나 고추장, 후춧가루, 간장 같은 조미료·향신료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런 밥상을 받았을 때 정말 맛있게 먹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반대로 밥상 앞에 앉아 아내가 이건 위장에 좋고, 이건 혈압에 좋고, 저건 당뇨에 좋고, 그건 심장병이나 뇌질환 예방에 좋고, 또 저건 정력에 좋다며 시시콜콜 설명해준다면 그게 보약 먹는 것이지 밥 먹는 것이겠는가. 아무리 밥이 보약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좋다는 것만 모조리 모아서 먹으면 또 그건 정말 맛있는 밥상이 될까.

그런 측면에서 드라마에 술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을 억제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윤리 교과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참 드라마에 감정이입돼 몰두하고 있는데, 내가 그 상황이라면 온갖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달려가 한대 쥐어패고 싶을 정도인데 ‘곱고 바른 우리말’만 써야 한다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등장인물을 볼 때 그런 설정에 동의할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잘은 모르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연방 “빵꾸똥꾸”를 내지르며 좌충우돌하는 해리는 어찌 보면 요즘 아이들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미 21세기 대한민국 ‘초딩’들은 해리보다 훨씬 더 버릇없고 권위에 도전적이며 자의식이 강하다. 빵꾸똥꾸를 규제함으로써 그런 어린이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렇대도 드라마 흐름을 무시한 채 대사 하나로 규제하겠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빵꾸똥꾸다.

디지로그

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2 Responses

  1. 골목대장허은미 댓글:

    빵꾸똥꾸 가지고…별걸 다 꼬투리 잡는 기분이네요~참네…

  2. 괴나리봇짐 댓글:

    진짜 빵꾸똥꾸 같네요.
    성인씨 올 한해 고생 많으셨구요,
    내년에 큰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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