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영재원 입학식 마치고 1

어제(3월 29일) 아들 녀석 영재원 입학식을 했습니다. 그보다 일주일 전인 22일에는 딸 아이 영재원 입학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뭐 대단한 아이들이라도 키우나보다 할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한참 성장 할 시기로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아이들이기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시켜 보겠다는 생각으로 밀어주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두 아이 입학을 하고 보니 영 마음이 안좋네요. 너무나 다른 두 영재교육기관의 태도가 그렇고, ‘공짜’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었던 일이 의외로 돈이 꽤 들 것 같다는 생각이 그렇고, 과연 버텨 나갈 수 있을까 자칫 아이들에게 큰 상처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도 그렇습니다.

큰 아이인 아들은 올해 중학교 입학했습니다. 3년 전 4학년 가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육청 영재교육원 신입생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와서는 갑자기 영재교육원에 간다고 해서 속으로는 ‘에그, 너처럼 놀기만 하는 녀석이 영재원 들어간다면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가 다 영재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지 나름대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주고, 필요하다는 책 있으면 사주고, 도서관에 가서 과학책 위주로 빌려와서 읽도록 해주고, 그런 정도였지요. 교내 선발과 2차 시험까지는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올해 아니어도 내년이나 내후년이나 기회는 많다”고 위로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가 아이에게는 격려가 됐는지 5학년 가을에 또 시험을 치겠다고 했고, 덜컥 붙어버렸습니다. 5학년 때는 지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듯 했습니다. 고교 수학교사인 막내고모와 중학교 과학교사인 큰고모부도 전화로 꽤 괴롭혔지만, 모르는체 했습니다.

6학년 3월에 영재원 입학을 하고 두어번 갔다 오더니 과학 학원에 보내달라네요. 재수는 한번 했으면 됐지 또 하긴 싫다고, 초등 영재원은 별 의미 없다고, 중등 영재원을 가야하는데 혼자 공부해서는 또 재수해야할지 모르니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고 떼를 씁니다. 나중에 원망은 안들어야겠다 싶어, 또 이리저리 알아보니 꼭 과학고등학교를 가지 않더라도 영재원에 다니면서 자기보다 뛰어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이후 학습에 큰 도움이 되더라는 얘기도 들었고 해서 과학 학원에 보냈습니다.

작년 말, 여러 대학 영재교육원에 원서를 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은 전자(특히 로봇)와 물리쪽인데, 학원에서 과목을 뗀 건 화학 밖에 없다며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어도 합격할 과목으로 원서 쓰겠다며 물리나 정보가 아닌 화학으로 원서를 내더군요. 다 떨어지고 경남대도 겨우 합격했습니다.

합격하고 나니 아이가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름대로 뭔가 이뤄냈다는 성취감이 무엇인지도 맛을 본 듯 했고, 매사에 자신감도 붙은 듯 했습니다. 사춘기로 접어들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나 아내가 틀린 얘기를 하면 그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는 자신감 없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찾아보고 말씀드릴께요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건 이러저러해서 아니예요라고 말합니다.

경남대학교 과학영재교육원 입학식.

하여튼 어제 입학을 했습니다. 초.중등 합쳐 170명이 입학한다고 모였고, 학생 1명당 딸린 가족이 1명에서 많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 언니까지 대여섯명 씩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은 다들 초롱초롱했지만, 옆자리 앉은 학생과 초면인데도 장난치고 떠드는게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따라온 부모들도 뭔가 기대에 가득찬 상기된 표정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렇지만,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부모들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워 보였습니다.

입학식 내내 교육원 관계자들이 보여준 성의와 열정은 좋았습니다. 믿을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영재교육원장이 됐다는 이의 학부모 설명은 더도 덜도 아닌 장사꾼의 태도 그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였습니다. 중간중간 영재나 과학, 교육에 대한 얘기는 그 돈 이야기를 매끄럽게 하기 위한 양념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20명을 선발해 10만원 씩 받고 영어로 과학교육을 하겠다는 얘기는 솔직히 선발만 되면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 얘기때만 해도 기대가 컸습니다. 다음으로는 미국 연수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2주동안 미국의 중등 과학영재들과 함께 캠프를 하는데 참가비가 400~500만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30명 밖에 못데려간다네요. 170명, 다 나름대로 영재라고 생각하는 아이 부모들을 앉혀놓고… 그래도 여기까지는 영재나 교육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기가 막혔던건 경남대 방송국에서 나온 학생기자인듯 한 이들이 비디오 카메라 3대로 입학식을 줄곧 촬영하고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다 돈벌이였더군요. 졸업할 때 DVD를 만들어 주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하는 것이라고, “거기에는 돈이 들어가는 것 알고 계시죠?”라고 묻는데, 디비디가 영재교육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기가 탁 막혔습니다. 아이들 적성검사를 하겠다는, 때때로 유명 강사를 초빙해 학부모 교육을 하겠다는, 어머니회를 만들어 활성화 하겠다는 얘기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까닭은 이미 원장이 너무 많은 돈 얘기를 한 뒤였기 때문일겝니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미국 연수였습니다. 사실 그 돈이면 두세달 어학 연수 보낼 돈입니다. 그런데도 마산시내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시청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학생은 전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네요.

인근 창원시내에는 내가 알기로 영재교육원이 3곳 있습니다. 시교육청, 창원대, 도교육청이 운영하는 사이버 영재원입니다. 그런데, 시는 시교육청 영재원에 전적으로 지원을 해줍니다. 시교육청 영재원생은 모두 창원시내 초중학생이지만 창원대나 사이버영재원은 경남도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해에는 인제대와 시교육청 영재원 두곳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을 인제대 영재원에 지원합니다. 인제대 영재원은 과기부 공인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립대에 코가 꿰였는지 김해시는 김해시내 학생만으로 구성된 시교육청 영재원에는 그다지 지원하지 않으면서 인제대에는 정말 물쓰듯이 돈을 들이붇습니다. 이 말은 작년 시교육청 영재원 입학식 때 참석했던 시청 계장인가 과장인가가 했던 말입니다. 인제대에 지원하다보니 시교육청 영재원에 지원할 자원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지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끼지 않고 지원하겠다고.

이번에는 마산시가 나선 모양입니다. 차라리 지원할려면 마산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영재원이나 팍팍 밀어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경남대도 마산시 지원이 그렇게 아쉽다면, 차라리 마산시내 학생만 대상으로 모집해서 운영하는게 맞다고 쓴소리가 절로나오네요.

170명 중에 마산시내 학생이 30명 안되겠습니까. 대학이 마산에 있는데. 누구는 시 지원받아 훨씬 적은 돈을 내고, 누구는 거제니 진주니 한시간 이상씩 떨어진 거리에서 다니는 것만 해도 시간 기름 아까운데 해외 연수비용까지 에누리 한푼 없이 제값 내고 다녀온다면, 원장이 얘기한 “긴 학문의 여정을 함께할 친구”가 쉽게 될 수 있을까요.

2008/03/23 – [자녀 교육] – 영재원, 또 재수할 것인가?
2008/03/31 – [자녀 교육] – 두 아이 영재교육원 입학식 마치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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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좋은 축구입니다.

3 Responses

  1. 같은맘 댓글:

    저도 곧 입학식을 앞두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이글을 읽고보니 새삼 걱정이 앞서네요
    욕심이 지나치면 뭐든 좋을게 없다는데
    신중을 기해야 할듯 하네요

  2. 헐.. 댓글:

    교육청 영재교육원은 참 한심해요.. 차라리 과학고등학교 영재교육원이 훨씬 낫죠.. ;;;

    • 돼지털 댓글:

      교육청 영재교육원이 대학에 비해 시설 등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요. 우리 큰아이 경험을 보면 그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매우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있어 그나마 보낼만 하다고 봅니다.
      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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